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네 브라운 <수치심 권하는 사회>에서는 번 러살라의 시를 인용하며 각자가 느끼는 수치스러운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리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으니 그저 화가 나고 우울했던 그 때의 내가 사실은 수치스러웠기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가슴에 가장 아프게 와닿았던 구절은...
"성경에 가득한 '영광'이라는 단어가 내 사전에는 없다는 걸 아는 것, 이것이 빌어먹을 수치심, 울부짖는 수치심, 범죄와도 같은 진짜 수치심이다."
-번 러살라 <수치심>-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이런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나에게도, 내가 만난 많은 크리스천들, 사역자들에게도
이런 영적 수치심이 있다. 그 중심엔 인정 받지 못한 '나'에 대한 슬픔, 하나님께도 인정 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깊은 자기애적 상처가 숨겨져 있다.
우리는 수치심을 덮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그러나 수치심은 드러낼 때 치유된다. 나의 취약함을 드러내도 판단 받지 않을 누군가에게 노출할 때 내 수치심은 그 힘을 잃고 만다. 이런 안전하고 지지적인 경험들이 쌓여
내가 나 자신에게 먼저 공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수치심을 덮기 위한 대처행동으로서의 분노, 우울, 중독의 문제도 점차 나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