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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풀 원섭 Jul 25. 2023

타임캡슐

비 정상(頂上) 일기 (My Abnormal Diary)

사회화로 인해 강제된 가면으로부터 자유로웠던 15살, 순수했던 '나'를 다시금 마주하고 싶어서였을까?


며칠 전 중학교 때 묻은 타임캡슐 개봉식 참석 의사를 묻는 문자를 받았다. 20년 만이다.

이번 행사는 주최/후원이 따로 있지 않은 '우리'의 행사이기 때문에 '우산', '마실 물' 그리고 '꺾이지 않는 마음'을 준비하라는 내용도 같이 포함되어 있었다. 삽질은 우리 몫이니 한 명이라도 더 와서 거들라는 내용을 정중하게 표현한 것이다. 공식행사도 아닌데 학교를 대표해서 애써준 친구가 3학년 때 같은 반이기도 하고 졸업 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모교가 궁금하기도 해서 흔쾌히 참석을 결정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역시나 친구들 몇 명이 벌써 삽질을 하고 있었다. 제법 오랜만에 본 친구들인데도 어색한 게 없다. 상태를 보니 다들 땀범벅이더라. 상당히 많이 파여있기는 한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 팠는데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글쎄..."

"근데 위치는 여기가 맞아?"

"글쎄..."


정확한 위치도 모르고, 얼마나 깊게 파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고,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시간은 흐르니 다들 애가 탔나 보다. 그러던 중 건설업에 종사하는 친구 하나가 폰을 꺼내 포클레인을 불렀다. 우리 학교에 이런 걸출한 인물이 있었나 싶어 그 친구를 향해 뜨거운 하트를 보냈다. 포클레인까지 동원해 어렵게 꺼낸 타임캡슐에는 편지뿐만이 아니라 식판, 체육복, 만화책, 상장, 소주? 등 그 당시를 기억할 만한 것들도 같이 동봉되어 있었다. 소주는 진짜 소주였다. (왜 중학교 타임캡슐에 소주가 있는지는...)  


15살에 적은 타임캡슐의 나의 꿈은 거창하지도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나보다 더 고생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웃음과 용기를 주면서 살겠다'

현재의 나'의 기준에서 보면 한심한 꿈이다. 그 흔한 대통령도, 소방관도, 과학자도 아닌 '헌신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니... (무엇보다 돈도 안 되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품었던 꿈이 거창할 필요가 있을까? 거창한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사회로부터 주어진 것들이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수많은 성공사례를 접하며 거창한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아닌가? 이제 직장 생활 10년 차에 접어들면서, 사회가 권장하는 가치를 좇으며 그들이 원하는 가면을 쓰느냐,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사유할 여유가 없이 그냥 흘러왔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화로 인해 강제된 가면으로부터 자유로웠던 15살, 수했던 '나'를 다시금 마주하고 싶어서였을까? 사회의 인정 기준과 상관없이 내면의 울림이 있는 가치에 만족할 줄 아는 '본연의 나'에게 가까워지고 싶어서였을까?

이유야 어찌 됐든 타임캡슐은 내가 잊고 있던 '나'에 대해 많은 걸 일깨워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20년 뒤 나'에게 쓰는 타임캡슐을 적었다. 20년 뒤면 나도 50대 중반이다. 호칭은 이름보다 '자네'라고 하였다. 15살의 나를 통해 잊혔던 순수함을 확인하였듯,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위해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좋을지 잠시 고민하다 이내 써 내려갔다.


내용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20년 뒤의 내'가 이걸 꺼내 본 그날만큼은 다시금 순수한 '본연의 나'와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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