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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의 의미

비 정상(頂上) 일기 (My Abnormal Diary)

by 원더풀 원섭
나라는 사람은
스스로 둔재임을 인정하고, 노력하고 준비하여 '열정'과 '집요함'으로 끝내 완주해 내는 사람이다



"물이 없으시네요"

"네~? "

"본인 사주에 물이 없어요. 대신 '불'이 많네요. 보통은 부족한 오행을 이름으로 보완하기도 하는데..... 이름에도 '불'만 있네요.."

"그럼 전 어떻게 되는 건가요? "

"본인 사주에 물이 들어오는 시기가 있어요. 그때가 되면 사업, 건강, 재물운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게 언제쯤일까요?"

"아.... 65세부터라고 되어있네요"

"....."


마음이 무겁다. 인생의 전성기가 아직 안 왔고, 앞으로 올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65세이며 그전까지의 인생이 그다지 순탄치 않을 것만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유일한 돌파구가 이름인데 이마저도 기댈 수 없게 되었다.

내 이름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사주에 불이 넘치는데 이름에도 굳이 불꽃(燮)을 보태시다니. 분명 좋은 뜻이겠으나, 사주를 들어보니 할아버지의 선택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직하기 직전에 쓴 '분갈이'를 올린 후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새로운 조직에 뿌리를 내려 다시 적응 중에 있었다. 그 전의 나의 업무 경험과 방식,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개인적인 성향들이 여기선 대부분이 적용되지 않았고, 그래서 다시 신입사원과 같은 입장에서 매우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마치 견고했던 껍질에서 탈피하여 외부 환경으로부터 상처받기 쉬운 맨살의 갑각류와 비슷한 입장이지 않을까 싶다.


업무는 회사에서 정한 기본적인 규칙만 준수하면 되는 '절대평가'라고 생각했다. 커트라인만 넘기면 일은 진행이 되기에 굳이 100점을 맞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업무의 성격에 맞게 커트라인을 설정해서 그에 맞는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것이 야근 없이 스마트하게 일하는 비결이라고 믿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실상은 새로운 업무를 다시 배우고, 성격이 다른 업무를 접하면서 커트라인이라는 것을 파악하기까지 많은 실수와 야근이 필연적으로 동반되었다. 더 힘들었던 건 그 커트라인 자체도 이전보다 몇 단계 높아서, 이직하지 않았으면 흔들리지 않았을 과거의 기준이 이제는 나를 가둬놓는 울타리가 되었고, 여기서 몇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만 했다.


'분갈이'를 쓸 때 내가 다짐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기존의 것을 버리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을 온전히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의지', 그리고 모든 변화와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열정'과 '집요함'. 어쩌면 이것이 내 초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그 초심의 무게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머리가 좋고 회전이 빨랐다면 이런 우여곡절은 없었을 텐데'. '내 사주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니 바꿀 수 없더라도, 이름이라도 이를 보완했더라면 조금 더 편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커트라인을 단번에 파악해 내비게이션처럼 지름길로만 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에게는 없는 특별한 재주인 것 같아 부럽기만 하다. 또한 남들은 한 회사에서 10년, 20년을 다니는데 나는 벌써 여기가 세 번째다. 그것은 내가 세 번이나 이 적응할 수 없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 삶은 무엇하나 특별할 것 없는 나에게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더한 '열정'과 '집요함'을 강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스스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학교나 학원에서도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시면 한 번에 이해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나 스스로 풀어보고 체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다만 비슷한 성과를 내기 위해 남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으며, 그 효율로 따지자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변화하는 고효율 시대에 나 홀로 석탄으로 발전하는 증기기관의 차주인 셈이다. 심지어 게임도 못한다.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시작해도 일주일만 지나면 실력 차이가 벌어져 지루하다 못해 졸기 십상이다. 무엇인가의 특별한 소질이 없으니 흥미도 못 느껴서 이렇다 할 취미도 없다. 지금까지 하고 있는 취미라면 걷기와 헬스장 가기 정도인데, 이는 팔다리만 붙어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 취미라고 하기도 부끄럽다.


그런데 최근 생소한 내 모습을 발견했다. 운 좋게 괜찮은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고, 나보다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착각에 빠졌다. '아, 나도 이제 제법 되는구나.' , '이 정도면 나도 쓸 만하지 않나?' , '그래, 이제 충분해. 됐어.'라고 말이다.

매우 이질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마치 평생 거북이로 살아왔는데, 출발선에서 다른 토끼들과 같이 서 있다 하여 평생을 같이한 등껍질이 거추장스러워진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안다. 성실한 사람이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순간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그 순간 노력이라는 유일한 장점마저 잃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의지할 만한 인맥도, 명석한 두뇌도 아니라는 것을. 비록 그것이 증기기관이라도 긍정적 미래를 희망하며 어떻게든 결승전까지는 가보겠다는 우직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회사에서의 내 업무 성과들은 내가 특출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단지 능력이 부족하여 커트라인을 찾지 못해 길을 잃고 방황하던 여정을 통해 얻은 실패들이 주는 교훈이었다는 것을.


나라는 사람은

스스로 둔재임을 인정하고, 노력하고 준비하여 '열정'과 '집요함'으로 끝내 완주해 내는 사람이다. 노력의 결과는 내가 선택할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여 결국은 대기만성일 것이라는 긍정적인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은 타고난 사주와 부족한 능력에 연연하지 않고 인생의 매 순간을 나만의 속도로 유영하는 사람이다.


이제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너의 여정이 언제 힘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 도전하는 매 순간이 순탄하지 않았고 고통스러웠다.

'노력 없이 무언가를 그냥 잘해본 적이 있었나?'
→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이유 무엇인가?'
→ 세상은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로 부응하기에 공평하다고 믿는다. 적어도 내 세상은 그렇다.


이제야 알겠다.

할아버지가 내 이름에 불꽃(燮)을 담아주신 이유를.

머리가 좋아서 커트라인을 단번에 찾아 지름길을 택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평생 남보다 더 노력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료가 필요했다.

마침내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할 때까지, 내가 찾고자 하는 무언가를 발견할 때까지 부디 지치지 말라고,

포기하고 싶을 때 한 발만 더 내딛으라고, 할아버지는 내 삶의 '열정'과 '집요함'을 담아주신 것이다.


내 인생의 전성기가 65세라는데. 그 여정이 고생길일지라도 두렵지 않다. 나에겐 언제나 활활 타오를 불꽃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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