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이 되면 이미 특목고 진학이 예정된 친구들이 아니라면 희망고등학교 지원서를 써야 하는데, 이미 잘 알려진 국룰은 내신 잘 받을 수 있는 인원 많고 가까운 학교. 내신 잘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으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강남서초 안에서 내신 잘 받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학교란 없다. 그래서 문과 엄마도 그냥 인원 많은 인근 남고를 생각하던 중, 이과 아들이 남녀공학을 가겠다고 통보를 했다. 담임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에게도 여쭤 봤으나, 대답은 같았다.
이론은 어머님 말씀이 옳아요. 그런데 아이 고집 꺾으면 나중에 어머님이 고생하세요.
수많은 아이들을 겪어본 선생님들은 이미 놀랍지 않은 과정이라 하셨다. 크게 주변 영향을 받는 스타일이 아니고 그 학교 자체는 괜찮은 학교이니 그냥 보내라고.
교과서를 독하게 외우고, 수행준비를 꼼꼼하게 하며, 국어 영어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이과 두뇌까지 장착한 여학생들이 몰린다는 학교였고 그동안의 입시 성과도 여학생들의 메디컬 진학률이 높은 학교였다.
외우기 싫어하고 꼼꼼함이란 없고 어학을 지겨워하는 아들에게 장점은 상대적으로 가깝고 다양한 수과학 수업과 활동이 있다는 것뿐. 마지막 제출일까지 고민했지만 결국 아이가 원하는 대로 지원서를 쓰고, 큰 이변 없이 배정을 받고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당부했다.
변하지 않는 우리 집 규칙 - 학교생활에 성실할 것.
수시 정시 미리 결정하지 말고 내신과 모의고사 모두 진지하게 임할 것.
문과 엄마도 수능세대는 아니지만 같은 지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대학입시에 대한 부모들의 과열된 노력들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개인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워낙 내신경쟁이 치열한 지역 특성상 내신은 버리고 정시에 주력하거나 재수 삼수하는 것에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동네이기도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 후 한 학기를 보낸 후 많은 아이들은 정시를 주전형으로 해볼까 라는 생각을 시작한다.
A 받기가 수월하던 중학교와는 달리 난생처음 받아보는 점수도 놀라운데, 촘촘한 점수 차이로 내신 등급이 달라지니 소위 현타가 오고, 상대적으로 모의고사의 전국 백분위는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1학년 2학기를 마치고 나면 스스로 나는 정시를 준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과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가 걱정했던 수행은 어찌 그럭저럭 시키는 대로 했는지 걱정만큼 점수를 깎아먹진 않았지만, 역시 과목별 등급이 예상을 벗어나지도 않았다. 국어는 역시 엄마의 헛된 꿈과 희망을 미리 차단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관심 없는 비주류 과목은 바로 티가 나서 결과적으로 오묘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애매한 평균 등급 결과를 냈다.
여기에 모의고사는 이게 의외로 국어가 내신보다 점수가 안정적으로 나오고 주요 과목 6개만 보다 보니 내신 평균보다 좋은 성과를 보였다.
2학년이 되어 수강자 수가 반타작이 되는 선택과목과 성취도만 표시되는 진로과목이 섞이면서 아이들의 내신 성적표는 엉망진창이 되어간다. 그러나 모의고사는 여전히 큰 변화가 없으니 아이들은 기세등등해지며 외친다.
난 정시 스타일인가 봐, 내신은 버리고 정시에 올인하겠어!
다행인지 이과 아들의 내신 등급과 모의고사 백분위는 둘 다 1학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엄마의 욕심에는 너무 변화가 없었다(!!). 내신은 상승곡선이 중요하다던데. 게다가 1학년 생기부가 그다지 특색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2학년 때 신경을 좀 쓰라 했더니 이 또한 귀찮음을 한 바가지 더하는 일이라 아이는 더 정시에 마음이 기울었다.
사실 이미 1, 2학년 때 내신 등급과 모의고사 등급이 크게 차이가 나면 한쪽으로 결정하기가 차라리 쉽다. 지역 특성상 단순히 내신공부를 하기 싫어서 하는 핑계라고 폄하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도 한 것이, 정말 열심히 하지만 한 문제, 1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는 현실을 보면 아이 탓을 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전국 모의고사의 톱클래스 백분위를 보면 이 언밸런스를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할 것인가. 물론 과거부터 쌓아온 언밸런스임은 사실이지만 이제 와서 어쩌랴.
그러나 지망하는 학교를 쓰기에는 확신이 안서지만 완전히 버리기는 아까운 내신 점수와 아직 최종 선택과목도 아닌 과목들을 현역들끼리 본 모의고사 점수를 비교하기란 쉽지 않다. 이과 아들의 점수가 그랬다. 내신은 스카이 가능, 모의고사는 메디컬&서울대 가능으로 보였다. 어차피 메디컬에는 관심이 없던 터였기에 차치하고라도, 완전히 한쪽 전형으로 마음잡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다.
게다가 1, 2학년 모의고사는 전혀 쓸모없다, n수생과 보는 고3 6모와 9모를 보면 현실을 알게 될 것이다는 말과 현역은 수시가 정답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 초보 고3엄마는 세뇌가 되어버리다시피 했으니 내신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이는 약간은 미심쩍었지만, 그리고 말로는 툴툴거렸지만 그래도 1학년 정도의 점수는 유지하는 데에 신경을 쓰는 듯했다. 그리고 정. 말. 신기하게도 그 점수대를 유지했다. 오르지도 떨어지지도 않고 그 선에서 마무리했다.
아이들은 모르는 것들 vs 엄마들은 모르는 것들
수많은 현역 아이들 생각의 흐름은 비슷하다. 우선 기본적으로 야수의 심장으로 입시를 대한다. 2년 후, 혹은 1년 후 수능에 대한 중압감은 쉽게 느껴지지 않고 수시 6+개와 정시 3개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건, 설마 다 떨어지겠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그래서 당장 내일모레 닥친 내신 시험은 피하고 싶은 것이 본심이지만 그 지엽적인 범위와 문제 따윈 이라며 가치를 낮추어 보고 스스로를 정시파이터라며 당장 시험공부를 안 하는 이유를 정당화할 뿐이다.
동시에 수많은 초보 고3 엄마들은 정확한 입시정보보다는 카더라를 더 많이 듣고 그 불안을 아이에게 전한다. 사실 수시 버리면 안 된다, 내신 챙기라는 말은 많이 듣고 잔소리하지만 제대로 내신과 생기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 변별을 핑계로 너무나 빡빡한 내신 시험과 수능에 도움 안 되는 대부분의 수행, 선생님의 고유권한이라는 세특 등 모든 것이 불만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 특성상 단순히 내신공부를 하기 싫어서 하는 핑계라고 폄하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정말 열심히 하지만 한 문제, 1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는 현실을 보면 누구에게 돌을 던지랴. 심지어 전국 모의고사의 백분위를 보면 이 언밸런스를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할 것인가. 그래서 이 동네에서는 부모가 먼저 내신은 포기하고 논술과 수능에 포커스를 맞추고 사교육을 지원하는 경우도 많긴 하다.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으로는 내 아이에게 불리한 제도는 불공평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이란, 100퍼센트 공정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 인정하긴 싫지만 이 세상 어느 경쟁에도 치트키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모르는 재야의 고수가 있기 마련이다.
알고 계셨나요? - 내신 버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
*우선 버린다는 정의에 대해 엄마와 아이가 같은 눈높이여야 한다. 대부분 아이들의 버린다는 부모의 버린다 보다 훨씬 심각하다.
1. 원서 쓸 때 알게 되는 현실.
야수의 심장이던 1, 2학년을 지나고 고3이 되어 n수생 일부가 참전한 6모와 9모 점수를 받고 원서를 쓸 때가 되면, 전쟁터 현장에 던져지는 셈이다. 수중전에 배치될지, 숲 속 게릴라전이 될지 모를 곳에 배치되면 그 때 어떤 무기를 써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 강력한 한 방의 수류탄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지도 않던 학교들이 정말 크게 다가오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학교 리스트를 코앞에 맞닥뜨리면, 현실과 이상의 잔인한 간극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2. 원서 쓸 때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우선 변화하는 입시제도에서는 정시에도 100프로 수능점수 반영보다는 내신평가 반영이 포함되는 학교들이 늘어나는 것이 보인다. 물론 수시와 비슷하게 정성 평가인지 정량 평가인지도 다르고, 반영 비율도 다르고 전형도 다양해져서 면밀히 챙겨봐야 한다. 이건 입시 해당 연도 원서 쓸 때가 되어야 정확하다. 그러나 내신은 고등학교 3년 동안 만들어 놓는 것이라 원서 쓸 때 아쉬워도 방법이 없다. 이미 올해 입시에서도 내신이 발목 잡았다는 이야기들이 훨씬 늘었다.
3. 수능 100퍼센트 반영 정시 준비를 위해서라도.
정시파이터를 외치며 수시 6장+는 무조건 6논술!을 외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시 3장을 잘 쓰기 위해서라도 수시 원서를 제대로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수능을 망칠 경우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낮은 내신으로 갈 수 있는 대학과 예상 수능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을 꼭 비교해봐야 한다. 아이들의 엉뚱한 신념 중 하나는 수시 원서를 쓴다는 것 = 수시납치라며 호기를 부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처럼 수시를 쓴다고 다 납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혹은 정말 몰라서. 1등급 6광탈도 가능한 것이 원서 영역이다. 수능을 보고 난 후 선택이라도 할 수 있게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