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되면, 두 마리 수탉이 새벽을 가른다. 방이와 오동이다. 방이는 23년 처음 곡성에 왔을 때, 데리고 온 녀석이고, 오동이는 참이가 낳은 자식이다. 오동이는 함께 태어난 병아리들과 커가는 과정이 달랐다. 병아리 때는 똑같은 모습이었으나 커가면서 암컷과 수컷은 확연한 차이가 났다. 벼슬은 산처럼 솟아 오르고, 회색 털옷에 갈색 털 목도리를 둘렀다. 오동이는 어릴 적엔 사람에게 먼저 다가왔다. 나에게 친근하게 구는 녀석이 살가웠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살려 달라는 신호였는지 모른다.
오동이가 어느 정도 성인 티가 나자, 방이는 오동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니, 이정도면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닐까. 방이는 오동이가 바닥에 내려오는 꼴을 보지 못했다. 잠깐 바닥에라도 발이 닿을라 치면 달려가서 오동이를 쪼았다. 오동이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러다가, 안되겠다 싶어 산란장 위로 뛰어 올랐다. 보통 닭은 수컷과 암컷이 1:10 정도가 돼야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여기에 수컷이 한 마리라도 더 끼어들게 되면, 둘은 서열 싸움을 하기 위해 매일 같이 치고받고 싸운다. 그러나, 오동이의 경우는 달랐다. 이미 다 큰 방이를 이길 방도가 없던 오동이는 어쩔 수 없이 방이를 피해 매일같이 도망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오동이를 못 살게 구는 닭이 또 있었으니, 그건 암탉 쑥이였다. 쑥이는 귀농 후 지금까지 계속 함께 살아온 친구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쑥이는 오동이를 무척 싫어했다. 마치 '저 자식은 꼴도 뵈기 싫어'하는 것처럼 오동이가 근처로 오기만 하면 달려가 꼬집었다. 심지어 쑥이는 얼굴이 벌개지면서까지 뛰어서 오동이를 발톱으로 할퀴기도 했다. 방이만으로도 힘든데, 또 하나의 적이 생긴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컷이 암탉을 지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쑥이는 오동이를 눌러버렸다. 오동이가 방이에게 쫓기다가도, 쑥이를 만나면 잽싸게 또 피해야 한다. 오동이는 살기 바쁘다.
산란장 위는 오동이의 유일한 피난처가 됐다. 가로*세로 50cm*30cm 되는 곳에서 대부분을 보냈다. 밥도 제대로 먹질 못하니, 그 위에 그릇을 놓고 그곳에 사료를 챙겨줬다. 오동이도 이를 아는 건지. 자신의 자리에 먹을 것을 두면 횟대에서 바로 날아와 그것을 쪼아 먹었다. 산란장 위에서 자꾸 왔다갔다 거리니, 오동이는 움직이다가 달걀을 깨기도 하고, 알을 낳고 있는 암컷들을 밟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오동이는 자신의 성욕을 참을 수 없었는지, 수시로 틈을 노려 암컷들과 교미하려 했다. 하루는 자기 전, 모두가 닭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오동이는 횟대 위에 올라가 있는 암탉의 등을 탔다. 부시럭 거리는 소리를 들은 방이는 날아서 오동이를 쪼아 쫓아냈다.
닭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교미 한다. 그런데, 그 성욕을 해결할 수 없으니 오동이로서는 어떻게든 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성장하자, 오동이는 방이와 싸울 때, 한두 번 정도 맞부딪히게 됐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방이와 맞붙어 싸운다. 깃을 세우고 최대한 자세를 낮춰 부리를 맞춘다. 서로를 감시하다가 '타다닥' 날갯짓과 함께 발톱으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상대방은 날라가거나, 밑으로 낮게 앉아 피한다. 아니면 맞부딪히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번 서로 공격한다. 그러다 지쳤는지, 물기 시작하는데, 방법이 오묘하다. 방이가 오동이를 꼬집기 위해 공격을 하면 오동이는 얼굴을 방이 발 밑으로 최대한 넣어 꼬집지 못하게 한다. 방이가 돌면서 오동이를 꼬집으려 하면 함께 돌면서 피한다. 그러다 다시 오동이의 차례가 오면 반대로 방이가 오동이의 발밑으로 숨어 피한다. 참 재밌는 싸움 방식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UFC에서 상대방에 주먹을 맞지 않기 위해 오히려 상대방에 몸을 파고드는 방법이랄까. 이 싸움의 승자는 누가될까. 승자는 바로!!!! 60초 뒤 공개... 아니, 방이의 승이다. 방이가 수시로 제대로 먹지도 못하게 하니, 체력으로 방이를 이길 방도가 없다.
이렇게 죽자 살자고 싸우는 이유는 결국,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다. 3년 전 밀양에 있을 때, 수컷 두 마리와 암컷 두 마리를 키웠었는데 두 수컷은 수시로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성격도 괴팍해서 가까이 가기만 하면 발등을 꼬집거나 사람을 쫓아내기도 했다. 놀라운 건, 암컷 없이 수컷만 있을 땐 그저 친한 친구가 된다고 한다. 물론 요란한 그들의 울음 소리를 견딜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동이를 이대로 두자니, 오동이가 괴롭고, 오동이를 보내자니, 내 마음이 서글프다. 어쨌든 간, 닭장 평화를 위해서라도 다음 병아리가 나와 수컷이 되는 친구가 있다면 입양을 보내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오늘도 오동이는 산란장 위에 오롯이 서있다. 어떻게든 살자. 오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