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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풀 원섭 Nov 12. 2023

분갈이

비 정상(頂上) 일기 (My Abnormal Diary)

한없이 연약하게만 보였던 식물도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도전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데, 하물며 사람인 '난' 어떠한가? 


내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당시 내 옆에는 '파차장'이라 불리는 식물이 하나 있었다. 

'파-'는 자란 모양이 파처럼 얇고 길쭉한 줄기를 갖고 있어 생긴 모양이 마치 파와 닮았다고 하여 그렇게 불렸으며, '-차장'은 그 식물의 주인이 당시 '차장' 직급으로 그분이 신입사원부터 키워서 식물 역시 차장과 같은 연차를 보유하였기에 그렇게 불리곤 했다. 최소 15년 차 이상의 연차를 보유하고 있는 '파차장'은 오랜 기간 그 주인과 함께 성장해 온 동반자 또는 친구와 같은 개념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약 3년 전, 식물의 주인이 '수석'으로 진급하면서, 자연스레 '파차장'도 '파수석'으로 진급하였고, 진급 선물로 전보다는 훨씬 큰 화분으로 분갈이가 되었다. 그분의 말로는 처음으로 분갈이를 해준 거라고 한다. 분갈이가 되어서일까? '파수석'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였다. 높이는 이제 약 2미터에 이르고, 줄기와 잎의 넓이, 크기가 이제는 '파'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며, 식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자이언트 한 식물이 되었다. 15년간의 성장보다, 분갈이 후 3년간의 성장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월등한 것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나는 왜 성장하는 '파수석'의 모습을 보면 씁쓸한 것일까? 




분갈이는 화분에 영양이 고갈되거나 산성화 된 흙을 새로운 흙으로 갈아주는 것을 말한다. 작은 화분에서는 뿌리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해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으며, 양분을 모두 빨아들여 더 이상 섭취할 양분이 없어도 죽어버리기 때문에 1~2년 주기로 분갈이를 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분갈이가 모든 식물에게 성장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큰 화분에서 새로운 흙에 다시 뿌리를 내리더라도 새로운 환경의 온도, 습도, 배수, 영양분 등의 조건이 식물의 기질과 맞지 않으면 금세 시들어 버린다. 

분갈이를 하지 않으면 결국 죽을 것이며, 분갈이를 하더라고 성장을 보장하지 않을뿐더러,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더 깊숙한 곳으로 뿌리를 내려 성장할 수 있다니... 한없이 연약하게만 보였던 식물도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도전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데, 하물며 사람인 '난' 어떠한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문장이 있다. 새는 알 속에서 껍질을 깨고 나와야 살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새는 그 안에서 죽고 만다. 그리고 그 알은 낡은 세계, 익숙하여 굳어진 사고의 틀을 의미하며, 이를 깨뜨리고 나오지 않는다면 참된 삶을 위한 균형 감각의 상실로 이어져,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나이는 먹지만 정체된 사람이 되고 만다. 


가수이자 작가인 이석원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문구가 있다.

 '활짝 핀 꽃 앞에 남은 운명이 시드는 것밖엔 없다 한들, 그렇다고 피어나길 주저하겠는가.'  

꽃이 피면 반드시 진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렇다고 피어보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벚꽃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결국 비와 함께 생을 마감할지라도 그 한 철을 생기 있게 피워내기 위해 빛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숭고한 의지를 담고 있어서 아니겠는가?


나도 이제 분갈이를 해보려 한다. 익숙하고 편한 세상을 깨고, 낯설고 새로운 땅에 다시 뿌리를 내려 내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고, 다양한 향을 낼 수 있을지 확인해 보려 한다. 지금 나의 선택이 반드시 기대한 만큼의 성장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주저하지 않으려 한다. 이유는 두려워 피지 못하는 것보단 이 선택이 나 스스로에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다. 두려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결연한 의지다. 가장 좋은 기회가 가장 좋은 순간에 가장 좋은 형태로 나에게 올 거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마침내 잡아낼 수 있는 열정과 집요함이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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