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생기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입학하면서 당부했다. 우선 상설 동아리 하나는 가입할 것과 팀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
입학한 학교는 과학중점학교로 나름 수과학 이벤트나 프로그램이 다양해서 성실하고 열성적인 여학생들이 활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기로 알려진 학교였다. 스스로 수과학에는 자신 있긴 했지만 꼼꼼히 이것저것 챙기는 스타일이 아닌 이과 아들. 게다가 극 내향성 아들은 리더십은커녕 어디 찾아서 참여하는 것도 안 하고 못하는 성향이라 다 챙길 리 만무했고, 미리 챙기지 않으면 생기부 쓸 것이 없을 것이 뻔했다. 미리 설명회에서 들은 정보에 따르면 나름 특화된 동아리들이 있고 과학중점학교 특유의 팀 프로젝트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입학해서 바로 시작하니 놓치지 말라는 당부에 우선 알았다고는 하더니 이후에 가타부타 말이 없다.
다른 학생들은 생활기록부(생기부)를 위한 수행과 과제가 그렇게 많아서 엄마들이 자료 수집과 요약 등을 도와준다는데 이과 아들은 1년 내내 전혀 요청하는 것이 없었다. 도대체 무언가를 하긴 하는 건지. 한 번씩 물어보아도 대답은 똑같았다.
내가 알아서 할게.
2학년이 되어 겨우 나이스에 올라온 생활기록부를 읽어보니 생각보다 아이의 성격과 성향이 잘 나타나 있었다. 엄청나게 디테일하거나 깊이 있는 활동이 적힌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특별한 묘사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어떤 아이가 뭘 어떻게 했는지 대략 그려지는 것이 신기했다. 이래서 대학에서 수십수백 수천 장의 생활기록부를 보고 그 안에서 아이를 판단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럼에도, 인터넷에서 말하는 나열식이 이런 건가 하는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각 과목과 자율, 동아리, 진로 활동을 적어주시는 선생님이 다르다 보니 그 스타일과 깊이도 달랐다. 물론 아이의 활동이 기본이었겠지만.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다가 몇 군데 걸리는 데도 있었고, 이 정도면 '경쟁력'이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세특은 통합사회와 체육이었다. 뼛속까지 이과이자 운동신경 제로인 아이인데.
1. 우선 내용을 여러 번 읽어보았다.
아이가 어떤 성향이고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는 파악이 되었다. 무엇을 했는지도 알았다. 나름 학기 초에 당부한 동아리와 프로젝트는 포함되었고 몇 가지 수업 외 활동도 기록되었다. 그리고 좋은 세특은 어느 부분에 초점을 두고 기록되었는지가 보였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문과엄마는 국어 영어와 사회 등의 과목과 기타 활동들에 대해선 이해가 되었는데 수과학 관련 과목과 프로젝트 관련해서는 적절한 수준인지, 잘했다는 건지 그냥 수업을 잘 따라왔다는 건지 판단이 어려웠다.
2. 아이와 이야기해 보았다.
생활기록부는 학년말에 오탈자 확인 정도로 다 읽어보았단다. 갸우뚱한 내용이 한두 가지 있었지만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선생님께 여쭤보지 그랬냐, 다른 아이들은 어찌하더냐 물었지만 다른 학생들의 내용에는 관심도 없었고, 본인의 내용에 대해서도 적힌 사실이 틀리지 않은 이상 더 욕심을 내거나 문제 삼지 않았다. 그래 이게 내 아들이지. 핫.핫.핫... 웃고 있지만 한숨이 나왔다.
3. 2학년 담임 선생님과 진로부장 선생님 상담을 신청했다.
담임 선생님은 올해 대략적인 계획과 아이가 관심 있어할 만한 프로그램을 추천해 주시고 아이에게도 이야기해 주기로 하셨다. 진로부장 선생님은 생활기록부를 보시고 내신대비 약하다는 객관적인 평가와 함께 조언을 해주셨다. 창체 독서시간에 읽은 책들은 단순히 리스트를 나열하기보다는 세특에 녹여낼 것을 추천하시고, 관심분야 잡지를 구독하거나 관련 사이트를 자주 방문해서 탐구 주제를 찾아보는 팁을 주시기도 하셨다. 입시에 무지한 초보엄마에게 직접적으로 컨설팅을 추천하신 것은 아니지만 많이들 받는다는 말씀도 흘려주셨다.
4. 때마침 생기부 컨설팅 간담회/설명회 광고문자를 받고 서둘러 나섰다.
원서 쓸 때 컨설팅받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사실 선생님이 써주시는 걸로만 알고 있던 생기부는 뭘 어떻게 컨설팅해 주는지 그 메커니즘을 정확히 모르고 있던 때여서 방법을 알아야 했다. 필요하다면, 다른 아이들도 많이 한다는데 라며 또다시 조급해졌다.
하지만 설명회와 간단한 상담을 하고 와서 갈등과 고민이 이어졌다. 우선,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설명회에서 들려준 사례에선 새로운 것이 없는 느낌이었다. 개인 상담에서도 아이가 생각하는 진로를 말하자 추측이지만 컨설턴트가 아는, 혹은 진행해 본 전공과 사례를 이야기했다. 입학사정관이 관심을 가질만한 독특한 생기부를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고,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돈과 아이의 시간을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소스는 아이에게서 나와야 했고, 초안도 아이가 만들고, 컨설팅을 받으러 와서 다시 수정하고 최종본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3학년까지, 모든(은 아닐 것 같지만) 세특을 위해 반복되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가? 아니 진정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건가? 물음표가 계속 이어지던 중 결정적인 질문은 컨설팅과 만들어낸 결과물을 아이가 선생님에게 어필해야 하고 선생님께서 그 내용을 생기부에 적어주셔야 하는 이 두 가지가 제일 관건인데 해결 가능한지, 혹은 대안이 있는지였다. 이건 컨설팅은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는 최종 관문인데?
아 그렇지. 모든 컨설팅이 그런 거지. 그 분야의 전문가를 자칭하며 객관적인 자문을 해주는 역할일 뿐. 회사에서 만났던 여러 컨설팅 펌과 컨설턴트들이 생각났다.
최종 실행은 내가, 책임도 내가.
5. 결국 아이에게 다시 돌아가 3번과 4번 브리핑을 하고 의견을 물었다. 학교 프로그램은 담임 선생님과 상의하면서 결정하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예상대로 컨설팅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놀랍지도 않았다. 역시 내 아들. 교과 학원 다니기도 빠듯하고, 학교 수행이나 학기말에 과목 선생님들이 발표기회를 주실 때를 알. 아. 서 활용해 보겠다고 하면서 다시 덧붙였다.
그런 거 굳이 안 해도 돼.
좋아. 감을 잡았다면 한 번 해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줘.
우리는 내신 점수가 최우선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고, 대부분의 과목이 중간고사+기말고사+수행평가의 구성이기 때문에 세특은 수행평가를 잘 활용하고 기타 비교과는 학교 프로그램들에 충실하기로 했다. 사실 이는 아이가 스스로의 목표 진로방향이 명확했고 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2학년 생기부는 1학년보다 더 나아져서 3학년 초 상담에서 심화 마무리 계획을 세우고 지원 학교와 학과 선택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생활기록부를 읽어보니 - 일희일비하지 마세요.
1년의 생기부 세특과 기타 내용을 작성하시는 선생님이 대략 10명이라고 생각한다면 3년 동안 20~30명의 선생님들의 기록이 모이는 셈이다. 모두가 수려한 표현을 해주시거나 세밀하게 적어주시는 건 아니다. 또한 아이가 준비한 내용이나 요청을 받아주지 않는 선생님도 있다. 우리는 의외로 내신 점수가 좋은 과목 세특이 별로인 경우도 있었고, 생각지 못한 과목에서 감동적으로 써 주신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는 알지 못했던 모습을 적어주신 선생님도 계셨다. 그런데 묘하게 모두 합쳐지면 그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니 단어 하나에, 혹은 어느 과목의 두 줄짜리 세특에 너무 상심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원하는 진로 전공 주제를 모든 과목에 반영하려고 무리할 필요도 없다. 과목 세특에는 그 과목을 잘하는 내용이 들어가는 것이 맞다. 즉 다른 과목에 원하는 진로 전공 주제를 반영하고 싶으면 그 주제 내용으로 이 과목을 어떻게 공부했는지가 적혀야 한다. 이 경우 목표는 과목의 성취도. 주제는 도구에 불과하다.
알고 계셨나요 - 학교 가정통신문을 잘 읽어보세요
의외로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 가정통신문을 자세히 읽지 않는다. 특히 아이가 둘 이상이라면 더더욱 챙겨보기가 어렵기도 하고, 교육청 공지 및 신청안내와 섞여 알림이 오면 귀찮아 제목만 보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등학교 가정통신문 중에 프로그램 신청 안내가 종종 있는데 잘 읽어보면 이 프로그램/행사 참여 시 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는 안내 혹은 힌트가 있는 경우가 있다. 그중에는 학기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도 있지만, 참여만 해도 기록이 가능한 활동도 있으니 활용해 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