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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Jun 07. 2023

악마가 되는 것을 선택하는 아이들의 심리

(feat. 정신분석가, 로널드 페어베언)


페어베언은 '본능'을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drive(추동)으로 본 프로이드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정신분석가이다. 프로이드가 말한 '리비도(성적에너지)'는 성적 본능이 아닌, '대상'을 추구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관계"를 인간 이해의 가장 중심에 배치한 최초의 순수 대상관계이론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이론에는 흥미진진한 개념이 가득하다. SNS 글로 풀기에는 한계가 많기에 그 중 하나의 개념만 소개하고자 한다.


상담을 하다보면 자신의 부모를 결코 나쁘게 말하지 않는 내담자들이 있다. 무수히 많은 상처와 좌절이 부모로부터 기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나쁘고 부족할 뿐 우리 부모님은 잘못이 없다고 변호한다. 고등학교 때 갑자기 양극성 장애(조울증)가 찾아왔던 40대 내담자 M은 상담 내내 부모 탓을 하지 않았다. 부모는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고 엄하게 교육하려 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문제가 어디로부터 기인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과거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며 중요한 건 현재요, 미래라고 말했다. 그는 상담이 종결될 때까지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돌아보는 것을 거부했다. 고2 때 불현듯 찾아온 양극성 장애를 대하는 그 어머니의 태도는 종교인을 불러와 함께 기도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겨우 말려서 병원에 입원했다. 겨우 초기 기억을 더듬었을 때 런닝 바람으로 집을 나갔던 엄마를 기억하며 엄마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랬다며 눈물이 고였지만, 그는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를 끝내 더 꺼내놓지 않았다.


부모를 나쁘게 말할 수 없는 성인들의 심리는 자신의 부모를 나쁘게 여길 수 없는 아이들의 심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페어베언은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세상이 더 안전할까? 내가 유일한 천사이고 악마들에 의해 둘러싸인 세상과, 내가 유일한 악마이고 천사들과 신에 의해 둘러싸인 세상. 페어베언은 유아들의 심리는 후자를 택한다고 보았다. 부모를 악마로 만들기 보다 나를 악마로 만드는 것이 아이들은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부모를 나쁘게 생각할 수 없다. 나를 악마로 만들고 부모를 천사로 만들어 나를 둘러싼 세상은 안전하다고 믿고 싶어한다. 부모로부터 굉장히 강한 억압을 받으며 성장한 어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부모를 나쁘게 생각할 수 없다. 부모가 나빴다고 인정하는 순간 안전하다고 믿었던 내 세상이 산산이 부서지기 때문이다. 페어베언은 이와 같은 인간의 방어적 심리를 '도덕적 방어'라고 개념화했다.


부모는 신이 아니다. 물론 천사도 아니다. 부모가 되어 보니 여전히 연약함 투성이이며 악할 때도 많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이 한 '인간'으로서 만날 때 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그러니 가끔은 부모를 미워해도 괜찮다. 가끔이 아니라 더 자주 그래도 괜찮다. 그럴 수 있어야 부모가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도 언젠가는 이해할 여지가 생긴다. 마음 속에 터져나오는 부모를 향한 미움, 그것은 용서 받지 못할 죄가 결코 아니다.


@inside.talk_

https://insidetalk.oopy.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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