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겨울방학까지도 아직 고3은 아니라며 여행까지 야무지게 다녀온 후에 고3을 맞이했다. 대한민국에서 고3이란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주변에서 위로와 격려를 우선 받는다. 눈빛부터 달라지는 상대방에게 되려 미안해지는, 고3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더욱 무언가를 해야만 하나 싶기도 한 시기이기도 한 이때, 12년 릴레이의 마지막 학교 총회에 비장한 마음으로 갔지만 정작 고3엄마들이 많이 참석하진 않았다. 입시설명회와 상담이 따로 잡혀있어서일까. 심지어 학기 초 상담을 잡았냐며 수시시군요.라고 한 마디만 하신, 입시 경험자가 분명한 어머님의 포스를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이 날 만난 담임 선생님은 그 학교에서 작년에도 고3 담임을 맡았던 과학 선생님이라 나름 초보엄마에게는 믿고 싶은 동아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감사하게도 엄마가 잡을 수 있었던 튼튼한 동아줄이었다.
얼마 후 잡힌 개인 상담에서 담임 선생님은 아이와의 상담후기와 3학년 1학기 생기부에 필요한 부분을 잘 짚어 주셨다. 진로방향에 큰 변화가 없었고 성적도 비슷했던지라 대부분 동의한, 동의할 수밖에 없는 계획으로 고3을 시작했다. 학교와 가정에서 같은 목표로 스텝을 맞추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믿는다. 매년 연초 상담 한 번으로 끝내는 허술한 학부모의 철학이긴 하지만.
4월에는 운 좋게 유명학원 컨설턴트의 무료 상담도 받았다. 수시를 버릴 수 없는 고3에겐 중요한 중간고사 기간이었지만 아이가 직접 듣는 것이 좋을 듯싶어 동행을 권했고, 귀찮아하는 듯했던 아들도 궁금하긴 했는지 못 이기는 척 같이 나섰다. 사촌 형같이 젊어 보이는 컨설턴트는 이미 엄마가 보낸 생기부와 성적, 희망 학교와 과에 대해 이미 파악을 한 상태였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에 동의하며 정교한 수정과 분석을 더해주었다. 놀라운 반전이나 새로운 제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서 심리적으로도 도움을 주기도 했고, 엄마의 잔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컨설턴트의 공부 방법 안내에 아이는 귀를 기울이며 진지하게 질문하기도 하는 등의 평소와 다른 태도를 보여 문과엄마는 배신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지나고 나서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운이 좋았던 듯. 특이한 컨설턴트를 만났다거나 서로 너무 다른 의견인 경우 만족도가 매우 떨어지는 사례도 많이 들었다.
학교와 컨설팅과 결을 같이 하고 나서도 궁금한 것은 너무나 많았다.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것들은 잘 챙기고 있는지, 망친 미적분 중간고사는 기말고사와 수행에서 얼마나 어찌 복구할 건지, 다른 수행과 프로젝트 펑크는 안 났는지, 생기부 기록은 잘 되었는지... 학습태도는 말해 뭘 하나. 4월에 컨설턴트가 조언해 준 생활습관은 바로 온데간데 없어진 지 오래였고, 방은 내팽개쳐진 자료와 시험지들로 난장판이었지만, 이제 와서 안 하던 새벽기상과 방청소를 할 리 만무했다. 학원도 테스트만 보고 온다거나, 영상만 받는다거나, 본인 편한 대로 바꾸고 밤에 혼자 귀가하겠다며 걸어오는 일도 많아졌다.
고3과 고3엄마의 연대는 "따로 또 같이"가 맞는 것 같다. 특히 혼자 정리가 필요한 이과 아들에게 무엇이든 언제든 대화로 풀자거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싶어하는 문과엄마의 접근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그렇다고 아이가 필요로 할 때 너무 멀리 떨어졌다가는 복귀시간이 걸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2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건강과 컨디션을 유지하는지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아이가 먼저 말하는 컨디션 난조는 소위 '고3병'으로 입시가 끝나면 자연치유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정작 긴장한 아이 스스로 못 느끼는 경우나 엄마의 잔소리가 귀찮아서 그냥 넘기는 경우에는 뒤늦게 알게 되어 수습에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하기도 하고 더 큰일이 벌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원론적으로는 2026 입시 전형은 이미 모두 확정되어 있어야 할 텐데, 여전히 의대 인원 원복과 공대 인원 변화, 학교별 전형 변화와 이에 따른 인원 변화 등 수험생 집안이 아니면 전혀 관심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시시콜콜한 변경사항들이 계속 업데이트되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과거 2년만 해도 킬러문항 배제니 의대 증원이니 하는 민감한 사항들이 바로 그 해에 반영이 되는 등 매년 평탄한 입시는 없었으니,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 입시 전형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외로운 고3엄마
고3엄마는 외롭다. 복잡한 머릿속을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는 상대가 없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우선 복잡한 심경과 입시전략 사이에서 스스로 정리가 안된다. 하루에 열두 번씩 바뀌는 마음을 본인도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감정의 기복은 누구도 저지할 수 없다. 두 번째는 그래도 올해의 입시 시스템을 이해하고 이러한 나의 두서없는 고민과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해 입시생 부모뿐이다. 하지만 세 번째, 지금의 1점이 수개월 후 어떤 결과를 낼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의 성적을 공개할 담력은 없다. 그리고 성적대가 다르면 다른 대로, 같으면 같은 대로 나의 속내를 털어낼 수도 없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력도 없다.
친정엄마는 수십 년 전 고3엄마 모드에서 업데이트되지 못했으며, 형제자매조차도 내 마음 같지 않으니 소위 현생에서는 잠수를 타고 익명의 세계인 온라인에서 위로를 찾는다.
알고 계셨나요 - 온라인 입시카페
하지만 입시카페는 주의해야 한다. 누군가가 직접 뛰어다니며 얻은 귀한 정보가 많기도 하고 익명 뒤에 숨어서 마음을 고백할 수도, 공감하는 이야기들로 위안받을 수 있는 장점으로 항상 인기이긴 하다. 하지만 제한된 글에 몰입하거나 내 아이의 경우에 대입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를 들면 전국구 입시카페에서는 같은 내신 점수 숫자인데 지원학교가 너무나 다르다거나 정성평가에 대한 후기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온라인에서는 알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고, 같은 동네 지역 카페에서는 누가 어느 집 어느 학교 아이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으니 더욱 조심스럽다. 또한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나 일방적인 댓글에 영향을 받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신경이 뾰족해진 예민한 부모, 엄청난 능력이지만 엉뚱한 방향의 데이터를 근거로 한 자칭 전문가와 불안한 미성년자들이 모두 섞인 곳이 입시 카페이기 때문에. 특히 출처불명의 대학순위나 전공 비교에는 참전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