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해외근무 때문에 아이는 유럽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짧다면 짧은 2년을 보내고 귀국하여 3학년에 편입하는 일정이었다. 한국의 초등 경험이 없이 바로 3학년으로 들어간다는 건 많이 긴장되었다. 유치원 레벨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국제학교 1, 2학년을 마치고 돌아가야 할 강남서초 지역은 초등학교 입학 즈음의 학원 세팅이 아주 많이 중요한 첫 단추이자 아이의 평가 잣대라는 건 이미 알고 있던 바였다. (사실 지나고 나면 그 정도일 필요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모른다)
특히 영어 레벨은 꼭 유난하지 않은 엄마더라도 은근 신경 쓰이는 사안이었고,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그나마 익숙해진 발음과 유창성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데... 이름만 들어본 사고력 수학과 책 읽기랑 논술에도 마음은 급했다. 학원 투어는 고사하고 귀국도 하기 전에 학원 레벨테스트 일정을 잡아야 간신히 볼 수 있을 정도인데 어느 곳이 우리 아이에게 적합한지도 알 수가 없었다. 현실적으로도 무조건 다 할 수는 없어서 우선 아이에게 어느 학원이 필요할지, 혹은 다니고 싶은지 물었다.
학원? 학원이 뭐야? 학교랑 달라?
아...... 학교 끝나고 영어나 수학이나 책 읽기 같은 거 좀 더 재미있고 다양하게 배우는 데야.
학교 다녀와서 학원을 왜 또 가???
........ 어.... 한국에선 다들 다니는데....
그렇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이 아이는 K-학원을 다닌 적도 없지. 아직 아이가 학교 전학도 안 했는데 학원에 급급했던 엄마.
이후 긴 스토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평범한 한국엄마는 영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소위 TOP3 영어학원에 대한 호기심을 누르지 못했으며, 굳이 리터니들이 그리도 좋아하고 자부심을 가지며 영유를 나와도 그 학원에 가기 위해 과외까지 한다는 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가야 할 이유는 모르지만 엄마가 가자하니 간 아이는 테스트를 패스했고 엄마는 잠시 우쭐했지만 그 잠시 뿐, 아이는 그 학원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감되지 않는 내용을 무조건 읽어야 하고 적지 않은 숙제를 해야 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영어를 싫어하게 되었다.
남들 다 하는 거라고, 다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 흐린 눈으로 버티다가
워킹맘에게 정말 귀하고 소중한, 아이와의 시간에 학원 숙제 했냐는 질문이 제일 많음을 깨달았을 때,
초등학생이 어중간한 저녁식사시간에 막히는 퇴근길을 뚫고 가서 밤에 끝나는 스케줄밖에 선택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학원을 그만두었고 이후 수학은 천천히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귀 얇은 엄마에게 황소의 유혹은 예외 없이 찾아왔고,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이곳은 아들도 알고 있었다.
얘, 너 황소라고 들어봤...
아 엄마 나 거긴 안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단호했다. 아마 아이는 엄마가 다시 무언가 들이밀 것이라는 걸 알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도 다들 학원이라는 곳을 다닌다는 현실 상황에 점차 적응하기 시작했고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집 앞 수학학원에 입성할 수 있었다.
아들의 특성을 이용한 덕분이었달까. 약간 만만해 보이는 곳에 - 하지만 인근 엄마들 사이에선 나름 입소문 난 - 친구와 같이 다님을 어필했더니 그래 가준다 가줘 느낌으로 못 이기는 척 가서 선생님의 칭찬세례 몇 번 받고 자연스럽게 안착했다.
비슷한 몇 번의 경험과 대화를 통해 우리 집의 사교육에 대한 기준이 대충 정리되었다.
그리고 이 기준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변함없이 지켰다.
1. 아들의 판단과 엄마의 인정 : 학원을 아예 안 다니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 하지만 학원은 보조수단이라는 것도 인정. 우선순위는 학교와 일상생활에 두고, 마음에 안 드는 학원을 스트레스받으며 버틸 필요는 없다.
2. 엄마의 판단과 아들의 인정 : 학원의 명성에 끌려갈 필요는 없지만 알아둘 필요는 있다. -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학원들의 수준과 정보를 알고 우리 아이의 실력을 알기 위해서 설명회나 레벨 테스트를 한 번씩 활용했다.
3. 상호 동의 : 학원 테스트나 과제를 위한 부가적인 사교육은 하지 않는다. - 유명하다고, 남이 다닌다고 실력이 되지 않는데 추가 사교육을 하면서까지 다니지 않는다.
결국 아들은 적당히 타협하여 영어학원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도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다니다 말다 근근이 명맥만 이어갔다. 영어학원을 다녀온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이야기 좀 하자며 엄마를 부르면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면서도 동네 수학학원은 옮길 생각도 하지 않고 신나게 다녔고, 인터넷 강의는 집중해서 보고 있을 수가 없다며, 방학중 윈터스쿨은 아침에 일어날 수 없다며 거부하는 건 확실했다. 과외는 본인이 관심이 없는지 말도 꺼내지 않기에 굳이 먼저 권하지도 않았다. 결국 고2까지는 동네 내신학원을 다니고, 고3이 되어서야 대치동 입시 단과학원에 다니는 걸로 아들의 사교육은 끝났다.
학원선택에 있어서 문과 엄마의 기준이 주변의 평판이었다면 이과 아들의 기준은 친구들의 향방이다.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혹은 관심 없는) 이과 아들이 나도 해볼까? 이런 게 있다는데?라고 아주 드물게 말을 꺼낼 때가 있다. 엄마들이 학군지 아이들, 학군지 분위기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선택을 하고 나면 본인이 공감하는 재미와 강사의 장악력에 따라 유지 여부가 결정된다. 이과 아들들이 선택하는 일타강사들의 인기는 문과 엄마가 느끼기에 약간 팬심보다는 충성심에 가깝다.
사교육을 경험해 보니 - 아들은 안 질리는 게 중요하고 엄마는 속도조절이 필요해요.
유치원을 빼고 12년의 학교생활 레이스를 하려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의 12년과 엄마의 12년은 같으면서도 달라서 보폭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요즈음 사교육과 선행이 점점 빨라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 엄마의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달리느라 정작 아이의 발이 땅에 닿아 있는지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엄마는 아이가 땅을 제대로 밟고 자기 발로도 뛰는지, 아님 손만 잡힌 채 끌려 날아오는지 중간중간 확인하고 속도를 맞춰주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가 발이 떨어지려 할 때 스스로 엄마를 불러 세울 수 있도록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훌륭한 프로그램이나 강사라 하더라도 아들은 재미없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입시단과학원에서도 특히 이과남학생들이 선호하는 일타강사는 대부분 웃기면서 신박한 문제풀이 실력을 보여주는 선생님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유머와 실력은 문과엄마들이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쉽지 않다.
알고 계셨나요? - 현장 수업 vs 이원화 수업 vs 라이브 수업, 그리고 영상 보강.
초등대상 개별 진도 학원이나 미국교과서 영어학원 등의 소규모 수업이나 중고등대상 특정학교 내신 준비 학원을 다니다가 대치동 입시 학원에 진출하면 유명한 일타강사의 수업은 전국에서 모인 수강신청자들의 규모를 반영하여 다양한 형태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가장 익숙하고 좋은 것은 그동안 해왔던 현장에서 실제 강의를 듣는 것이 기본적인 현장수업. 하지만 일부 인기 강사들은 같은 시간에 두 교실을 오가며 수업을 하기도 한다. 교실 출석과 모든 시스템은 현장 수업과 동일하지만 전체 강의의 반 정도는 다른 교실에서 강의하는 모습을 모니터로 보는 이 형태가 이원화 수업이다. 이에 더해 수강 대기가 매우 많은 경우, 현장수업을 같은 시간에 외부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보는 라이브 수업을 오픈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 결석하는 경우 일정 기간 영상 보강이라는 이름으로 강의 영상을 받을 수 있다. * 보강 영상만 받아놓고 절대 열어보지 않는 아들 어머님들은 과감하게 포기하면 환불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확인해 보는 것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