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가 늙는다고 스타일이 늙는 것은 아니다 2

쇼핑은 어렵고 참기는 즐겁고

by 이랑


사실은 반대지.






작년 겨울 세일에 구입한 바지와 거울의 손자국. 사춘기 남자 아이의 손은 왜 매일 끈적한 걸까



쇼핑은 여전히 즐겁다. 그러나, 근래 몇 년 동안 일 년에 한 번 옷을 살까 말까 하며 쇼핑을 자제했었다. 출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새 옷을 입고 자랑할 만한 모임도 없었을뿐더러, 있는 옷으로도 어떤 모임에서든 한 번은 입을 만한 옷은 있었고, 좋아하는 옷이나 입는 옷만 계속해서 입는 버릇도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옷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 나이쯤 되어보니, 다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여러 가지 스타일을 입어보고 겪어보고,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이라던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신기한 것도 더는 없고 새로운 스타일에 목마른 것도 아니었다.(올여름 핫했던 밀레니엄 스타일의 Y2K 패션이 내가 20대 일 때-아래위로 그때의 노출이 더 했었으나- 입었고 유행했던 것 들이었는데 반가움보다는 지겨움에 치가 떨렸다. 치골이 드러나고 쭈그려 앉으면 속옷과 엉덩이 골이 보일락 하는 그 불편한, 그때의 로우라이즈란! 올해는 오히려 바지의 품도 넉넉하고, 하이웨이스트가 직전까지 유행했던 터라 그런지, 허리선이 많이 내려가지 않았다. 단 하나 좋았던 것은 카고바지가 돌아온 것이었다.)


쇼핑을 줄이는 것은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보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최대한 멀리하기. 꼭 필요한 것이 있어서 찾아보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따로 찾아보지 않기. 그것만 실천하면 되었다. 남편은 본인의 옷을 알아서 잘 샀기 때문에 내가 따로 신경 써서 볼 필요는 없었다. 동거 중인 사춘기 남자아이의 경우에도 평소에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고, 본인이 특별히 요구하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편한 티셔츠와 바지, 계절에 따른 겉옷 몇 벌 정도면 별다른 쇼핑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어쩌다 유럽의 한 spa브랜드의 세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그렇게 사기 어려운지 몰랐지. 세일 시작 날에 맞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아놓고 어떻게 결제하나 하고 시간을 지연하는 사이 하나씩 품절이 되더니 결국은 하나도 사지를 못했던 것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이를 갈고서, 그다음 겨울 세일에 도전. 포스팅된 글들을 찾아보고 예습을 철저히 하고는, 미리 장바구니에 담고 세일 시작하자마자 결제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백화점 입점 브랜드들보다 훨씬 저렴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의 옷들은 오랜만에 쇼핑하는 마음에 불을 질렀다. 그런데,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장바구니에 담다 보니 140만 원에 육박하는 깜짝 놀랄 금액에 다시 부랴부랴 대량 삭제하며 추려냈다. 그래도 70만 원이 넘는 금액. 이 브랜드의 여성옷을 거의 사본적이 없어서, 사이즈를 잘 몰랐기에 받아보고 안 맞는 옷과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은 반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세일 당일, 시작과 함께 바로 결제를 진행하고 설렘을 가득 안은 채 기다림을 시작했다. 세일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해서인지 총알배송은 아니었지만 며칠의 기다림 끝에 커다란 박스를 두 개 받았다. 역시나 택배 받는 것은 너무나 즐겁고! 바로 하나씩 입어보면서 몸에 잘 맞으면서 마음에도 드는 옷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들은 대로 사이즈의 편차가 있는 편이라 맞지 않는 옷이 많아서 내 것이 아닌 것은 쉽게 골라낼 수 있었다. 반품을 할 옷은 입어본 즉시 다시 곱게 접어 상자에 넣었다. 여성스러운 몸매 라인의 꽃무늬 원피스는 오래도록 고민했지만 필요한 바지 몇 벌을 골라내고는 결국 반품을 결정했다. 애초에 여러 벌을 함께 사는 경우는 거의 없는 지라,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는데, 받은 것 중에 반을 넘게 반품을 하게 되었다. 반품을 하게 되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쇼핑의 죄책감을 일부 덜어낼 수 있어서 그것도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되었다.


실제로 몇 년간 내 옷쇼핑을 거의 하지 않다 보니 편하게 입을 길고 넉넉한 품의 청바지도 무난하게 입을 정장바지도 없어서 불편하던 참이었는데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그리고 더 구입하고 싶었던 것을 잘 참아낸 나 자신에게 스스로 칭찬도 할 수 있었다. 쇼핑을 참아낸 원동력은 물건을 줄이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지만, 사놓고 몇 번 입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옷들에 대한 후회도 한 몫했다. 어렸을 때 와는 다르게, 옷을 구입하고자 할 때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저걸 구입하면 얼마나 자주 입을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이 한 가지 질문이면 답이 바로 나오기는 한다. 어떤 것이든 물건을 집으로 들일 때 수만 번의 고민을 하게 되는데, 사놓고 잘 쓰이지 않고 먼지가 쌓이거나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은 후회와 더불어 자책감을 들게 하기도 하기에 그것을 보면서 두고두고 괴로워하지 않기 위해서 머릿속으로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해 보고 꼭 필요하고 잘 쓸 수 있겠다 싶은 물건만을 들이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이다. 물론 실패하기도 하지만, 늘 노력은 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질문을 덧 붙이자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입거나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늙어 보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타임리스 디자인(timeless design)이나 클래식한 것들을 선택하면 폭탄을 피할 수 있는 확률이 좀 더 높아진다는 생각이다. 물론 용기가 있고 질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용감한 선택을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실패를 안 하면 좋은 것이고 , 실패를 하더라도 다음에는 그것을 발판 삼아 실패에서 멀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예전의 나는 눈에 띄고 특이한 것을 좋아했으며 충동적으로 물건을 구입했기 때문에 그런 쇼핑패턴에 대한 미련도 없고,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금의 나는, 많은 물건을 가진다는 것이 짐이라고 느낀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여러 개씩 중복하여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필요하지 않더라도 한번 가진 물건을 내어놓거나 없애버리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많은 물건을 가지지 않으려고 고민한다. 물론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쇼핑은 즐겁기 때문이다.(택배를 받을 때의 기쁨이란!) 그렇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것을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많이 가지는 것이 미덕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광고나 소셜미디어 같은 다양한 유혹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미니멀리스트라고 부를 만한 경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며, 또 다른 사람들이 노력하고 분발하고 있을 테지만,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 소유하는 행위를 무감각하고 무비판적으로 반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인스타그램 같은 미디어는 착각을 조장한다. 본인이 가진 물건을 자랑하며, 본인의 소비를 자랑하며 그것이 엄청난 가치를 가진 대단한 행위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이를 테면, 명품을 소유하면 명품이 된 것 같은 착각 말이다. 그러나 모두가 명품가방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명품이라 번역해서 쓰는 단어의 원래의 영문은 'luxury'로 우리가 생각하는 명품(masterpiece)이 아니라 '사치품'이란 뜻이다. 그저 '비싼 물건'이라고 생각을 전환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명품(luxury)을 가진다고 그 사람이 명품(masterpiece)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명품으로 치장하는 대신, 내가 명품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지만) 훨씬 더 멋진 일이기도 하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명품의 소비가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욕망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다만, 명품에 휘둘리지 않고 소비의 주체로써 진짜 가치에 더 집중하며 물건을 고르고 소비하는 것이 훨씬 나은 소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사치품을 살까 고민하는 것보다 좋은 책 한 권 더 읽으며 내면을 키우는 것이 멋진 일이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이 훨씬 싸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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