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여름, 집 내부 온도가 34도까지 오르던 때, 복분이는 갑자기 알을 품었다. 알을 품을 땐 알을 낳을 때와는 달리, 손을 근처에 조금만 갖다 대기만 해도, 깃털을 바짝 곤두세우며 오지 못하게 한다.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더운 날 알까지 품는다고 하니, 내키지 않았다. 손으로 툭툭 건드려 복분이를 내려오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때 뿐, 복분이는 다시 올라가 알을 품었다.
"에휴, 어쩌겠니?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더운 날, 복분이는 21일 동안 10개의 알을 품었다. 지난한 21일이 지나 2마리의 새끼가 '삐약삐약' 자신의 탄생을 알렸다. 그런데, 다음 날, 그 다음 날이 되어도 나머지 8개의 알에선 신호가 없었다.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기온 탓에 알도 견디지 못한 건 아닐까. 어쩔 수 없다. 알을 깨자, 그곳엔 생명이 되다 만 것들이 나왔다. 그것은 다른 닭들이 경쟁적으로 달려들며 먹어 치웠다.
복분이는 자신의 새끼 2마리를 애지중지 키웠다. 우리는 이 두 마리의 이름을 뽕과 오디로 지었다. 반년이 지나, 나온 새끼들이 알을 낳게 될 쯤이 되자, 복분이는 다시 알을 품었다. 이번엔 엄동설한 추운 겨울이다. 1975년 이후로 가장 더웠던 여름에 알을 품더니, 하필 또 추운 겨울에 알을 품니. 어쩌겠나, 자기가 품겠다는데. 우리는 또 복분이가 알을 품도록 두었다. 한번에 12개의 알을 품기도 하지만, 그만큼 고생이 심하기에, 우리는 7개의 알만 품게 했다. 각 알에 매직으로 숫자를 적어 혹시 다른 알과 섞이지 않도록 구분했다. 영하 10도에서 영하 15도까지 떨어지는 추운 날이 지속됐다. 그럼에도 복분이는 그 자리를 올 곧이 지켰다. 알을 따뜻하게 품겠다는 신념 하나 뿐이었다. 날이 추웠기 때문일까. 복분이는 중간에도 거의 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21일이 다 되어갈 때쯤 위에서 품고 있던 복분이를 바닥 항아리에 있는 곳에 내려주려고 했다. 높은 곳에서 병아리가 태어날 경우, 밑으로 내려오기 위험하기 때문이다. 밤에 들어가 복분이를 들어 올리자, 이미 2마리의 새끼가 "삐약삐약" 울고 있었다. 그곳엔 갈색의 똥 같은 것들이 지저분하게 퍼져 있었는데, 아마 복분이가 그곳에 싼 것 같다. 내려오지 못한 채 그곳에 볼일을 보고 만 것이다.
'아이고, 그 추위에 알을 품는다고 얼마나 고생한걸까.'
마음이 짠했다. 다음 날 두 마리의 새끼가 이어 태어났다. 4마리의 귀한 생명이 태어난 것이다. 이로써 닭가족이 14마리로 늘어났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복분이는 병아리를 수시로 자신의 품에 품었다. 하루, 이틀은 항아리에서 대부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병아리를 밖으로 데려 나왔다. 수시로 자신의 품을 내주어 병아리가 추위를 느끼지 않게 했다. 기계로 했으면, 사람이 했으면, 전구를 켜고, 수시로 먹이를 챙겨줘야 했을 일이다. 복분이는 자신의 일을 뿌듯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병아리에게 먹이를 먹이고, 따뜻하게 품어줬다. 37도 어미의 따뜻한 품 속을 어떻게 무엇이 따라갈 수 있을까.
복분이는 우리와 가까워져서 그런지, 우리에 대한 경계가 심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오히려 먹을 걸 달라는 듯이 걸어온다. 먹을 걸 주면 받아서 새끼에게 넘겨준다. 우리를 이렇게 믿어주는 복분이가 고마웠다.
병아리들은 조금씩 커가면서 점점 더 활발해졌는데, 수시로 그물망 사이로 삐져나와 탈출을 감행했다. 우리집 근처엔 고양이도 수시로 드나들어 위험한데, 병아리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겨났다.
1~2주간 병아리들은 잘 자라는 듯 보였지만, 점차 한두 마리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첫 죽음을 발견한 건, 바깥에서 얼어 죽은 새끼 한 마리였다. 병아리는 닭장 안 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꽁꽁 얼어 죽어 있었다. 꽁꽁 얼어붙어 고통스럽게 눈을 감고 있는 듯한 병아리를 보며, 너무 미안해 한참을 바라봤다.
그래, 나머지 세 마리라도 잘 지키자. 추워서 얼어 죽은 것이니, 이는 내 영역은 아니다. 복분이가 새끼들을 잘 보살피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믿고 복분이를 꾸준히 지켜봤다.
얼마 안 지나, 한 마리의 병아리가 또 사라졌다. 혹시 고양이의 소행이 아닐까하고, 이번엔 닭을 모두 닭장 안에 가두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뒤, 또 한 마리가 사라졌다. 이건 쥐의 소행이다. 밥그릇 근처에서 커다란 쥐 구멍을 확인했던 차였다. 쥐는 닭장 옆에 붙어 있는 생태 화장실에 보관되어 있는 나락을 뺏어 먹었는데, 이것을 숨기자, 닭장에 병아리를 밤에 물고 간 것이다. 그래 그럼, 쥐약을 놓자. 닭들이 올 수 없는 곳에 쥐약을 놨고, 몇 시간 뒤 확인해보니 이를 먹은 것이 보인다.
이제 딱 한 마리 남았다. 그래 너라도 살자.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가보니, 병아리가 혼자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을 못 차리길래 얼른 데리고 집에 왔다. 몸이 차가운 게 느껴져서, 히터를 틀어주고 그 위에 있게 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언제 아팠냐는 듯이 병아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너는 이제 살았구나하고 안심하고 다시 복분이에게 돌려줬다.
복분아, 네가 새끼를 잘 돌봐야 해. 한참을 병아리와 복분이를 들여다 봤다. 혹시라도 복분이가 또 병아리를 안 품으면 얼어 죽을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복분이는 이전과 다르게 굴었다. 새끼를 돌봐야 하는데 새끼를 두고 멀리까지 떨어져 나갔다. 새끼를 잃어 자신의 정신도 잃어버린 것인가. 그렇게 엄마가 되고 싶었던 복분이는 점차 자신의 새끼를 돌보지 않기 시작했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그래도 병아리의 안달에 마지못해 자신의 품을 내주는 복분이를 봤다.
"그래 복분아 네가 품어줘야지 누가 품어."
단단히 경고한 뒤, 다시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오후에 나왔다.
병아리가 죽었다.
복분이는 언제 자기에게 새끼가 있었냐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먹이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나는 병아리를 퇴비함에 넣어주었다. 우리 밭의 훌륭한 거름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결국 병아리들은 모두 죽었다. 복분이는 자신이 고생해서 낳은 새끼들을 모두 잃었다. 자연은 이렇게 혹독하고, 무섭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알을 낳고, 또 알을 품을 것이다. 이제 닭들이 왜 10개~12개씩 알을 품는지도 알겠다. 10개 정도는 품어야 거기서 세네 마리는 생존할 수 있다. 생각이 짧았다. 자연의 속도는 인간의 생각보다 더욱 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