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시작은 과학중점고의 이과생들이 3학년에 사회탐구 과목을 하나 선택해야 하는 커리큘럼이었다. 아니 사실은 그걸 굳이, 알고 한 건지 모르고 한 건지 상대평가 과목을 선택한 이과 아들과 설명회 몇 번 듣고 온 것으로 온갖 아는 척은 다 가져다 붙이면서 아들이 선택한 과목이 상대평가인지 절대평가인지 몰랐던 문과 엄마의 환장의 콜라보랄까.
그리하여 수능과목으로는 기하, 물리 2, 지구과학 2를 선택한 이과 아들은 미적분과 확통, 세계지리를 상대평가로 내신 등급을 받아야 하는 고3을 시작했다.
지구상에서 이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수험생과 그 엄마뿐일 것이다.
사탐런이 본격적으로 이미 시작된 해였다. 모든 설명회에서는 사탐을 하라고, 연고대 모두 사탐런이 가능해졌고, 서울대만 과탐 필수 및 투 과목 가산점이 유지되고 있을 뿐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심지어 과학탐구 과목들의 표준점수는 박살이 나는 중이었다.
또다시 어미만 조바심이 났다. 입시설명회가 끝나면 한 시간 줄을 서서 질문했다.
물 2랑 지 2 한다는데요.
서울대 지망이면... 해보는데 굳이 2개 다요?
기하는 해도 될까요?
그 점수면 한 번 해봅시다
미적이랑 확통이 3학년 내신인데요
하아............ 잘 이야기해 보세요
담임 선생님도 반문했다.
세계지리는 왜 선택했을까요???
사회를 해야 한대서.... 지리를 좋아하긴 해요...
올해 세계지리는 1등만 1등급이에요. 절대평가인 여행지리도 있었는데...
..... 몰랐.....
더더욱 문제는 이과생들의 미적분 내신 점수는 매우 중요했고, 내신등급 경쟁이라서 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수능 대비 미적분 실력자들이 빛을 발할 때였다.
세계지리의 등급은 예상할 수가 없었다. 40명이 채 안 되는 아이들이 9등급으로 나뉜다는데 평균을 얼마나 어떻게 잡아먹을지. 기하는 2학년에 끝났고 과학 2과목들은 3학년 수업이긴 했지만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버려진 과목들이었다. 겨울 특강 선생님들은 뒤숭숭한 소문들과 함께 모두 재종과 기숙반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다.
머리 아픈 엄마와 달리 아들은 평온했다. 딱히 안달 나 보이지도 않았다.
미적분은 그동안 내신을 함께했던 집 앞 학원에서 하면 되고, 세계지리는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과탐 2과목들은 자료 구매와 추석 특강, 모의고사 자료들이면 된다 하고 기하도 알아서 하겠단다.
그리고 아들은 결과적으로 세계지리와 미적분 내신은 1등급을 받고, 수능 기하와 과탐 2 과목들은 1등급에 안착하면서, 스스로 본인의 선택을 증명해 냈다.
아이가 선택과목 고집을 부리는 부분에 있어서는 우선 그동안 성적이 안정적이었는지를 면밀히 보아야 한다. 내신은 중간고사 좀 망친 부분을 기말과 수행에서 복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하지만 수능 선택과목은 매 모의고사마다 변동이 있으면 대부분 수능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기는 어렵다. 남들과 다른 선택과목을 원한다면 그 외 과목, 국영수 점수가 중요하다. 기본 과목들이 단단해야 본인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쓸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생긴다. 아이가 기하를 선택했을 때에도 수학 공통부분의 점수 추이를 확인했다.
그리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할 동안 엄마는 여전히 상대적인 평가와 효율적인 면에서 유리한 지 계속 점검(했다고 쓰고 안달했다고 읽어야)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아이의 선택을 믿고 맡긴 후에도 면밀한 관찰과 적절한 참견은 필요한 것 같다. 특히 과탐 2 과목들은 6월 모의고사가 되어야 응시가 가능하기 때문에 상황을 살펴야 했다. 우리의 경우는 운 좋게 점수들이 유지되었고, 결과적으로는 기다린 보람이 있었지만 언제라도 상황에 따라 아이를 설득할 수 있는 플랜 B를 업데이트하며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입시 러닝메이트의 역할이기도 하다. 특히 주변을 살피지 않는 이과 아들의 경우에 더더욱 필요하다고 느끼는데 이 과정에서 열 번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한 번만 하기란 정말 어렵다.
진로와 다른 과목 혹은 활동 선택을 풀어내는 방법
과목 세특은 그 과목의 성취도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맞지만, 이공계 컬러의 생기부에 3학년에 갑자기 세계지리가 튀어나오게 된 상황이 기가 막히면서도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이과 아들의 세계지리 세특에는 본인이 선택한 수행과제 내용과 더불어 '평소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지도를 활용한 공간 해석에 능하고, 국제 문제에 관한 관심이 많아 지구과학과 함께 세계지리를 선택했다고'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아이가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2화에서 언급한 사회과 부도 사랑이 기반이었을 테고 7화에서 언급한 담임 선생님과의 연초 상담과 생기부 점검도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던 듯 하다.
우리의 경우는 본의 아니게(?) 꼬인 상황이었지만 희망 진로가 바뀌는 경우나 본인이 원하지 않는 활동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특히 고등학교 입학해서 원하는 동아리 안되었다고 세상 망한 얼굴이 되는 아이들과 엄마들도 진짜 많다.
하지만 진로 적합성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이 더 점수를 얻는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우선 최대 점수를 확보하고 (입시에서 숫자 이기는 글자는 없다.) 그 과목 혹은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제에 맞는 성실성과 협업 같은 것을 어필하는 정도로 충분하지만 가능하다면 객관적인 융합 스토리텔링을 만들 수 있는 수행도 효과적이다.
알고 계셨나요? - 사탐런
작년 과학과목을 놓지 못하는 이과 아들딸을 둔 엄마들의 한숨이 하늘을 찔렀다. 이과의 가오도 있고 실제 문과 사회과목들을 너무너무 싫어하고 못하는 아이들도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학원가에서는 경고한다.
아이가 아직 덜 급해서 그렇습니다. 6모 보고 정신차리면 늦어요.
그래서 엄마들은 아이의 고집과 설명회 사이에서 갈팡질팡, 두려움의 연속이다. 하지만 사실 아이들도 알고 있고 대부분 스스로 판단한다. 물론 타이밍이 부모의 마음같진 않지만.
사실 시작은 이과 학생들의 문과 침공이었다. 예전에는 표준점수가 높은 미적분과 언매, 과학탐구 등을 선택해서 상대적으로 점수가 높은 이과 학생들이 문과 교차지원을 하면서 문과 학생들에게 타격이 컸다. 경영 경제 등은 물론이거니와 어문계열까지 미적분이나 과학 선택자들이 학교 이름을 보고 지원하고 합격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공평하게(?) 사회탐구 과목 선택자들도 공대 등의 이과계열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 이과학생들이 사탐을 선택하는, 사탐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과학 공부 양이 많다 보니 효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긴 한데, 이에 맞춰 문호를 개방한 대학과 이공계열이 늘어나고, 선택자가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이것이 또 의외의 사태를 불러오게 된다. 사회 탐구 과목들이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 난이도가 높아지고 기대보다 점수받기가 어려워지기도 하고, 지원자가 대폭 축소된 과학탐구 과목들은 쉬워져서 표준점수가 확 낮아지게 되어 더 과학탐구 과목들을 선택할 이유가 없어지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어쩌라는 말인지.
그럼에도 과학탐구 선택자들을 응원한다. 2027 입시가 마지막이라 강추는 못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