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왜 그랬던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방문했던 내과에서 우연히 혈액검사를 했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7.3이라고 했다. 빈혈이라고 했다. 철분제를 처방받았다.
내 몸에 대해 참으로 무지했었다. 생리과다로 인한 빈혈이었다. 그동안의 모든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원인 모르는 몇 가지 고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만성피로, 호흡 가쁨, 두통, 어지럼증, 손떨림 등 나는 빈혈증상 그 자체의 인간이었다. 특히 놀랐던 것은 이식증(쌀이나 얼음 흙 등을 먹는 것에 탐닉하는 증상)이었다. 나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할 것 없이 얼음을 깨먹는 습관이 있었다. 추워서 덜덜 떨면서도 얼음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고, 그것을 아작아작 깨물어 먹으면서 달콤하다고 느꼈다. 얼음을 깨먹는 행위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빈혈증상 중의 하나라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은 이후에 벌어졌다.
나는 단지 얼음을 좋아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얼음을 깨 먹는 것을 과하게 좋아해서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면서 냉동실 문을 열고 입안에 얼음을 넣었다. 여름에는 컵에 가득 얼음을 담아서 들고 다니며 먹곤 했고, 햄버거를 먹으러 갈 때면, 콜라보다는 그것을 다 먹은 후에 남은 얼음을 탐냈다. 다들 일어나서 자리를 정리하고 나갈 때, 마지막까지 얼음 컵을 들고서 남은 것을 다 씹어먹고서야 아쉬워하며 정리대에 내려놓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철분제를 몇 달 복용하고 난 뒤 어느 날 자각했다. 얼음을 씹는 것에 보였던 광적인 집착이 사라져 있었다. 홍해를 갈랐다는 모세보다도 충격적으로 놀라웠다. 지금은 얼음을 씹어 본 지도 오래되었다. 그 뒤로 언제인가, 예전에 먹던 그 얼음 맛을 떠올리면서 얼음을 깨물어보았는데, 그때의 맹렬했던 욕구는 물론이고 도대체 그때는 무슨 맛으로 먹었던가 싶게 맹물의 맛만 느껴졌다. 그러나 기억 속에는 몇 년 동안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았었던 달달한 맛이 그대로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