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껴간 행운 뒤에 숨겨진, 더 단단하게 뿌리 내린 나를 마주하며
오늘은 사무실의 공기가 유난히 들뜬 날이었다. 동기와 옆 자리 동료의 이름 뒤에 새로운 직함이 붙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또한 애정하고 좋아하는 선후배들 역시 인정을 받아 새로운 자리로 올라가는 모습은 보는 내가 덩달아 뿌듯해지고, 기뻐지는 순간임을 확실하다. 그리하여,, 진심을 담아 축하를 전하는 마음은 한치 거짓됨 없이 진실하건만,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헛헛하고 외로워지는 것까지 쉬이 막을 수는 없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내게 '승진'은 정황과 타이밍이라는 이름 아래 두 차례나 비껴갔다. 남겨진 것은 오직 나뿐인 것 같은 기분, 그저 묘한 허탈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나의 지난 시간을 복기해 본다. 승진으로부터 멀어진 그 시간 동안, 나는 대신 다른 세계를 만났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 그것은 단순히 일을 쉬는 기간이 아니라, 내 생애 가장 경이로운 우주를 창조하고 확장하는 시간이었다. 아이의 눈동자 속에서 세상을 다시 배우고, 인내와 헌신이라는 이름의 성숙을 입었다.
다 가질 수 없기에 가진 것에 집중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승진이 사회가 부여하는 훈장이라면, 내가 일궈낸 가정과 그 안의 성장은 내가 내 삶에 직접 새긴 무늬다.
물론 여전히 마음이 요동칠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욕망 또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는, 여전히 뜨겁게 살아있다는 반증임을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안다.
지금 당장 계급장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는 풍파 속에서도 내 뿌리를 깊게 내리는 일이다. 타인의 속도가 아닌 나의 궤적을 믿으며, 나만의 우주를 더 깊고 풍요롭게 가꾸어 가고 싶다.
동시에 나는 오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신발 끈을 다시 묶는다.
지나온 시간이 내게 준 단단한 믿음을 바탕으로, 올해는 그 누구보다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다. 늘 그래왔듯 일을 즐기며,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성과를 증명해 보일 것이다. 나의 성장이 곧 팀의 에너지가 되고, 우리 회사의 결실로 이어지는 힘찬 한 해를 꿈꾼다.
오늘 승진의 기쁨을 맞이한 동료들에게는 아낌없는 축하와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성취가 얼마나 값진지 알기에 내 마음도 함께 환해진다.
그리고 이제, 조용히 고개를 돌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일궈온 나 자신을 가만히 안아줘야겠다!
승진이라는 숫자나 직함 뒤에 가려져 있었을지도 모를, 나의 고귀한 시간들을 기억한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세상을 다시 배우던 시간, 일과 가정이라는 두 세계를 오가며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았던 나의 성실함, 그리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내 뿌리'를 찾으려 애썼던 그 단단한 의지를 말이다.
"고생했어, 정말 잘해오고 있어. 나는 날 믿어"
스스로에게 건네는 이 한마디가 오늘의 아쉬움을 녹이는 따뜻한 위안이 되길 바란다. 지금 내가 겪는 이 헛헛하고 조금 허탈한 바람은 나를 무너뜨리려는 시련이 아니라, 더 깊고 굵은 나이테를 새기기 위한 계절의 변화일 뿐이라고, 그럴 거라고 믿고 받아들이고자 한다.
비록 지금은 조금 느린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실을 다지며 묵묵히 걸어온 이 시간은 분명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눈부신 기회의 문으로 나를 인도할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나는 여전히 빛을 내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뜨거운 존재이며, 다가올 시간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가장 아름답게 만개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 밤, 나는 남들이 정해놓은 궤도가 아닌 나만의 우주를 유영한다.
가야 할 길을 잃지 않고 묵묵히 빛을 내어온 나 자신이 대견해지는 시간.
직함이라는 이름표보다 '나'라는 존재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완성됨을 이제는 비로소 스스로 알아줄 수 있음에, 꽤 근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