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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ler Nov 14. 2022

사과하지 않는 우리

꼰대의 반성과 항변 series- 삶에 배인 버릇이 새롭게 느껴질 때

점점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가 어려워졌다. 

아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미안하다는 말의 의미와 용처가 달라진 것인지 갸우뚱할 때가 많다. 사과해야 하는 상황과 주체와 대상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사과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 사과하지 않고, 엉뚱한 상황에 모르는 이가 미안하다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사과하기 전에 '아니 그게...' 아니면 '어머 미안해, 그런데...'로 먼저 시작하는 일이 많아졌다. 


지금 우리가 가장 흔하게 듣는 깔끔한 사과는 고객 대응 콜센터의 “죄송합니다 고객님”이다. 사실 콜센터의 '그녀'가 이 통화 이전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나'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가. 그들의 '죄송합니다 고객님' (혹은 지금은 사라진 것 같은 사랑합니다 고객님) 은 진실한 사과의 마음이 아니라 A/S의 다음 단계로 가는 절차에 필요한 학습된 대응에 다름없다. 


개인 대 개인이든, 그룹 대 그룹 이든 내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직접 사과하는 것을 듣기가 어려워졌다. 가끔 상대방에게 사과를 기대하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외면하는 이들을 보면서, 내가 잘못했나, 지금 꼰대 짓인가 라며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반대로 상대가 사과를 요구하면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사과하는 것이 맞나....? 


처음에는 시대에 따른 언어습관의 변화 트렌드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신조어와 더불어 한글의 구성과 어휘, 용법이 영어화 되어가고 있는 요즈음, 점점 더 다양한 외국어 스타일이 태도에도 반영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과거와는 달리 외국 생활과 경험이 입에, 몸에 녹아든 남녀노소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니까. 최근 웃픈 사흘, 금일, 심심한 등의 해프닝을 보아도 한자 섞어 쓰는 것이 편한 부모세대와 영어 섞어 쓰는 것이 편한 자녀 세대 차이가 극명하다. 


독일어 회화 (영어를 비롯한 다른 외국어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기초를 배울 때 꼭 포함되는 문장 중 하나는 미안하다는 말이다 (Entschuldigen Sie - Entschuldigung).  

그런데 독일어 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는 주석을 달았다. 독일 사회에서 가벼운 시비가 커져 상대방과 이후 책임 소재를 다루어야 할 상황이 되면, 미안하다고 한 쪽이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진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업무 상황에서도 그렇고, 일상생활에서도 여러 가지 행정처리나 생활 관련 서비스를 받을 때에도 문제가 생겨도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들을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은 유감이다(Tut mir leid)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번잡한 길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Entschuldigung이다. 빨리 지나쳐가야 할 때 사람들은 눈도 안 마주치고도 지나가며 엔트츌디궁!을 외친다. 조심스레 양해를 구하는 '실례합니다'가 원본이겠지만 가끔 '비켜!'로 들리는 느낌적인 느낌. (우리에게는 '잠시만요'가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접촉사고가 나면 먼저 미안하다 말은 물론 비슷한 태도를 보이지 말라고 하며 같은 해석을 하기에 묘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억울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이 것이 정답인가.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 좀 더 현실적인 이유는 우리 인생에서 사과란, 굴복과 비슷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릴 땐 부모님께 혼나고 사과했다. 

학교에선 선생님께 혼나고 반성문을 썼다.

회사에 가면 다른가. 원하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 상사는 호통치며 연말 고과로 복수했다. 

시비가 붙어 싸우면 누가 시작했든, 누가 옳든 싸움에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이처럼 사과를 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내가 잘못을 뉘우쳐서라기 보다는 나보다 힘센 상대방의 요구에 의해서였다. 일생동안 수 백 번을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를 외쳤지만, 그중 대부분이 사랑의(!!) 매 혹은 윽박 앞에서 움츠리고 했던 말이 아니었던가. 나는 몇 번이나 진심으로 뉘우쳤던가.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누군가를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은 더더욱 미안하다고 하기 어려워졌다. 아니 싫어졌다. 미안하다고 하는 순간 상대방이 나를 억압했던, 혼냈던 어른들이 되는 것 같고, 나는 항변할 여지는 털끝만큼도 없이 무조건 다 내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달라진 교육환경과 사회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어린이와 젊은이들도 그리 미안해하거나 본인의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의든 타의든 원래대로 회복되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에 우선 방어의 경계선을 탄탄하게 치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발생한 문제를 너무나 잘 알면서도 '나'의 잘못은 아니라는 태도.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자세와  무지가 죄는 아니라는 당당함이 미덕인 지금.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좀 겸연쩍어하거나 배우겠다는 자세는 가지면 좋겠다)  


그래서 이제 어른이 된 내가 체면을 구기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후 별도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면서 나도 편하지만은 않다는 표현을, 우리는 찾아냈다. 언제부터인지 유감이라는 말이 사과의 격조 높은 표현이었는지 미안하다고 해야 할 자리에 자주 보이고 들린다. 

대상이 명확한 미안하다와 사과하다의 의미를 나 스스로의 느낌 뿐인 유감이 대신할 수 있을까.  


(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유감 :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미안하다 :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 

사과하다 :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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