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기적의 한 걸음
인류가 직립 보행이 가능하면서 가질 수 있던 가장 큰 이점은 역시 손이다.
두 손이 남자 이 손으로 도구를 쥘 수 있었고, 도구를 다루는 인간의 뇌는 더더욱 발달하게 되었고,
수많은 포식자들 사이에서 당당히 먹이사슬의 정점에 서면서 문명을 이룩했다.
무릎 수술 이후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면, 역시 손이 자유롭지 못하단 것이었다.
걷는 것을 도우려면 손으로 무언가를 짚어야 했다. 목발을 짚거나 주변 배치돼 있는 것들을 짚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들 수가 없었다. 물을 마시거나 과일을 먹고도 바로 치울 수가 없었다.
집이 날로 어지럽혀져 갔다.
언젠가 뇌는 움직이는 것들에만 존재한다는 한 교수의 강연을 본 적이 있다. 움직이며 바뀌는 상황들을 시시각각 판단하고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뇌가 발달한다는 것이고 그러기에 식물들은 뇌가 없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웠다.
계속 좁은 방 안에서 움직이기 어려우니 '그게 맞을지도' 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방을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 뇌가 굳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데 계속 버벅거리거나 혼자 맥락을 못 잡고 헤매고 있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도 해보고. 별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낸 뒤, 어느새 크리스마스였다.
내 생에 가장 좋아하는 날을 꼽으라면, 단연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는 늘 풍족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 내겐 특히 더.
그날 부근으로 해서 며칠은 늘 어떠한 행사를 준비하거나 많은 선물과 맛있는 음식들이 늘 가득했고 거리에 사람들도 모두 행복해했다. 또 나는 부모님의 모의(?)로 무려 6학년 때까지 산타가 있는 줄로 알았다.
더는 선물을 주기가 힘드셨는지 부모님께서 직접 밝히셨지만, 그 전 까진 정말 잘도 속았다.
한 번은 감기로 아픈 적이 있었는데 산타가 현금을 주고 갔다는 엄마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 적도 있었다.
움직임이 많이 필요할 때였던 것 같다.
여하튼 작년 크리스마스도 어려운 와중에 그래도 분위기도 내고 재밌게 보냈었다.
올해는.
그저 무탈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사회 분위기나 온갖 것들이 마침 크리스마스를 못살게 구는 것 같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움직이는 것이 많이 힘들다 보니 그 기조에 따라가며 조용히 보낼 준비를 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생에 어떤 아침 보다도 크리스마스 같지 않고 평범했다.
크리스마스 마니아인 나는 사실, 아침부터 크리스마스라 하면 다른 계절의 냄새를 맡곤 했다.
크리스마스 특유의 냄새와 온도가 있는데 이번엔 정말 평범했다.
조금 늦은 아침에 일어나 천장을 보다가 문득, 나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었다.
무슨 용기였을까. 침대 밑으로 냅다 왼발을 내렸다. 아직 피가 원활히 돌지 않아 피가 아래로 쏠리면서 특히 수술 부위 쪽에 무거운 압박감이 느껴졌다. 잠시 시간을 두자, 발까지 피가 닿아 열감이 골고루 퍼지는 것이 느껴지자 발을 디뎠다.
'흩!'
걸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어이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걸어졌다.
이게 맞나 싶어 빨리 물을 한잔 쩔뚝거리며 퍼온 뒤, 십자인대 카페에 들어가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믿는 대로 보이는 건지, 그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릎으로만 걷는 게 아니잖아요'라는 댓글이 새삼스레 마음이 와닿았다.
하기야 십자인대가 끊어지고도 1달 간을 서서 일을 하고 물건도 들고 할 건 다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증상이 뭐예요?'라고 수술 마지막 면담까지 물어보셨을 정도로 십자인대 없이 일상생활은 다 가능했다. 수술 방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이 마취 뒤 무릎을 한 번 쭉 빼보시고는, 근육들이 원체 잡고 있어서 무릎이 안 빠졌었는데 마취하고 빼니까 빠지네. 무릎이 빠지는 걸 확인하고 수술에 들어갔노라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래도 수술 직후 너무 급작스럽게 보조기도 목발도 떼고 걸어 다니면 의사 선생님께 혼날 수 있으니, 소수의 가족들과 나만 아는 것으로 숨기기로 한다. 그리고 되도록 덜 걷고 보조기를 잘 착용하다가도, 가까운 거리만 그냥 되는대로 맘껏 걷기로 한다.
크리스마스는 역시나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