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징검다리, 나의 주디 애벗
지금의 내 모습으로 다다를 때까지, 몇 권의 책들이 소중한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그중 한 자리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 바로 아주 어렸을 적 만난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다.
소설은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 지내던 제루샤 애벗이 익명의 후원자를 만나며 시작된다. 그녀의 글솜씨를 눈여겨본 후원자는 대학교 진학을 돕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바로 매달 자신의 일상을 담은 편지를 보낼 것. 긴 그림자만 남기고 떠난 후원자에게 제루샤는 ‘키다리 아저씨’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자신에게는 ‘주디’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한다. 그렇게 주디는 우울했던 고아원 생활을 뒤로하고, 배움과 경험이 가득한 대학 생활의 조각들을 편지지에 꾹꾹 눌러 담는다.
<키다리 아저씨>가 내게 준 긍정적인 영향이 외부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내 안에 숨어있던 씨앗을 틔워준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주디 애벗이라는 인물이 내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관점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주디는 의무적인 월 1회의 빈도를 넘어, 꽤 빈번하게 아저씨에게 편지를 낸다. 소소한 일상마저 꼭꼭 씹어 소화하는 주디의 모습은 나의 습관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누군가 어떤 말을 건넸는지,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주디는 시시콜콜한 삶의 조각들을 편지라는 형식의 일기장에 오롯이 담아낸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장거리 연애 시절, 지금의 남편에게 카카오톡으로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전하던 내 모습이 겹쳐 보여 웃음이 나기도 한다. 주디의 작은 이야기들은 수신인인 아저씨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독자들까지 그녀의 삶을 열렬히 응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기록은 곧 나를 타인과 연결하고, 내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임을 주디를 통해 배웠다.
주디는 고아원이라는 고립된 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누렸을 사소한 일상들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결핍의 그림자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가두는 대신,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처음'의 순간들을 경이로움과 환희로 맞이한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아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이 유일한 불평거리예요."
이 짧은 고백 속에는 삶을 대하는 주디의 단단한 철학이 담겨 있다. 자칫 환경을 탓하며 성격이 뒤틀리거나 매사에 소심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디는 온 마음을 다해 눈앞에 펼쳐진 나날을 긍정한다. 그녀의 이런 거침없는 태도는 나에게도 큰 가르침을 주었다. 어떤 척박한 토양 위에서도 기어이 기쁨의 싹을 틔워내는 낙천적인 근육을 기를 수 있게 한 것이다.
주디는 후원자가 보내준 용돈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고르며, 비로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돌보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이는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어울리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스스로를 귀한 존재로 대접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나 역시 주디의 변화를 지켜보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위해 작은 보상을 고민하고 정성스런 선물을 건네는 행위가 삶에 얼마나 커다란 에너지를 불어넣는지 깨달은 것이다. 결국 타인의 인정보다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가 나를 가장 먼저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나를 가장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주디는 삶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디는 수동적인 수혜자에 머물지 않는, 지극히 주체적인 캐릭터다. 누군가의 후원이라는 행운으로 삶의 새로운 문이 열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문턱을 넘어 낯선 길을 꿋꿋하게 걸어간 것은 결국 주디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거나 타인의 기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행복은 아주 단순해요. 자유롭게 생각하고, 배우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주디가 담담하게 내뱉은 이 고백은 시간이 흘러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흔들리지 않는 이정표로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 '제루샤'라는 과거의 이름 뒤에 숨기보다, 스스로 이름을 짓고 자신의 운명을 당당히 개척해 나가는 '주디'가 되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 그것이 비단 주디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추신. 내 스타벅스 닉네임은 여전히 '주디 애벗'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녀를 향한 나의 수줍은 고백이자 애정의 증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