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연인과의 이별 뒤 가장 힘든 건 사실 아침이다.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 멍해져 있는 순간엔 내가 헤어졌다는 사실이 뚜렷이 각인이 되어있지 않다. 시야가 또렷해지고 지금 새 날이 밝았다. 일어나야 한다를 정확히 인지 하는 순간쯤, 아 맞다. 나 헤어졌다. 뚜렷이 새로 스스로 다시 각인한다. 매일 이별하며 사는 기분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무릎 수술 후 복귀한 집에서의 가장 힘든 건 사실 아침이다.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 멍해져 있는 순간, 내 다리가 온전치 않다는 사실이 뚜렷이 각인이 되어있지 않다. 시야가 또렷해지고 지금 새 날이 밝았다. 일어나 볼까 하며 다리를 뒤트는 순간 뇌에서의 각인을 무시한 채 너덜너덜해진 고통이 바로 온몸을 뒤엎는다. 나 수술했지 를 인지 하기 전, 찾아오는 고통에 입술을 꽉 깨문다.
밤과 아침, 오롯이 내 다리에만 집중이 되는 시간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시선과 소음과 몽상 등에 정신이 없는 시간 때에는 확실히 예후가 꽤 좋은 편인 것 같다. 발을 살짝 디디며 다닐 수 있고, 가끔 피가 쏠리는 고통이나, 수술 자국 등에서 오는 고통들을 제외하고는 애매한 동작들에서 오는 통증들이 사라지고 있어 좋아지고 있음을 순간순간 느낀다.
한 동안 정신없이 살았는데, 찾아온 휴식은 사실 그리 달갑진 않다.
창 밖에 멀쩡한 무릎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새삼 부럽다.
어차피, 몇 주 짜리 그리 긴 기간도 아닐 텐데, 마지막 잎새 주인공 마냥 궁상도 떨어보고, 가끔 찾아오는 고통에 축구에 대한 정도 떨어져 보기도 한다.
그래도 어떻게, 한 번 좋아하기로 한 것들이 싫어지나. 나도 모르는 사이, 축구 영상, 유튜브에 십자인대 수술 후 축구 복귀 등을 찾고 있는 걸 보면, 답도 없다.
동생이 회사에서 받은 아이패드를 나에게 넘긴 것이 사실, 큰 위안이었다.
멀티 기기 와는 역시 거리가 먼 사람이다 보니, 종이에 그림이나 낙서하고 그나마 축구를 못하게 돼서는, 몇 일아 크릴 물감과 붓을 사, 겨우 준비 30분, 마무리 30분이나 걸리는 그림 그리기를 하며 시간을 때워왔기에, 지금 다리가 온전치 못한 채로 다시 그것들을 하려니 만만치 않겠구나 했던 내게, 아이패드는 사실, 구원 과도 같은 존재였다.
종이와 펜 그 외 부수적인 붓. 물. 물감 등 대신 모니터와 막대기로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건너 건너 사용하는 것들을 훔쳐만 봤지, 확실히 직접 소유해보고 사용해보니, 정말 놀랍도록 세상이 간편해졌구나 느낀다. 특히 그림 어플에는 다양한 재료들과 도구들이 클릭 몇 번에 마련이 돼버리니, 뭔가 어마어마한 도움을 받으며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미술을 공부하거나 심도 있게 작업을 해본 게 아니라 깊이가 거의 발목 정도에 잠겨 있는 수준이기에 그런 걸 수도 있으나, 여하튼. 좋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문득문득 부러워지다가 이 한 평 짜리 도화지를 채우려고 유학도 가고 고등학교 때부터 어마어마하게 그림을 그려댔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새삼 어디 가서 그림 그린 다는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싶다가도 재미있고, 역시 나는 축구나 공놀이 체질인가 싶다가도 이런저런 그림들을 또 정신없이 그리다 보니 벌써 밤이 지나갔다.
잠들기 전, 문득. 알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나는 포유류로서 탯줄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또 데미안 이란 소설을 그리 막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피주사들을 꽂고 들어온 알에서 다시 깨고 나가기 전까지 시간들을 알차게 써야겠구나 근데 어느 방향으로 누워야 다리가 안 아프지. 하며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