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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Sep 03. 2021

우울해서 페인트칠을 했다.
이제 글이 써진다.

(feat. 문요한 <오티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 나답게 되는 법을 아는 것이다.

                                                             미셸 드 몽테뉴


문요한 <오티움>


6월부터일까. 차츰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내년 박사 과정에 지원할 지 고민이 깊어졌고 결정은 계속 지연되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내년 지원은 결국 유보하기로 결정했지만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인생 후반전에 대한 그림이 선명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흐릿해졌다. 흐릿해지니 불안해졌다. 불안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예전엔 별 관심도 없던 정치/시사 프로그램을 계속 듣거나 잠을 자기 일쑤였다. 3개월 넘게 다져왔던 새벽 루틴도 깨졌다. 이런 모습이 스스로 창피해서 글을 올릴 수도 없었다. 악순환의 연속이랄까. 그러다 이번 주 월요일에 충동적으로 페인트를 샀고 그 길로 집에 돌아와 거실 한 벽면에 페인트칠을 했다. 직원분이 골라준 2021년의 트렌드 컬러로. 컬러명은 기억하지도 못한다.


생전 처음 해 보는 페인트칠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번민을 잊고 오직 페인트칠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혼자 무거운 가구를 옮기고 좁은 의자 위에 올라가 낑낑대며 천장 끝까지 꼼꼼하게 칠하기는 여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틀간의 페인트 작업은 상담을 받아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던 나의 무기력증을 벗어던지게 해주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게 증거가 아닐까.



오티움 = 내적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문요한 선생님의 책을 다 좋아한다. 제주 애월도서관에서 만났던 <여행하는 인간>, 한 달 전 읽었던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도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통합적이고 균형적인 시선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오티움>은 나에게 시의적절한 순간에 다가온 책 같다(책에는 나처럼 우연히 페인트칠을 하며 셀프 인테리어를 통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사람의 사례도 나와있다!). 작가는 약물 처방과 상담만으로 우울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던 내담자가 치료를 그만둔 후 목공 작업을 통해 회복되었음을 알게 된다. 작가는 그를 통해 치유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고, 오랜 고민 끝에 치유란 "고통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활기를 되찾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생의 활기를 되찾게 해주는 여가 활동을 라틴어 "오티움"으로 부르며, 그 뜻을 "내적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으로 재정의한다.


오티움은 슬렁슬렁하는 여가 활동이 아니라 배움과 난이도가 있는 여가 활동을 말한다. 요즘은 다양한 맛집도 많고 집에서 데워먹기만 하면 되는 냉동식품과 재료를 씻어서 조리하기만 하면 되는 밀키트 제품도 많다. 그럼에도 굳이 굳이 장을 보고 씻고 다듬고 레시피를 연구해서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을 들여 인테리어 업체에 의뢰하면 근사하게 집을 고쳐줄 텐데 굳이 굳이 발품 팔고 땀 흘리며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지인은 아들이 곤충과 파충류를 좋아해서 한두 마리 키우기 시작하다가 지금은 오피스텔 하나를 빌려 희귀 파충류를 교배하는 개체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퇴근하고 나서는 파충류에 대해 심화 공부를 하고 유전학 공부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만의 오티움이다.




오티움의 다섯 가지 기준


작가는 모든 여가활동이 오티움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오티움은 수동적 여가(유튜브, TV 시청, 쇼핑, 게임 등)나 일상생활을 파괴하는 중독과는 구분된다. 그가 제시하는 오티움이 되기 위한 5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자기 목적적 autotelic'이다.

결과나 보상에 관계없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오티움은 순수히 그 활동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활동이다.


2. '일상적'이다.

오티움은 매일, 매주 혹은 최소 매달이라도 일상에서 즐기는 여가활동이다.


3. '주도적'이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선택하고 즐기고 배우고 심화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4. '깊이'가 있다.

오티움은 지속성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오티움이 지속되는 이유는 '배움의 기쁨'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즉, 오티움은 배움과 새로운 실험을 통한 '성장 경험'이 필수적이다.


5. '긍정적 연쇄효과'가 있다.

오티움은 그 활동만 기쁜 게 아니라 그 활동으로 인한 기쁨이 확산되어 삶과 관계에 활기가 생겨난다. 오티움은 중독과 구분되며, 오티움은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작가는 이런 기준을 두고 자신의 오티움을 찾기 위한 '자기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고, 자신이 무언가에 몰입했던 순간들을 찾아보고, 가족들의 증언(?)도 참고하라고 독려한다.


문요한 <오티움>

나의 오티움을 찾았지만...


나의 오티움은 무얼까. 작가가 권하는 대로 자기 탐색을 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공부 말고는 별로 잘하는 것도, 관심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러다 3년 전 우연히 접한 심리학 공부는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나에게는 대학원에서의 심리학 공부가 오티움이었던 것 같다. 이미 오티움을 발견하고 그런 삶을 살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올해 6월부터 계속되는 이 번민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처음부터 임상가가 되기 위해서 심리상담을 공부했던 건 아니다. 심리학과 신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강했고 대학원 과정을 통해 이 호기심을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공부 자체가 즐거웠다. 졸업 후 나를 포함해 여러 동기 선생님들이 자격증을 딴다, 상담가로 취업을 한다, 박사 과정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심리학 공부를 한 이유는 순수한 지적 호기심과 내 삶의 변화를 위한 것이었는데, 졸업 후엔 어느새 "일"로 전환하기 위한 고민을 하다 보니 내 마음 깊은 속에서 강한 저항감이 올라왔다. 박사 과정에 들어가 5년 뒤 학위를 따고 자격증을 따서 센터를 열어 상담을 하는 게 내가 진짜 원하는 모습일까. 여러 사람을 통해 알아봤지만 박사 과정에 들어가서 5년 정도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었다.



그리고 3년 동안 심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면서 여전히 심리상담이 좋은 도구임을 확신하지만, 상담만으로 지속적인 치유를 담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상담을 통해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하기도 하고, 변화되지 않아도 나 자신을 잘 수용할 수 있게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다른 처방이 없을까. 작가는 이 지점을 오랫동안 고민했고 오티움의 의미를 재발견하면서 임상의사의 역할을 정리하고 성장심리학자로서 글을 쓰고 연구하고 있다. 작가의 이런 창조적 관점에 깊이 공감한다. 나도 나만의 관점과 정리된 언어를 가지고 나와 세상을 바라보길 바란다. 오티움을 발견했어도 슬럼프는 통과의례처럼 반드시 찾아온다. 나에겐 지금 내 오티움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오티움을 지속하기 위해 작가는 관찰하기, 위로와 격려, 변화의 추구, 회고하기, 잠시 멈춤, 함께하기, 깊이 추구의 방법을 권한다. 아마도 난 지금 '잠시 멈춤' 단계에 있는 게 아닐까.


이번 주말엔 또 페인트칠을 할 예정이다. 페인트칠을 하며 낡은 집에 활력을 불어 넣으니 낡고 지친 내 마음에도 새 기운이 돋는 것 같았다. 1년 반을 살아온 집인데 이렇게 흠이 많은 지도 몰랐다. 흠집 난 벽을 바라보니 그 벽이 내 마음처럼 보였다. 페인트칠이 상처 난 곳에 연고를 발라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흠을 보수하기.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이제 더 이상 흠이 많아서 볼품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아직 볼만하며 귀하다고 말해주기. 더 이상 회복 불가라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 아직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며 그 옆에서 함께 견뎌주기... 나는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 행위를 하며 나 스스로도 만족하고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원트(want)를 실현할 구체적인 모습은 아직 미정이다.


페인트칠을 해도 완전히 새것처럼 될 순 없다. 상처의 흔적은 남는다. 그럼에도 칠하기 전과 후는 다르다. 나에겐 꾸밈이 아니라 가꿈의 행위다. 페인트칠을 하며 상처의 흔적은 흐려지고 가꿈의 흔적은 선명하게 남았다. 그래서 자꾸 페인트칠한 벽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괜스레 미소 짓는다. 내 마음도 그러하길 바라며. 읽고 쓰며 가꾸어지는 내 마음도 자꾸 바라볼수록 미소 지어지는 그런 날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내일 오전 페인트를 사러 가야겠다.



★ 마음에 담고 싶은 구절들


"행복을 미루면 행복의 감각은 녹슨다(p.20)"


"치유란 잘 놀지 못하는 상태를 잘 놀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p.35)"


"행복은 기본적으로 감정이다... 나는 행복의 핵심이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보는 유심론적 태도를 경계한다. 행복의 핵심은 '좋은 경험'에 있다(p.37)"


"좋은 행복과 해로운 행복이 있다... 좋은 행복은 '목적 지향적 행복'이다. 이는 순간적인 쾌락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행동과 통합시켜 자아를 최대로 발휘하는 상태'다. 즉, 자신의 능력이나 자질을 갈고닦을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만족감을 말한다. 이러한 목적 지향적 행복은 쾌락적 행복과 달리 중독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p.43)"


"즐거움과 기쁨은 다르다.... 기쁨은 순수한 쾌감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불쾌감을 거치고 난 후의 쾌감이다. 이 불쾌감은 만족의 지속에 중요한 연료가 된다. 단, 이 불쾌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일 때 그렇다. 즉, '자발적 불쾌'가 있을 때 '쾌'는 깊어지고 길어진다. 즐거움은 쉽게 휘발되지만 기쁨은 오래 지속되는 이유다. 복잡하게도 인간은 '감정적 낙차'를 좋아하도록 진화해온 것이다."


"만약 내가 삶을 창조할 수 없다면 파괴할 순 있다. 삶을 파괴하는 것도 역시 나로 하여금 삶을 초월하게 하는 것이다 by 에리히 프롬.... 프롬은 인간의 파괴성이나 공격성이 창조적 욕구의 좌절에서 기인했다고 본 것이다(p.72)".


"중년의 위기를 잘 넘어서는 이들은 삶의 외부를 꾸미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내부를 가꾸는 데 치중한다. 즉, '꾸밈'에서 '가꿈'으로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p.81)".


"여가는 쉼과 함께 채움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재충전이 되어야 한다(p.85)".


"하기 싫은 걸 하지 않는 것은 소극적 자유일 뿐이다. 진짜 자유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에 있다(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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