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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s Jul 28. 2021

SEB' S

미련을 담다. (라라랜드)

 라라 랜드 1시간 47분경, 미아는 남편과 한 재즈바에 들어선다. 너무나 우연히 들어온 낯선 이곳에서는 왠지 모를 익숙함들이 있다. 그리고 SEB's 란 간판을 마주한 순간. 마음속 안에 꽤 무거운 무언가가 철렁하고 떨어진다. 

 그녀의 남편은 가장 좋은 자리를 골라놨다. 미아는 뒤늦게 그 자리로 가 앉는다. 무대가 가장 훤히 보이는 자리이다. 앞선 공연이 끝나고 카페의 사장이란 남자가 등장한다. 여유 있는 모습으로 마이크를 잡은 남자는 순간, 미아의 눈을 보고 멈칫한다. 모든 여유로웠던 몸짓이 한순간만에 어색해졌다.  

 서로의 눈 빛이 마주하는 순간, 그들은 어떤 마음이 이었을까. 세바스찬은 잠시 멈칫하더니 바로 피아노 앞으로 간다. 그리고 연주를 시작한다. 둘은 지난 연인이다. 

 세바스찬은 그 순간을 기다려왔을까. 상상하고 있었을까. 미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한 번쯤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저 행복한 신혼의 나날에 그 자리가 불편했을까. 

 이어진 세바스찬의 연주에 따라오는 엔딩씬은, 현실에서 상상으로 이어진다. 그들이 만났던 순간순간, 작은 선택들이 달리 선택되었더라면, 세바스찬이 미아의 꿈을 따라가 줬다면, 상상과 이상을 넘어 그들이 돌아온 한 재즈바 안엔 세바스찬과 미아가 나란히 앉아 서로의 살을 맞대고 입을 맞추며 공연을 보고 있다. 그곳에 셉스는 없었다. 


 셉스는 재즈와 미련이 가득한 공간이다. 


 미아는 꿈을 좇아 유럽으로 날아갔고, 좋은 사람을 찾아 결혼을 했으며, 끊임없이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나아갔다. 그녀는 꽤 유명한 배우가 돼있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다.

 셉스라는 작은 꿈을 이룬 세바스찬은 반면, 그곳에 자신이 사랑하는 재즈와 자신이 사랑했던 미아에 대한 미련을 가득 담아놓았다. 미아와 연애 중에 만들어낸 이름이 셉스인 만큼, 이름부터가 미련이 가득하다. 

 기다렸을까. 언젠가 한 번쯤은 미아가 셉스란 이름을 보고 들어와 주지 않을까 하고. 들여다보지 않을까 하고. 오랫동안 피아노 앞에 앉아 관객석을 수시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셉스 안에는 정말 많은 재즈에 대한 사랑과 그의 미련이 오래 담겨있었다.



 미련, 사전에서는 미련을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남아 있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바로 그 옆에는

미련하다.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릴 정도로 매우 어리석고 둔하다.라고 쓰여있기 까지 하다.

 요즘 같이 무소유, 버리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기에, 확실히 미련은 부정적인 단어로 더 그 이미지를 확고히 굳히는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잘 버리지 못했다. 아직도 내 침대 한편에는 7살 때부터 껴안고 자던 인형이 있고, 신발이며 가방, 옷, 책 등 참 오래 버리지 못하고 쓰지 못하더래도 일단 두곤 한다. 버리고 나면 한동안 허전하고 그새 다른 것들에 익숙해질 텐데. 그 순간이 참 어렵고, 한 동안이 어렵다. 남들보다 더 오래 기억한다지만 그도 더 지나면 남들과 같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다 알면서도, 여전히 버리는 것, 놓아주는 것이 어렵다. 

특히 인연에는 더더욱. 

 셉스란 곳이 그래서 내게 더 끌렸을까.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은데, 꼭 셉스란 이름에 담아 쓰고 싶었다. 


만나기는 한나절이었지만, 잊기에는 평생도 모자랐다.


 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를 가슴 한편에 두고 기억하곤 한다.

 

 참 오래 함께한 인연을 근래에 잃고 잊기를 소망하지만, 이 미련 덩어리, 미련 가득한 나는 글자들로 셉스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세바스찬이 재즈와 미련을 겹겹이 섞어 셉스란 공간을 만들어 냈듯이, 이 흰 페이지 안에. 이 작은 이 차원의 공간에. 글자와 미련을 섞어 만들어 내 보고자 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이미 끝난 시간들이라지만 이 추억들을 가지고, 끝나지 못한 마음들을 가지고 한 글자, 한 글자씩 글과 아쉬움을 담아보고자 한다. 


 누구나 겪는 이별이라지만, 누구나 같은 이별은 아니기에. 

내 습관이 변했고, 내 삶이 변화된 부분이 남아있는 인연이었기에. 

미련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잊히면 잊히는 그대로. 그저 이 작은 종이에 써 내려가고 싶다. 

많이 원망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많이 서운하지만, 한탄하고 싶지 않은.

많이 상처 입었지만, 그래도 오래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호기롭게 잊는다 하지만 도저히 생각해도 평생 가져갈 수밖에 없는.

여전히 할 말, 듣고 싶은 말이 많이 남은.

여전히 참 소중한 그 인연에게.


나도 여기에 


셉스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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