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자본이 서너 푼이라도 너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

(feat.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by 지음
부모로서 자신과 잘 지내고 있나요?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표지

이 책은 이 질문으로 시작해서 이 질문으로 끝나는 책입니다. 그러니 자녀 양육에 대한 노하우나 꿀팁 같은 건 말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해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엄마인 내가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일이라 말합니다. 저는 '내 아이들을 이렇게 키웠더니 이렇게 잘 컸다. 그러니 당신들도 이렇게 해보라''고 대놓고 권하는 양육서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에게는 그 방식이 잘 맞았겠지만 저와 제 아이들에게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내 삶과 아이들 삶의 맥락이 다른데 어떻게 그분들의 방법이 딱 맞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부모로서 자기 자신을 먼저 이해하라고 말하며, 부모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들을 대상관계적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부모로서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해 줍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내가 줄 수 있었던, 하지만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 정도밖에 줄 수 없었던 나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정도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애쓰는 나는, 완벽한 엄마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임을 깨닫습니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아요. 대상관계이론이라는 묵직하고 어려운 개념을 우리나라 대상관계 이론의 대가, 권경인 교수님이 소화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내셨어요. 저는 지금 상담하고 있는 내담자들 3분이 모두 상담을 공부하고 계신 분들인데 상담 종결과 함께 이 책을 선물했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이 책으로 심리학 공부 시리즈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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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목차




심리적 자본의 핵심은 "자기이해"


우리가 자본이라고 하면 누구나 "경제적 자본"부터 떠올리지만, 작가는 경제적 자본만큼이나 "심리적 자본"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하나 중요한 자본으로 꼽히는 것이 관계, 네트워크입니다. '내가 누구를 아는가?' 이것은 '내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인 거죠. 그런데 최근에 주목받게 된 것이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되어 있는가?' 즉 자기이해입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되어 있는가?' 이것이 심리적 자본의 핵심 내용입니다."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p.19


심리적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여러 형태의 관계와 상호작용에서 힘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나를 아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선택하며, 내가 어떤 사람과 일하면 좋은 시너지를 발휘하는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관계의 질이 다를 것이다. EBS 다큐프라임에서는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친 여러 명의 다중지능을 측정하는데, 이들 모두 공통적으로 "자기이해지능"이 높았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도한 바 있다. 그러니 작가는 심리적 자본이 향후 경쟁력의 핵심이라고까지 말한다.


"자기이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저 자기 자신을 주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조해리의 창처럼 내가 보지 못하는 영역에서도 나를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자기이해라 할 수 있다. 책에 나오는 예로, 어떤 사람이 "내 인생이 다용도실에 있는 세탁기 같다"라고 표현했다고 하자. 세탁기는 하루 종일 세탁, 헹굼, 탈수, 건조로 분주하게 돌아가지만, 누구도 집을 출입하며 세탁기에 안부를 묻지 않는다. 분주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신을 세탁기에서 본 것이다. 작가는 이런 사람을 자기이해능력이 높은 사람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삶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조망한 것, 밖의 눈으로 본 겁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들어가서 살기도 하지만 관찰하기도 합니다. 그런 시선이 없는 사람은 일상적 반응으로만 움직입니다.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p.43


우리는 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는 걸까?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지만 심리학적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무의식"의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생애 초기,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에 대부분 몸으로 기억되는 경험, 욕구, 감정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으로 기억될 뿐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니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에 반응하며 살아간다.


심리상담은 이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이다.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영역이 많아질수록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한 심리적 이해가 확장된 삶을 살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부모는 어떨까? 부모 역시 내가 누구인가를 모르면 좋은 부모가 되기 어렵다. 심리적 자본도 빈익빈 부익부라 자신에 대한 심리적 이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부모가 더 좋은 부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자기이해를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작가는 여러 좋은 질문들을 통해 부모로서 자기이해를 돕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역시 "자기이해'가 되어야 한다. 자기이해는 내가 원하는 것, 정서, 욕구 등 내 삶의 판을 돌리는 중요한 힘의 원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을 말한다. 판이 돌아가는 추진력의 원천, 삶의 핵심 주제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삶의 판을 돌리는 힘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이유도 모르면서 그 주제를 열심히 산다. 내가 가족들에게 왜 그리 열심히 밥을 해먹이는지 모르고 매일 같이 밥을 하고, 왜 그렇게 아이의 공부가 중요한지 모르면서 공부 닦달을 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이다.


작가는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의 삶을 통해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덕수는 진로를 선택할 때도, 결혼을 할 때도, 가게를 팔 때도, 파독 광부로 일하러 떠난 때에도 자기희생적인 결정을 한다. 이는 덕수의 삶의 핵심주제가 '가족을 지켜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기이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 삶을 작동케 하는 핵심 축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상자 안에 갇혀 있으면 내 삶의 핵심주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다 자기 자신이 만든 상자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각자 자기 문제 안에 들어가서, 그 문제 안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이

심리적 성숙입니다."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p.40


상자는 내가 생존하기 위해 선택해야 했던 방어이다. 그 방법으로 나는 어렵고 아픈 시기를 지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상자에 지나치게 오래 갇혀 있거나 상자 속에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다. 나는 자각하지 못하는 자기기만의 상자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p.41).




젖먹이였던 아들의 몸짓


이 부분을 읽으며 제 삶의 핵심 주제를 생각해 봤어요. 40살 이전까지 제 주제는 "남들에게 인정받는 성공을 한 독립적인 여성"이었어요. 우습게도 그 당시에는 제가 이런 주제를 가지고 있는 줄 몰랐어요. 제 꿈이 나름 소박하고 인간적인 목표라 자부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저에게 자기기만상자에 갇혀 있었음을 일깨워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 첫째 아들입니다.


아들이 5개월 때 저는 중국에 데리고 갔어요. 교육열 높은 저희 엄마는 젖먹이 아이도 봐주겠다며 중국 유학길에 동행했어요. 그 당시 저는 애착이고 뭐고 참 무지했습니다. 그저 아이가 이렇게 말 못 할 때 얼른 공부를 끝내야, 아이에게도 저에게도 더 좋을 거라고 믿었어요. 아들은 순한 아기는 아니었어요. 태어날 때부터 예민하고 여린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아들의 기질에 많이 둔감했던 것 같아요.


낮에는 중국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끝나면 중국 로펌에서 업무연수를 했습니다. 문제는 아들이 젖병을 잘 빨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아들은 직수(직접 모유 수유)만 고집했지요. 한참 젖을 먹는 5개월에 중국에 가서 저는 젖이 불어있음에도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는 열심을 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왔는데 아이가 문 앞에 있더라고요. 저를 보더니 "엄마, 엄마" 하며 황급히 기어 와서 저에게 안겼습니다. 저는 늘 그랬듯 가방 내려놓기가 무섭게 아이를 껴안고 소파에서 젖을 물렸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젖을 실컷 빨다 말고 입을 뗀 후 제 눈을 똑바로 응시하더라고요. 그리고 주먹을 쥔 채 팔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뭔가를 저에게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저희 엄마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여셨답니다.


"어머... 쟤가 기억을 하고 있나 보다. 네가 학교 가고 없으면 내가 계속 말해줬거든. 연필 쥔 손을 하고 연필 쓰는 모습을 흉내 내며 '엄마 학교에 공부하러 갔어, 엄마 회사에 일하러 갔어.' 그렇게 가르쳤어. 근데 쟤가 너한테 그걸 묻고 있나 보다..."


상호작용이 그리 많지 않던 아들이었기에 그 말은 저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젖먹이 아들은 온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저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어요. "엄마, 공부하고 왔어요? 엄마, 일하고 왔어요?"..... '내가 많이 기다렸어요. 엄마를 너무 많이 기다려서 힘들었어요...' 저에게는 그제서야 아들의 그런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후로도 저는 제 삶의 핵심 주제를 쉽게 포기ㅣ하지 않았습니다. 심한 우울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저는 그 장면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흐릅니다. 저는 왜 그때 아들의 곁에 온종일 머물러주지 못했을까요. 뭐가 그리 중요하길래 아이의 애착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제 커리어를 쌓아야만 했던 걸까요. 어린 시절부터 내면화된 메시지, "너는 꼭 성공해야 돼. 너는 꼭 독립해서 일하고 돈을 버는 여자가 되어야 해"는 강력하게 작동했습니다. 저는 내면에 프로그래밍된 메시지에 반응하는 삶을 살았어요. 그러니 그 당시 그 삶은 저에게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40살이 넘어가면서 우울이라는 증상을 통해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제 삶의 핵심주제를 깨닫게 되었어요. 제 존재 가치를 능력으로, 성공으로 증명하려 그토록 몸부림쳤다는 걸 말입니다. 제가 좀 더 자신을 일찍 알았다면 그때 내면화된 메시지를 거절하고, 아들에게 절실했던 안정애착을 선물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저는 늘 이 지점이 후회스러웠어요. 상담을 배우며 애착의 중요성을 알게 되니 더 아팠습니다. 아들에게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미안했지요.




자수성가로 심리적 자본 축적하기 & 물려주기


그럼 초기 애착에 실패한 저는 좋은 엄마가 아닌 걸까요? 그 질문에 작가는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저는 종종 '서 푼어치밖에 안 갖고 있어도 부모는 부모다' 라고 말합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줄 역량이 많아서, 심리적 자본과 경제적 자본이 많아서 부모로 멋지게 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진 게 서푼어치밖에 없어서 일상적인 양육을 전혀 해줄 수 없고 돈도 없고 심리적 기능도 낮아서 위로를 해줄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서 푼어치도 안 되는 걸 가지고 평생 부모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갑니다. 두 사람이 신 앞에 가서 누가 더 칭찬을 받을까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신은 후자에게 더 수고했다고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부모를 이해하는 방식도, 가진 게 그것밖에 없는 상태에서도 부모라는 이름을 포기하지 않은 걸로 그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p.183


저희 엄마 역시 그 삶의 맥락에서 심리적 자본이 서너 푼인 사람이었어요.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셨지만 제 정서적인 욕구는 거의 무시하셨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엄마 자신이 가진 것으로 고군분투하며 저를 사랑하셨음을 이제는 압니다. 저 역시도 그렇겠지요. 그러니 얼마 되지 않는 심리적 자본으로 아들을, 딸을 오늘도 사랑하려 애쓰는 저는 그럭저럭 충분한 엄마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심리적 자본을 많이 물려받진 못했어요. 하지만 고군분투하는 삶의 태도는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심리학 공부, 독서, 글쓰기를 통해 자기이해를 확장하고 심리적 자본을 매일 축적하고 있어요. 금수저는 아니지만 자수성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자수성가한 '심리적 자본가'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초기 안정 애착을 선물하지 못했지만, "획득된 안정 애착"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애착에서 실패해서 현재의 관계에서 좌절된 욕구, 결핍된 감정을 채우려 애쓰는 내담자들에게도 안정 애착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고군분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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