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 자기충족적 예언에 관하여)
"우리는 중요한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 성격이 만들어진다. 이 성격이 자기충족적 예언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왜곡하는 면이 있다. 성격은 중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맺어진다. 즉, 중요 타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격이 형성된다."
설리번,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p.79에서 재인용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예언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나를 거절할거야', '저 고객은 이번에도 내 제안을 받아들일 거야', '너는 인생을 모른다', '네가 약해서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해', '이걸로는 부족해'... 6년 전 심리상담을 처음 받아본 날,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선생님의 질문이 있었어요. "선생님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누구의 목소리예요?". 그때는 상담 선생님이 질문을 잘못하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그 질문의 의미를 압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프로그래밍된 메시지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며 살 때가 많다는걸요. 그 소리는 나에게 예언이 되어 내 삶을 지배해 왔다는 그 심각한 사실을 말입니다.
엄마는 아이와 수천 번, 수만 번의 상호작용을 한다. 그 과정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보내는 반복적인 메시지들이 있다. 예를 들어, '넌 참 귀하구나, 나는 널 많이 기다렸어, 너는 아주 중요한 존재야'와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들도 있고, '너는 내가 원하던 아이가 아니야', '나는 널 안 낳으려고 했어' 같은 부정적인 메시지들도 있다. 이 메시지들은 언어적으로만 전달되지 않으며, 엄마의 비언어를 통해서도 전달된다. 엄마의 한숨, 눈빛, 떨쳐내는 손길, 외면하는 뒷모습... 책에서는 엄마와 아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엄마가 반복적으로 아이에게 전달하는 언어적, 비언어적 메시지들은 아이에게 심리적 잔재로 남고, 그 잔재들이 쌓여 심리적 틀이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틀은 우리의 성격이 되어간다.
책에는 이런 사례가 나온다.
"엄마가 정말 원하지 않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엄마는 '너 아니었으면 네 아빠랑 안 살았어.', '네가 태어나는 바람에 어떻게 할 수 없었어'. 이런 메시지를 다각적인 방식으로 아이에게 이야기합니다. 다른 친척들과 통화하면서 이야기하고, 할머니가 오셨을 때 울고, 아빠랑 싸웠을 때 돌아누워서 혼잣말을 하듯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내가 아니었으면 우리 엄마가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고, 이토록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나는 짐이다'라는 자기예언을 갖게 됩니다.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p.80
이런 사람은 연애를 할 때도, 사회생활을 할 때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도 상대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생활비를 받아서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사람은 돈을 받아서 쓰는 게 비참하게 느껴지고 카드 이용 알림이 남편에게 가는 게 두렵다.
이 사례가 와닿았던 이유는 친정 엄마가 생각나서다. 엄마는 결혼 전 지방의 중학교 교사였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아빠를 만나 결혼 이후로는 지방 교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취학 전까지 내가 엄마에게 어떤 소리를 듣고 자랐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는다(아마도 몸은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취학 이후부터 엄마에게 반복적으로 들어온 푸념들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여자도 평생 돈을 벌어야 한다. 남편한테 돈 타쓰는 건 비참한 일이다. 그러니 공부해서 성공해라.", "남에게 절대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생에서 돈이 제일 중요하다.", "가정주부는 절대 하면 안 되는 기다" 등등.
지금도 엄마는 아빠에게 카드 이용 알림 메시지가 갈 때마다, 메시지가 울린 후 아빠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면 엄마의 기분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우리 집에 와서 똑같은 하소연을 하면서 아빠 흉을 보는 걸 보면, 나는 어린 시절에도 아마 이런 하소연과 푸념 섞인 언어적 메시지들을 수없이 듣고 자랐을 거라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엄마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설거지를 하는 뒷모습이다. 말없이 설거지 하는 뒷모습, 그릇이 깨질 것 같이 아슬아슬하게 그릇 부딪히는 소리... 이것뿐일까.. 아마도 수많은 비언어들도 나에게 심리적 잔재로 남아 그 메시지들은 튼튼하게 서로 연결되면서 내 성격의 핵심적인 부분들을 구성했을 것이다.
그 메시지에 반응하기 위해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집이 가난한 것도 아니었다. 중산층 정도로 살았지만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고, 인생의 의미를 찾게 해주고 싶었다. 고3 수능이 끝나자마자 과외를 시작했다. 대학 입학 후에도 IMF의 여파는 강력했다. 과외를 늘려야 했다. 한 달에 4~5개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하니 엄마는 나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돈 버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실질적인 내 진로에 대한 문제를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대학 생활을 적극적으로 향유하기도 어려웠다. 진로가 잘 맞지 않는다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다시 현실적으로 돈 버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변리사는 좋은 직업이지만, 처음부터 나에게 잘 맞지 않았다. 나름 괜찮은 옷을 입었지만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나는 15년을 버텼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했지만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전업주부가 되면 내 인생은 실패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은 나를 일터로 내몰았다. 전업주부는 남편의 돈을 타 쓰기 때문에 비참할 거라는 엄마의 잘못된 메시지는 나에게도 왜곡된 신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니, 아이들 친구 엄마들을 만나보니, 교회에서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행복하게 사는 전업주부들도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업주부냐, 워킹맘이냐는 행복의 기준이 아니었다. 그저 나도 모르게 엄마의 예언을 나의 예언으로 채택한 삶을 살고 있었을 뿐이었다.
부모에게 이런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받아서 이미 내 성격은 결정되었고,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다고 체념할 필요는 없다. 심리적 자본이 불충분한 부모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사회에 나와서 새로운 대상 경험들을 하면서 나에게 이로운 예언들을 새롭게 채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사랑을 덜 받았어도, 누군가는 선생님, 친척, 친구, 상담자, 목회자 등을 통해서도 자기예언들을 긍정적으로 바꾸어갈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너무 강력한 메시지들이 부모로부터 전달되었다면 그 영향을 무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우리 아이라도 긍정적인 예언들을 많이 들려줘서 아이만은 잘 크게 해줘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럴 때도 작가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의할 점이 긍정적인 예언을 한다고 너무 많이 부풀려놓은 예언이 있습니다. "네가 제일 잘생겼어", "아무도 널 이길 수 없어", "너는 가문의 자랑이야", "너는 너무너무 특별해", 이렇게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관계 왜곡을 가져오게 됩니다. 무조건 긍정적인 것을 많이 부풀려주는 게 좋은 것이 아니라, 대체로 견딜 만하고 납득할 만한 메시지를 주는 게 중요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괜찮아', '이만하면 됐지', '충분해' 라는 것이 아이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느낌입니다."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p.84
그래. 이거지. 부풀려놓지 않은, 그럼에도 아이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메시지. 이것만으로도 현실적이고 충분한 메시지이다. "괜찮아", "이만하면 됐지", "충분해". 자꾸 되뇐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가족들에게 자꾸 말해주고 싶다.
부모가 심어 놓은(부모님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예언은 평생에 걸쳐, 중요한 관계에서 반복되고 재생된다. 보통 때는 그냥 살다가, 남편이나 자녀 앞에서는 짐이 되는 느낌이 들면 참아지지가 않는다. "예언으로 생긴 관계 왜곡은 중요한 관계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라는 작가의 말은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자가 나를 가장 아프게 하고, 나도 사랑하는 자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p.85
이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자신에게 이런 자기 예언이 있음을 먼저 자각하는 것이다. 그 예언으로 인한 관계 패턴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아.. 내가 짐이라고 생각하는 예언이 있어서, 남편이나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짐이라 여겨질 때 수치스럽고, 우울하고, 화가 나는구나.'라고 밖에서 나를 바라보며 나를 이해해 보는 것, 그것이 출발이 아닐까.
성인이 된 나는, 어린 시절 부모가 나에게 심겨준 그 예언에 따라 살 필요가 없다. 나에게 주는 예언은 내가 채택할 수 있다. 선택권은 부모가 아닌, 나에게 있다. 무의식적 부모에게 선택권을 내어주지 말고, 나에게 온전히 선택권을 내어준다면 어떨까.
책에서는 이렇게 채택한 자기예언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 자기예언을 채택하고, 아이들에게도 전수하고 싶어졌다.
"내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야. 나는 위기가 와도 삶을 돌파해나갈 한끝이 있는 사람이야"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 p.86
미신 같은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심리적 예언의 효과는 강력하다. 주문처럼 외워서 들려주라는 말은 아니다. 내 삶의 주제로 강력하게 작동한 예언을 자각하고, 그 예언이 내 삶에 부정적인 프로그래밍으로 작동했다면 이제는 그 프로그램을 돌리지 않아도 됨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다. 새롭게 짜인, 현실적이면서도 나의 존재의 힘을 믿어주는 자기예언으로 다시 내 인생의 판을 돌릴 수 있다. 내가 먼저 그렇게 나를 지배했던 예언의 힘에서 놓일 때, 우리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내가 심어놓은 그 예언들의 힘에서 풀리게 될 것이다. 마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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