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 재활

90도

by 영s

1월 27일까지 90도.

지난 외래 진료 때, 3주 뒤에 다시 오는데 그때까지 무릎을 90도까지 접을 수 있게 만들어 오라 하셨다.


보통 십자인대 재건술 이후에 수술 다음 날부터 바로 재활 운동에 들어가 바로 무릎을 꺾고 다른 근육 운동을 시작하는 트렌드와는 달리, 내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천천히. 최대한 수술한 곳을 아끼면서 느긋하게 재활을 하는 것을 권유하셨다.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새 인대가 자리잡기 전부터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를 먼저 말씀해 주셨다.


동네 같이 공을 차던 동생 하나도 나 보다 몇 달 먼저 십자인대가 끊어져 수술하고 재활 중이었는데, 수술 후 바로 재활과 무리한 운동들을 하다 보니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겨 6개월까지 목발을 못 떼고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온몸에 게으름이 꾸물 꾸물 숨어 숨 쉬고 있던 나였던 터라 수술 날짜를 잡은 뒤, 열심히 매일 땀 흘리며 재활해야지 했던 마음가짐을 가졌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몇 주를 정말 터무니없이 누워서 보냈다.


헬스장에 인파가 가득 차고 독서실에 자리가 없다는 열의와 결심 가득한 1월 초반을 부상을 핑계로 늘어지며 보냈기에, 재활병원으로 가는 내 걸음에는 밀렸던 열의와 결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재활병원은 주치의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곳으로 갔다.

대학 동기 분 께서 하는 곳으로, 선생님들끼리도 수시로 연락을 하실 수 있고 꽤 만족도 있는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추천하셨기에 알아보던 다른 곳들의 목록을 지우고 바로 그 병원으로 갔다.

재활병원에서의 진료도 수월했다. 주치의 선생님의 스타일에 맞게 천천히 일단 수술 부위를 위주로 도수 치료와 무릎 주변 근육들을 깨우는 간단한 운동 치료 정도만을 먼저 권하셨고. 역시나 천천히 재활하는 것을 추천하셨다.

오른쪽 허벅지에 비해 상당히 야위어버린 왼쪽 허벅지의 근육들을 보면 참 아쉽긴 했지만, 열의보다는 경험과 가이드를 따라 오래 보존해 다시 오래 운동하고 싶은 마음에 나 역시 마음가짐을 천천히. 더 차분히. 가져보기로 한다.


첫 도수 치료 시간. 선생님 한 분이 무릎을 정성스레 드시고는 천천히, 또 다양하게 이래저래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하며 이어 마사지도 이어갔다. 그리고 무릎 밑 쪽을 받치시고는 무릎을 천천히 구부려주셨다.

직각이 되기 전쯤부터 무릎이 당기면서 잘 굽혀지지 않고 통증이 조금씩 몰려온다.

그리고 다시 무릎을 필 때면, 꽤 뻑뻑하게 뒤늦게 인대가 따라 펴지는 느낌이 온다.

정말 기름칠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의 뻑뻑한 뻐근함이다.

나의 무릎의 현실을 또다시 느껴보니, 생각보다 갈 길이 멀구나. 느껴진다.


이어 30분가량 간단한 운동과 도수치료를 이어 가며 무릎 주변과 무릎을 깨웠다.

마지막에 다시 꺾을 때는 거의 90도가량 접는 데 성공했기에 주치의 선생님께서 내 주신 숙제는 다 했다.

주섬 주섬 보조기를 차며 귀가 준비를 한다.


문득

인생이란 게 정말, 별일이 다 일어난다 싶다.

그렇게 아낀다고 아껴 쓴 무릎에 기어코 탈이나 이렇게 보조기를 차고 잘 걷지도 못하고 이게 필요가 있나 했던 실비 보험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재활 병원을 들낙거리는 내 모습에. 새삼 세상. 파도 참 빈틈없이 온다 싶다. 하기야. 없이 사는 것이 상상도 안됐던 사람과도 이제는 없이 지내니.

언제나 바로 어제 있던 시련이 제일 커 보이지만 어느새 상상도 못 한 더 큰 시련이 와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의 내가 겪는 일도 곧 아주 조그만 일이 되겠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기에 더 의연할 것. 너무 소란 피우지 말 것. 어차피 지나갈 것으로 여길 것.

아직은 촉촉한 상처들도 곧 아물 것임을 확신할 것. 몸도 마음도.


보조기를 차고 내딛는 발걸음은 조금 더 가벼워진 듯했다.


다음 내원 날짜를 잡고 병원 밖을 나섰다.


겨울 햇살이 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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