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일기 by 혜진
은결님의 글을 가만히 읽으면서 생각을 했어요.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다른 직업보다 더 강할 뿐, 저곳도 일하는 곳인데.
왜 나는 공무원이면 딴생각을 아예 안 할 거라 생각했지?라고요.
물론 보람되고 뿌듯할 때도 있었겠지만 직장이라는 테두리에서 15년을 버티듯 지내온 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구나- 라는 생각도요.
몸에 딱 맞지 않는 옷을 입고 15년을 그럭저럭 잘 살아낸 우리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지난주에 일본어에 관한 글을 쓰면서, 전공으로 삼은 일본어는 밥벌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는 글을 썼잖아요. 댓글로 어떤 이웃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밥벌이니까 그렇게 꾸준히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요.
개인적인 감정, 무거운 소명 같은 거 다 내려놓고, 밥벌이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성실할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공감이 되더라고요.
그전까진 돈 때문에 일하는 건 비참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돈기부여'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 생각해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
한창 일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 땐 '일=나'라는 생각이 강해서, 일을 잘 못해냈을 땐 나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루에 9시간이나 지내는 직장에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뤄내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이유로 회사에 다니겠는가-라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회사 처세술, 자기 계발서를 꾸준히 읽으며, 잠 시간 줄이며 업무 자격증을 따며 열심히 살았던 것도 같네요.
지금은, (회사에서 이 글을 읽으면 큰일인데 ㅎㅎ)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내려놨어요.
아무리 잘하려고 애써도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명확하게 보이고,
매해, 매 시간 내가 중심이 되진 못한다는 깨달음을 더 진하게 얻고 있거든요.
회사에서 월급충으로 살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좀 더 쿨한 관계를 유지하기로.
너무 많은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성실하게 할 일 하는 걸로.
그리고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이별을 맞았을 때도 질척거리지 않기로.
연애를 할 때도 상대를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은 어쩔 수 없이 을이 되잖아요.
하염없이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기도 하고.
상대의 말 한마디에 온갖 의미부여를 하고.
혼자 상처를 받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가.
회사와 나도 그래요.
지금까진 회사가 철저하게 갑의 위치였고, 제가 관계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상당히 질척거렸네요. ㅎㅎ
헤어질 때만큼은 질척거리지 않으렵니다.
그게 회사랑 맺고 싶은 관계네요.
아직은 크나큰 이상입니다만.
정말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이들이 마냥 행복할까-하면, 꼭 그렇지도 않아 보이기에, 직업의 형태에 대한 환상은 두지 않기로 했어요.
그들 역시 밥벌이를 위해 성실하게 살뿐이니까.
오히려 소속감이나 울타리가 없어 두배로 더 열심히 살아야 할 뿐.
이제 출근 준비를 할 시간이네요.
코로나 거리두기 1단계로 내려가면서 저희는 매일 출근 체제로 바뀌었어요. (재택근무, 안녕..ㅠㅠ)
사람 몸이 적응한다는 것이 무서워요.
15년간 매일 출근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제 매일 출근에 적응하는 중이랍니다.
날이 갑자기 차가워졌어요. 감기 들지 않도록, 따뜻한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