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정말 평범하고 밋밋하다고 절실하게 깨달은 때가 기억난다. 철원에서 군생활 중 탄약고에서 보초를 섰을 때다. 선임과 2인 1조로 보초를 서면 선임이 후임에게 습관처럼 하는 질문이 있다.
선임 : 야~너 사회에 있을 때 뭐 하다 들어왔냐?
재밌는 얘기 좀 해봐라.
나 :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님과는 특별한 마찰 없이 무난한
청소년기를 보냈고, 4년제 대학교에 다니며 학생
본분을 지키기 위해 학기 중에는 공부를, 방학 때는
알바와 토익학원을 병행하다 때가 돼서 입대했습니다
(실제로는 장황하게 답변했지만 요약하면 이렇다)
선임 : .....
선임의 다음 질문은 쉽사리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치게 재미없는 답변이다. 이 정도면 내가 선임에게 가혹행위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나는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을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절실하게 구하고자 했던 것 같다.
정상(Normal)이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라 정의된다. 반대로 비정상(Abnormal)이란 사회의 기준에서, 통계의 평균에서 그리고 대중의 인식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20년을 정상으로만 살아온 난 정상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는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비정상'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미 주변에서 나의 '비정상 력(力)'을 인정받아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다'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보통 놈'은 아니란 뜻이다.
사실 정상인이었던 내가 비정상적인 생각과 행동을 수년간 꾸준히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능히 뼈를 깎는 노력과도 견줄만하다. 최근에는 나의 이런 노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많아져 뿌듯할 따름이다.
TMI일 수도 있으나 비정상(Abnormal)이 되기 위해 최근 내가 집중하는 노력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1. 동조에서 멀어지기(조금 더 뾰족해지기)
'정상인'들은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능력으로 주변 상황에 나를 잘 맞추는 '동조' 능력을 꼽는다. 일정 부분 인정한다. 다만 내가 멀어지고자 하는 것은 '내적 궁금증을 거치지 않은 동조'이다. 내적 궁금증을 유발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동조는 내면의 저항과 반감을 거치지 않은 무지성적 공감으로 이어진다. 나는 근거를 의심함으로써 무심결에 동조해 왔던 것에 저항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친구들과 모여서 인구 감소 문제점에 대해 토론한다. 나는 가만히 이를 듣고 있다 이렇게 질문한다.
'인구가 감소하면 왜 안 되는 건데?'
이는 '인구 감소가 나쁘다'는 전제하에 진행되는 대화의 흐름을 전복시키는, 동조에서 멀어지는 질문이다. 겉도는 표현인 동시에 약간 재수가 없어질 위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만들게 하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속한 환경에 어울려야 한다는 '동조 압박' 속에서 가능성의 범위를 제한받아 왔다. 왠지 어긋나면 뭔가 큰 실수를 한 것만 같았다. 대중의 동조에 편승하는 삶만큼 편한 것도 없을 것이다. '비정상'인 나는 이런 편한 삶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기 위해 '조금 더 뾰족해지기'를 연습하고 있다.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뼈를 깎는 노력이란 주변의 시선에 굴하지 않는 의식적인 저항이 포함된다.
2. 명상하기 (Who Am I)
명상을 한다. '정상인'들은 보통 명상을 한다고 하면 요즘 많이 힘드냐고 걱정한다. 실상은 어딘가 힘들지 않게 '마음 체력'을 단련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처음엔 혼자 하다 이제는 직장에서 마음이 맞는 분들과 함께 '하루 10분' 명상을 한다. 거창하지 않다. 가부좌하고 눈은 감고 10분간 가이드(Guide)를 들으며 명상을 한다. 명상은 호흡이다. 호흡은 그 자체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행위이지만 너무나 당연해서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그만큼 쉽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명상하는 동안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힘주어 잡고 있던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생각을 내려놓다 보면, 자연스레 내면에서 던지는 질문,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렇게 나 자신을 더 깊게 알아가게 된다. 그러다 종국에는 하나의 질문에 도달한다. 이 질문은 정해진 답이 없을 것이며, 내 삶 전체를 통틀어 이뤄야 할 가장 위대한 과업일 것이다. 내 인생을 정면으로 살아가야만 얻을 수 있는 지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다다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Who Am I')에 대해...
다시 한번 경고한다. 정상인들은 이쯤에서 물러가시라. 더 이상은 여러분의 '정상인' 지위에 흠이 갈 수도 있다.
3. 글쓰기 (새로운 가능성 발견)
브런치 작가라고 하면, '정상인'들은 그거 해서 얼마나 버냐고 물어본다.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고 답하면 그런 걸 왜 시간 들여가며 하냐고 의아해한다.
언어의 힘은 대단하다. 좋은 문장과 표현을 보면 감탄과 탄식은 물론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단어 하나하나를 가슴속에 새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같은 것을 봤는데 표현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을 정도이다. 이것이 언어의 가장 큰 힘 아닐까? 언어는 그 자체로 현실과 분리된 체계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또 세상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언어적 가상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언어의 힘을 삶의 원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현실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나도 한 번은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는 문장을 써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가 갖은 힘으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폭넓은 언어를 수집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내가 추구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고 싶기 때문이다.
비정상이 되기 위한 길은 이처럼 험난하다. 많은 역경과 주변의 좋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 비로소 이쪽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비정상'이 되고 싶은 이유는 남과 구별되는 재밌는 인생을 만들고 싶어서이다. 사회의 보편적 기준이 아닌 나의 내적 기준에 따라 나만의 삶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서이다. 그 선택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삶이 바람직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글의 주제인 '비 정상(頂上) 일기 (My Abnormal Diary)'의 배경은 충분히 설명됐을 것 같다.
비정상이 되었다고 하여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과, 풀지 못한 숙제 헤쳐나갈 허들이 태산이다.
나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문장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나는 정상이 아니다. 아직 오를 곳이 많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독자분들의 '비정상 력(力)' 또한 상당한 수준임을 인정하는 바이다. 부족하지만 응원해 주시는 브런치 작가분들, 독자분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모든 분들의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