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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함께 살아갈 날들

by 아보

이렇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닭 이야기를 했다. 쑥이, 참이, 방이, 오동이, 복분이, 복숭이, 나리, 쓔가, 오디, 뽕이까지. 각각 이름을 갖고 있는 그들은 그들의 삶이 있었고, 그들의 개성이 있었다. 그들의 삶을 보며, 삶의 탄생과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아름답고 찬란한 탄생이 있다. 병아리가 삐약삐약 거리며, 이 세상을 평정할 듯 돌아다닌다. 순식간에 고양이나 쥐에 잡혀 먹히거나, 엄마 닭의 무성의로 병아리는 죽는다. 그렇게 호기롭던 기운은 사라지고, 차갑게 식은 사체가 되어버린다. 놀랍게도 그 사체는 다시 거름 되어 돌아간다. 얼마 안 있어 닭은 다시 알을 낳고, 알을 품고, 생명이 태어난다. 인간 삶의 탄생과 죽음의 축소판을 닭을 통해 보게 된다.


닭들은 오늘도 내일도 항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간다. 새벽같이 일어나자마자 그들은 닭장에서 나오기 위해 애쓴다. 밥을 퍼서 그릇에 담아줄 때 가장 먼저 뛰어 나오는 녀석은 복숭이다. 복숭이는 국자를 보자마자 뛰어서 한입 베어 물어야 직성이 풀린다. 닭장을 나오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온 바닥을 발로 긁으며 돌아다닌다. 수컷 방이는 2인자 수컷 오동이를 감시하면서 암탉과 교미하느라 바쁘다. 배도 차고, 몸이 편하다 생각되면, 흙목욕을 한다. 이곳 저곳 깊숙이 모래를 파고 자신의 몸에 흙을 올려 놓는다. 각자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사느라, 미래나 과거를 걱정할 시간이 없다. 그들에겐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복분이는 또 알을 품었다. 벌써 세 번째다. 끈질긴 생명의 지속성이다. 지난 번 새끼를 잃은 것은 아랑곳 않고, 알을 품었다. 이번엔 복분이 새끼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성심성의를 다해야지. 소중한 생명들이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해야겠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엔 광주의 광주극장 뒤에서 '지구농장터'라는 파머스마켓이 열린다. 농부들이 직접 와서 자신의 물품을 파는 곳이다. 매주 달걀을 가지고 나가면, 금방 팔린다. 양도 별로 없거니와,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주위 분들은 달걀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에게 달걀을 선물하면 몇 번이나 고마워 한다. "이렇게 귀한 계란을 받다니. 너무 고맙네."하며 감동한다. 결국 연결이다.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닭 뿐만 아니라, 700평에 과수원에선 감나무와, 체리나무, 복숭아, 보리수 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다. 그늘지고, 습한 곳엔 표고목을 두어 자연스럽게 버섯이 피어날 수 있도록 했다. 나무 밑엔 톱밥을 깔아 대파와 메리골드, 산마늘을 심을 예정이다. 다양하게 심어 다양한 벌레들의 생태계를 만든다. 살충제를 안 치고도, 작물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밭에선 토종 씨앗으로 길러낸 작물을 키워내고 있다. 수비초, 곡성초, 쇠뿔가지, 퍼런콩, 쥐눈이콩 등 각자의 독특한 이름이 있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씨앗들이다. 닭에게 밭에서 나온 잡초를 던져주고, 남은 음식물을 준다. 닭들은 왕겨가 깔려 있는 바닥에 수시로 똥을 눈다. 그 똥을 다시 퍼서 과수원과 밭에 옮긴다. 그렇게 순환될 수 있도록 만든다. 그 가운데 인간이 있다. 땀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그들의 순환을 돕는다. 오늘도 내일도 나의 일은 그것이다.


닭은 평균 수명이 10년 정도 된다고 한다. 학계에선 30년까지 사는 닭도 있다고 한다. 우리 닭은 몇 년이나 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최소 7~8년은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 큰 일이 있지 않는 이상 닭과 오래도록 함께 지낼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닭을 두고 어딜 갈 수 없는 일이니, 오랜 시간 집을 비울 수가 없다. 길어야 2박 3일 정도다. 어쩌겠는가. 그들과 함께 살아야지. 미우나 고우나 함께 살아야지. 이렇게 정 준 친구들을 저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자리를 빌어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건강하게 함께 잘 살자. 고마워. 나의 닭선생님.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우리와 함께 해준 생명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나리(회색 암탉)가 알을 품고 있는 복분이(검정색 암탉) 자리에 알을 낳으려고 하고 있다
복숭이(찐회색)과 나리(연회색) 남매가 나란히 자다가 찍혔다 / 왼쪽부터 방이 복숭이 나리 쑥이(?)ㅋ
우리를(아니 먹이를 주는 우리를) 좋아하는 나리와 함께
애들아 카메라는 먹는 게 아니란다 / 왼쪽부터 방이, 복분이, 복숭이
24년 여름, 2인자 수컷 오동이가 잠깐 밖을 나와 자유를 누리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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