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가 늙는다고 스타일이 늙는 것은 아니다 1

남편의 옷장

by 이랑






남편의 옷장 속 재킷



어디서 본 것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남자옷은 숨겨진 주머니와 같은 기능적인 면이 여자옷에 비해서 훨씬 뛰어나다고 했다. 남편의 재킷을 꺼냈다. 재킷 밖으로 손을 넣기 좋은 주머니가 양쪽으로 있으며, 장식용이라 생각되는 작은 포켓도 가슴 쪽에 있다. 재킷의 안쪽을 들쳐보면 단추잠금은 옵션으로 양쪽으로 깊은 주머니가 있으며 하단에는 상단보다 조금은 작은 사이즈의 주머니가 달려있기도 하다. 그 수는 다르기는 해도 일반적인 여성용 재킷보다는 많았다. 그렇게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많아서 쑤셔 넣고 다니는 건지, 가방을 들기보다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남자들 때문에 주머니가 많아진 건지, 그것이 서로 강화하여 주머니의 개수가 늘어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남성용 재킷은 대체로 주머니가 많았으며 또, 여성용 보다 편했다.


처음 그의 옷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사놓고 입지 않는 옷이 아까워서였다. 내 옷장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빛 볼 날 없는 남편의 옷들을 살펴보다가 하늘빛이 감도는 밝은 회색 재킷을 꺼냈다. 리넨 같은 조직감이 있는 면으로 된 봄가을용 재킷이었다. 평소 본인의 몸을 과소평가하는 버릇이 있는 남편이 사놓고는 불편해서 못 입겠다며 입지 않는 옷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작은데, 딱 맞다고 그렇게 우기더니 결국 한 번 입고 나서는 입지 않는 옷이 되었다. 그에게 작다니 오히려 잘 됐다. 내가 입기에는 적당한 오버핏으로 딱이었다.


그 옷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키가 컸기 때문에 남자옷을 종종 구입해 입었었다. 그렇게 입던 옷은 남동생이 탐내기도 했었다. 남편의 긴팔 셔츠를 내 옷처럼 입기도 했었고, 남자옷 코너에서 남편옷을 쇼핑하다가 이건 내가 입어도 되겠는데 싶어 구입하기도 했다. 남편입을 빌려 말하자면, 평소에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는 나는 여자용보다 남자용 티셔츠를 사서 입는 것을 즐겼다. 그렇지만 남성용 정장 재킷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몇 년 동안 오버핏이 유행하면서 옷장의 가용범위는 넓어졌다. 여성용 컬렉션의 어깨가 점점 넓어지더니 작년에는 남자옷인가 싶게 벌크 업된 재킷들이 눈에 띄었다. 쇼핑을 자제하고 있었던 나는 이거다 싶었다. 겉옷을 좋아하는 남편은 티셔츠에 비해서 재킷종류가 많았다. 평소 정장류를 입지 않고 편안하게 사무실에 출근을 했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 빛을 볼까 말까 하는 것들이었다. 재킷마다 핏도 달랐고 색깔도 미묘하게 달랐다. 블랙이라고 같은 블랙이 아니었으며 네이비도 밝기가 달랐다. 블랙인 줄 알고 입고 나왔는데, 밖에서 봤더니 네이비인 경우도 있었다. 105 사이즈의 재킷은 나에게 많이 컸다. 잘못 입으면 아빠옷 몰래 걸치고 나온 걸로 의심받을 수 있는 웃기는 본새가 될 수도 있었다. 비례를 맞추고 포인트로 시선을 잡을 적당한 액세서리를 골랐다. 어깨가 컸기 때문에 왕발로 보이는 워커를 골랐다. 시선의 포인트는 네이비 색 넥타이로 맞추고, 일부러 느슨하게 맸다. 그리고 마무리로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버색상의 보잉 선글라스를 썼다. 때는 햇살이 눈부신 가을이었다.






응. 스타일이 늙는 건 아니야. 내가 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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