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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풀 원섭 May 16. 2023

K-아빠의 육아 시리즈 (1)

육아 패권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기준은 다양하다 (편의상 2개로만 구분하겠다). 경제, GDP, 정치, 사회 각 영역의 다양한 지수 등을 활용하여,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은  '스스로 기준 또는 표준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본다. 선진국은 최초의 생각들을 기록하고 이를 표준화하여 세계의 질서를 유지한다. 반면 후진국은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기준 또는 표준을 가져다 그들의 이념을 동경하 빠르게 이를 따라가려 애쓴다. 몇몇의 근면 성실한 후진국이 따라올만하면 선진국은 기준을 교묘하게 변경하고 응용하여, 다시금 그들의 패권을 유지한다.

시행착오를 거쳐 이것을 기록하고 수집된 기록을 기준 삼아 표준으로 정립하는 일련의 과정은 선진국 개개인의 의식 수준, 사유의 깊이, 철학의 존재 유무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이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가기 힘든 이유이다.


당최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서론부터 이런 난해한 잡소리를 떠벌린 이유는 육아에 관해서 집안 내 아빠의 위치가 정확히 후진국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평소 말싸움에 자신이 없지 않다.

하지만 육아에 관해서만큼은 그 승률이 0에 수렴한다. 와이프의 잔소리에 가끔은 정말 끝장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는 분명 아이에게는 이롭다는 걸 알기에 참고 또 참는다.


한 번은 정말 벼르고 있다, 와이프가 본인이 정해놓은 기준과 다르게 행동할 때면, 이때다 싶어 얼른 '여보가 이거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라고 공격한다. 통쾌하다. 그러자 와이프는 아이 있는 앞에서 목소리 높이지 말라고 날 또 구박한다.(아이 있는 앞에서 남편을 구박하는 건?)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구나 싶어 순간 흥분한 자신을 반성하며 자리에 앉는다. 다음번엔 정말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돈다.


평소 아이 목욕은 꼭 같이 시킨다. 씻길 때 솔질은 반드시 위아래로 해야 한다. 그날은 와이프가 양옆으로 솔질을 했다. '여보 나한테 양옆으로 한다고 뭐라고 하더니, 오늘은 여보가 그렇게 하네'라고 매우 차분한 어조로 공격을 했다. 두 번의 실수는 스스로에게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자 와이프는 '위아래는 몸통, 양옆은 목'이라는 새로운 기준으로 목욕의 표준을 재정립하였다. 거의 따라잡은 격차가 다시 벌어졌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만 이는 분명 합리적이긴 하다. 목은 양옆으로 닦아주는 것이 더 깨끗하다. 난 빠르게 수긍하며, 변경된 기준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렇다. 그녀는 기준을 만드는 육아 선진국이며, 난 기준을 수행하는 육아 후진국이다.

선진국인 그녀는 기호와 기분, 날씨와 미세먼지 농도 등에 따라 그 기준을 적당히 응용하고 변경하여 육아 패권을 유지한다. 반면 후진국인 난, 한번 세워진 기준을 수행하기만 하지, 그 이유에 대해서 그녀만큼 깊이 있게 고민해 본 적이 없기에, 여전히 후진국..이다.


분하다. 난 이런 대접을 받아선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핸드폰을 본다.

와이프는 그렇게 하루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볼 거면 핸드폰이랑 살라고 한다.

순간 내가 핸드폰을 너무 오래 봤다 싶어 머리를 긁적인다...


잊지 말자.

대한민국은 기적 같은 성과를 이뤄가며 선진화를 달성해 낸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대단한 국가이다. 대한민국 국민이자 동시에 아빠인 내가 중진국의 함정을 극복하여 육아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것. 이것이 나의 사명인 것이다.


육아 패권을 찾아오는 그날까지 K-아빠의 육아는 계속된다.




* 와이프를 비방할 의도는 없으며  와이프와 아이 모두 너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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