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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Jul 14. 2020

이 일의 끝을 안다면, 영화 컨택트를 보며 든 생각

다정한 일기 by 혜진

은결님, 안 그래도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비롯, 저도 최근에 본 책에서 '컨택트'라는 영화의 제목이 자주 언급되어 무척 궁금했어요. 은결님까지 이 영화 이야기를 하셔서, '아 이건 봐야겠다' 싶었지요. 그래서 어제 출퇴근 길에 굉장히 몰입해서 봤답니다.  여운이 남아 그 의미를 계속 더듬어보게 만드는 영화네요.




그들의 언어를 제대로 배우면 시간을 그들처럼 인식할 수 있어요.
다만, 그들의 시간은 한쪽으로 흐르지 않아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우리가 쓰는 언어로부터 비롯된다'는 말. 우리의 인식 세계는 우리가 쓰는 그 언어 안에 딱 갇힌다는 말.


그래서 일부러 외국어를 공들여 공부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요. 은결님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일본어를 공부하시지만, 일본어만 해도 우리말과 비슷해 보여도 숨겨진 차이점이 얼마나 많은가요. 유난히 많은 사역형 표현. 직접적이지 않고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까지, 언어 자체에 문화가 그대로 담겨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요.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건, 자기 계발의 작은 단면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일부에라도 흠뻑 빠져보는 일이라고 전 생각해요.


한편으론, 같은 나라의 말을 쓰면서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라는 생각도요.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란, 그 사람이 쓰는 말을 배우는 것. 엄마는 아이의 욕구를 잘 알기에 불완전한 그 문장을 듣고도 단번에 이해하지요. 정치권의 지긋지긋한 세력 다툼도 국민들의 필요를 제대로 읽지 못한, 의사소퉁의 부재 때문.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흘러갈지 알면서도,
난 모든 걸 껴안을 거야.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반길 거야.




느닷없이 지구에 착륙한 그 들. 적군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어 각 국마다 공격을 하네마네 하는 통에, 시간을 들여 그들의 언어, 헵타포드어를 공들여 배워가는 루이스. 그들의 언어를 인식한 덕에 미래를 읽는 능력까지 갖게 되죠.

미래를 읽는다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불행한 결말까지 알아버려요.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곧 찾아올 거라는 걸.


이 부분에서 또 그런 생각이 들죠, 나라면 결말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불행까지 힘껏 껴안을 수 있을까.

전 아이가 많이 아픈 상태로 태어나, 자라면서도 그런 상태일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낳았거든요. 평생 신체 혹은 장기 일부가 불편한 아이로 태어난다 해도, 저 아이를 끝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남편과 출생 전에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한 대학 병원 의사가 중절 수술할 수 있는 다른 병원을 소개해 주겠다는 이야기까지 했으니까요. 남편과의 결론은, 그래도 낳는다였어요. 혹시 원하지 않는 결과일지라도, 끝까지 안고 가겠다는 - 남편과의 끈끈한 동지애는 여기서부터 생겼지 싶네요. ㅎㅎ





논 제로섬 게임

다른 외계인들이 나오는 영화처럼 - 지구를 침략한다. 지구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외계인들은 엄청난 지능과 무기 등을 가지고 있다- 같은 뻔한 스토리가 아니라서 더욱 좋았던 영화.

'논 제로섬 게임'이라는 말이 콕 박혀 왔지요.


통상 누군가 이익을 봤다는 건, 누군가 손해를 본 것이라는 통념이 우리에게 있잖아요. 특히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본주의 세상은 더더욱 제로섬 게임 같은 곳이라고.

그런데, 그들이 온 건 지구에 뭔가 얻으려 침략한 것이 아니라는 것. 3천 년 뒤 미래에 생길 일을 읽고, 그때 지구인들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 지금 도움을 주러 왔다는 것. 어느 쪽도 손해보지 않는 둘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저 단어가, 와 닿았어요.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 시간을 경험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루이스가 "한나(hannah)는 특별한 이름이란다. 거꾸로 해도 똑같거든"라는 대사를 읊었을 때 묘한 여운이 남았지요.

 

솔직히 한 번 보고 단번에 이해되는 영화는 아니었어요. 테드 창의 원작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고요. 언어, 인식 세계, 의사소통에 관해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한번 더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네요. 덕분에 좋은 영화 볼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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