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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ler Sep 22. 2022

항변 1

꼰대의 반성과 항변 series- 삶에 배인 버릇이 새롭게 느껴질 때

"어머~ 얘 너는 어쩜 학교다닐 때랑 똑같니!"

동창 모임에 참석하면 항상 누군가는 이렇게 인사를 시작한다.  


이 본의아니게 하이톤의 친구 목소리는 옆 테이블 학생들의 시선을 모으고, 중년의 아줌마들 모임이라는 것을 훑어 본 그들은 황당무계하다는 표정으로 자기들끼리 킬킬거린다. (실제 겪었던 일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절에는 내가 40대쯤 되면 세련되고 우아한 귀부인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젊음을 억지로 유지할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아이도 다 키우고 나면 여유로운 생활이 묻어날 수 있도록 해야지. 곱게 늙어야지 다짐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40대를 지나고 보니 고귀하고 우아함은 간데없고, 성질은 그대로인데 체력은 예전같지 않은 중년의 아줌마만 남았다. 예쁜 것 좋아하고 꾸미기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곱게 늙기가 좀 힘들다. 왜지? 


생활 비용의 증가. 

우선 화려한 2030을 보낸 현재의 4050의 눈은 꽤 높다. 그리고 다른 세대가 보기에 이제 4050은 꽤나 여유가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수입이 인생 최고조를 찍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곤두박질 리스크를 겪는 이들도 많고, 상대적으로 수입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시기이다. 집값 대출이자, 아이들 양육비, 학원비는 물론, 부모님 병원비까지 내 수입을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약 10년 정도 남은 은퇴후 준비는 조금씩 현실로 다가온다. 


그런데 가끔 패션잡지나 유튜브를 보면 대부분 4050에게 뉴트럴톤의 우아하고 여유있는 아웃핏을 권한다. 좋은 소재의 옷을 사서 오래 입고, 유행을 타지 않는 좋은 가방을 들고 구두와 벨트에는 신경쓰라고. 가늘고 작은 악세서리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맞는 말이다. 주름진 손가락에 가느다란 반지는 주름 하나만 더 추가할 뿐이고 좋은 소재 보고 고를 줄도 안다. 하지만 높아진 눈높이에 맞추어 그 조언을 따르자면 소형차 한 대를 몸에 걸치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다. 실크와 캐시미어, 명품가방은 멋지고 예쁘지만 매일매일이 전투인 워킹맘에게는 이런 상전이 없다. 한 두개 가지고 될 일도 아니니 가성비를 생각안할 수가 없다. 


TPO의 다양화.

왜냐하면 정말 다양한 참석자리가 만들어지는 나이라서 더 그렇다. 뭘 입고 걸쳐도 양해가 되는 예쁜 나이에 즐거운 만남과 결혼식 하객룩만 신경쓰던 시기를 지나 이 나이가 되면 사적인 모임도 암묵적인 드레스코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시사철 경조사 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에서도 세련된 2030들이 닮고 싶은 시니어의 모습을 보여야 하고, 반대로 점점 5060 선배들과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 초대되는 경우도 늘었다. 이제는 스티브 잡스가 아닌 담에야 사회적 TPO를 몰랐다고 핑계대긴 어렵고, 양쪽 모두 너무 과하지도, 무례하지도 않아야 한다. 게다가 사족같지만, 굳이 핑계를 대자면 아이 라이드 혹은 픽업, 재택 근무시 착장, 명절 친지방문 및 간병에 편한 옷 등등, 늘어진 티셔츠로 때우기도 민망하고 비싼 옷은 아까운 수십가지 상황도 발생한다. 제대로 하자니 돈과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하고, 적당히 라고 하자니 이도 저도 아닌 것 같고, 아예 포기하니 뭐 마음은 편할지도. 


몸의 변화. 

똑같이 늘어진 티셔츠를 입어도 2030은 힙하지만 4050은 추레하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 어느 순간 예쁘다고 골라 피팅룸에 들고간 옷들이 뭔가 안어울리고 어색한 경험이 늘어나면서 나는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의 취향에서 버려야 할 것이 생겼다는 것을. 사랑했던 이 브랜드, 지금 정말 핫하다는 이 스타일은 나와 더이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이들어 찌고 빠지는 살과 중력에 이길 수 없는 노화는 예전과 다른 몸을 만든다. 같은 몸무게라도 미묘하게 달라진 몸의 모양과 혈색, 얼굴 윤곽과 헤어스타일에 따라 과거의 나와 핏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아 물론, 의술의 힘으로 어느 정도는 이러한 시기를 늦출수는 있다.) 


예전 드라마에서 갑자기 몸이 늙어진 여주인공이 노인 친구와 옷을 사러 가서 놀라며 현실에 조금 더 적응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가 데려간 할머니 옷가게에서 거절을 못하고 입어본 옷은 너무나 편안하고 거울에 비친 본인에게 잘 어울리더라는 현실. 아직 그 연배는 멀었다 하면서도 최근 쇼핑의 패턴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을 인정하는 중이라서 인가, 그 장면이 종종 떠오른다. 


그러니 


옛날 옷 좋아하는 아줌마 보시면 그러려니 해주세요. 티 안난다 생각하고 레트로 유행 즐기는 중이에요. 


지나가는 아줌마가 입은 영캐주얼은 아마도, 딸이나 아들이 입다 작아진 옷일 가능성도 많아요. 알뜰하다 생각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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