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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

아무튼...종로(3)

by 원더풀 원섭

첫 직장으로 조선소에 입사하여 서울에서 근무를 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지 싶다. 드라마 속 오피스라이프처럼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 여유로운 커피 타임, 점심시간이면 청계천을 따라 걷는 낭만적인 일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원하는 회사, 탐나는 위치, 만족스러운 급여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직장에서 이제 나도 성실하게만 적응한다면, 앞으로의 인생이 탄탄대로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하철 출구로 나와 청계천을 연결하는 광교를 건널 때마다, 나는 더 이상 대학생이 아닌, 사회 그리고 조직의 당당한 일원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리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으로의 관문이었으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선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그려왔던 오피스라이프와는 전혀 달랐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를 것'이라는 나의 믿음이 무너지는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좋은 대학을 나오진 않았지만, 전공 공부를 착실히 하였고, 성실함 만큼은 누구에게도 밀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으나, 세상에 나와보니 난 '우물 안의 개구리'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선, 엑셀, 워드, 아웃룩 같은 기본 업무 툴도 서툴었던 내가 전문적인 계산 시트를 작성하고 체계적으로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마치 외계어를 배우는 것과 같았다.

더욱 절망적인 건 언어의 장벽이었다. 모든 고객이 해외 선주사였고, 스펙 검토부터 서류 작성, 일상적인 소통까지 모든 것이 영어로 이루어졌다. 토익영어로 충분하겠거니 싶었던 나의 영어 실력은 실전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사수는 회사에서 손꼽히는 업무 고수였다. 그에게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던 거 같다. 솔직히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둔해도 이렇게 둔한 사람이었던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모든 업무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 확신이 없으니 의기 소침해지고 그러니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오히려 더 큰 실수를 불러왔다. 새벽같이 출근해 전날의 미완성 업무를 마무리하고, 보고하면 어김없이 지적받고, 다시 수정하는 일의 연속. 하루하루가 데드라인과의 싸움이었고, 매일이 전쟁 같았다. 내 실수로 인해 전체 업무가 지체된다는 죄책감은 나를 짓눌렀다.

한때 '자신감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라고 믿었던 순진했던 신념이 냉혹한 현실 앞에 산산이 무너지면서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스펙과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특성이 사실은 '근거 없는 자만'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하였고, 주변 동기들은 모두 순조롭게 적응해 나가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진다는 열등감에 시달렸으며, 도망치고 싶지만 '최소한 1년은 버텨보자'는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이 모든 감정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날도 얼굴은 누렇게 뜨고, 식욕도 잃은 채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한 부장님이 불쑥 말을 건넸다.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으면 팀을 옮겨봐라."

아마 선의의 위로였을 것이다. 매일 야근하며 위축되어 가는 신입사원이 안쓰러워서 던진 한마디였을 터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쪽팔렸다.

'아,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구나. 내가 무능하고 실수투성이라는 걸.'

항상 밝게 웃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혼나도 씩씩한 척, 괜찮은 척 연기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그렇게 보이고 있다고 믿고 싶었는데... 사실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직에서 내가 낙오자라는 것을 말이다...


결정적인 순간은 어느 주말이었다. 프로젝트 마감을 앞두고 사수와 함께 사무실에 나온 날이었다. 그날도 예외 없이 나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안다고 고개를 끄덕였으며, 혼자 해결해 보려 애썼지만 결과물은 엉망이었다. 자신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는지, 주말에도 불러서 혼내는 사수가 그냥 미워서였는지 내 안에 쌓여있던 무언가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혼내시더라도 조금 더 자세히 가르쳐주시고 나서 혼내셨으면 합니다."

아차 싶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것인가? 니가 실수해 놓고 왜 사수에 화풀이하는 것인가? 사수는 나에게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었다. 사실 그 기회를 충족시키지 못한 건 나의 잘못 아닌가... 너무 혼란스러운 나머지 그의 눈도 못 마주치고 사과도 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날 이후 사수와의 관계는 냉랭해졌다. 그나마 의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수와의 관계마저 그렇게 되고 나니 이제 정말 암담했다. 앞으로 어떻게 회사생활을 이어가야 할지 막막했으며, 나는 애초에 조직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나 싶었다. 등대 불을 잃고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직장생활이라는 망망대해의 한가운데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그런 절망적인 나날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광교를 건너는 순간들이었다.

첫 1년 동안 나는 늘 제일 먼저 출근했다. 일을 못하니 물리적인 시간이라도 더 투자해야 한다는 열정과 오늘만큼은 반드시 무언가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나를 새벽길로 내몰았다.

종각역 5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광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리라고 부르기엔 애매할 정도로 짧지만, 엄연히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뤄진 아치형 다리다.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이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그곳'에서 잠시 멍 때리는 걸 좋아했다.

양옆 빌딩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청계천과 그 너머로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작은 의식?이라면 그럴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햇살이지만, 나에게는 아주 특별했다. 그 따스한 햇살은 '오늘은 모든 것이 잘 풀릴 거야'라는 희망의 속삭임이었고, 혼나더라도 웃을 수 있게 해주는 내면의 버팀목이었으며, 어찌 됐든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영양소였다.

퇴근길 광교는 또 다른 의미였다.

상처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건물을 나서면 횡단보도 너머로 익숙한 광교가 보인다. 그 짤막한 오르막은 출근길과 다르지 않지만, 그곳을 오르는 과정은 회사로부터의 탈출, 업무로부터의 해방, 모든 스트레스와의 작별을 고하는 신성한 의식과도 같았다. 오늘의 실수를 반성하고, 내일을 불안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고민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몇 걸음 옮기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광교 '그곳'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바라본 광교 아래 풍경은 애석하게도 너무나 평화로웠다. 마치 나를 비웃듯 세상은 평온하고 사랑스러웠다. 어김없이 흐르는 청계천과 그 주변의 예쁜 야경, 산책하는 가족들, 서울 구경 온 외국인들, 몇몇은 앉아서 책을 읽고 연인들은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아, 이제 퇴근이구나. 오늘도 어떻게든 버텨냈구나...'

그렇게 광교는 내게 하루의 경계선이 되어주었다. 아침에는 희망을, 저녁에는 위안을 주는 작은 다리. 그 짧은 다리 위에서 나는 매일 나 자신과 마주했고, 치료받고 또 다른 하루를 견딜 힘을 얻었다.


절망과도 같았던 회사생활에 한줄기 빛이 들기 시작한 것은 입사 후 9개월이 지나서였다.

매년 1~3년 차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업무 성과 발표 대회'가 있었다. 1년 동안의 업무 성과 중 회사에 기여한 정도를 평가하여 수상하는 연례행사였다. 수년간 이어져 온 전통 있는 행사이기도 했다.

1년 동안 혼나기만 했지 특별한 성과라고는 없던 나였지만, 이 기회에 내가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영원히 낙오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름 정말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이것은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수상이 목적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으로 준비에 매진했다.

발표 당일, 심사위원석에 우리 팀 이사님이 앉아 계셨다.

평소 같으면 같은 조직원에 대해서는 평가를 자제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날 이사님은 유독 나의 발표에 많은 칭찬을 해주셨다. 덕분에 주변 심사위원들의 후한 평가를 받아, 기적적으로 발표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내가 팀 내에서 존재감이 없어서, 이사님은 내가 본인 조직원인지도 몰랐고 그래서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셨다는 것이었다. 1등을 하였던 가장 큰 요인이 내가 팀 내 존재감이 없었기 때문이라니... 참 세상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도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구나. 똑똑한 이들과 경쟁해도 내가 비교우위에 있는 것이 뭔가는 있었구나. 거봐 열심하니까 결국 좋은 결과기 있었잖아. 너의 신념은 틀리지 않았어!'라는 생각에 그동안 바닥에 가까웠던 자존감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팀 내 분위기도 달라졌다. '저 친구가 뭔가를 잘하는 구석은 있는 친구구나'라는 인정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작은 변화가 나에게는 큰 의미였다. 비로소 망망대해에서 한줄기 빛을 본 기분이었다. 광교를 건널 때마다 간절하게 염원하던 나의 의식들이 마침내 응답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힘겨웠던 시간들이 나를 성장시킨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능력은 부족하지만 체력과 의욕만으로 내가 원하는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렇지만 현실의 높은 벽에 한계를 느끼며 그만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자괴감, 이 두 가지 극을 달리는 감정을 오고 가며 괴로울 때마다 나를 일으켜준 건 자기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광교 위를 걷는 종로의 모든 '아무개'들 이었다. 어쩌면 나처럼 상처받고, 포기하고 싶고 출근을 괴로워했을지도 모를 사람들, 하지만 느리고 더뎌도 정확하고 분명한 보폭으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무녀 졌던 나의 자존도, 새로운 삶을 향한 의욕도 다시 차오르는 듯했다. 매일 그 다리를 건너며 나는 조금씩 단단해져 갔고, 마침내 종로에 어울리는 진짜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난 이제 그 회사에 더 이상 근무하고 있지 않지만 광교를 종종 지나간다. 광교 그 주변은 주말에는 교통이 통제되어 도로에 차가 없어서 아이들과 맘 편히 이동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내 딸도 이제 4살이 돼서 자전거를 슬슬 배워야 하는데 여기서 연습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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