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통화와 감정의 파도를 견디며 써보는 업무 일지
어떤 날은 기사 하나가 하루의 궤도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사실상 오후임)
점심 잘 먹고 와서 내 자리에서, 평온한 오전 업무를 정리하던 중, 우리 부서 단체 카카오톡방에 공유된 산업 기사 링크 하나가 그 시작이었다. 처음엔 그저 흔한 업계 뉴스라 생각하며 무심코 넘기려고 했으나, 행간을 짚어가던 시선은 특정 지역과 공장, 그리고 원료에 대한 설명에서 멈춰 섰다.
와씨, 우리 회사 이야기로 특정지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가치 중립적인 일반론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업계의 생리를 아는 이들에게 그 문장은 너무나 선명한 지문과 같았다. 잘못 읽히면 특정 기업에 대한 오해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구조인 셈이었던 거다. 이사님이 공유해주신 이유도 있을 것이며, "아, 이건 그냥 넘길 수 없겠다." 직감이 신호를 보낸 순간, 나의 '진짜 오후'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이었다. 과잉 해석은 아닌지, 다른 문맥으로 읽힐 여지는 없는지 기사를 수차례 곱씹었다. 이어지는 과정은 집요한 팩트 체크였다. 정부의 공식 발표 자료와 기사 사이의 미세한 간극을 대조하고, 업계 인맥을 동원해 현장의 실제 구조를 파악했다. 확인 결과,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건 아니었으나 '표현의 방식'이 문제였다. 원인과 주체가 뒤섞여 자칫 엉뚱한 곳으로 화살이 향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그렇게,, 오후 내내 전화기와의 씨름이 이어졌다.
관련 기관에 전화를 걸고, 담당자를 찾아 부서를 유영하고, 같은 질문을 수십 번 되풀이했다. "저희 소관이 아니다"라는 벽에 부딪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흩어진 정보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논리를 완성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기사를 쓴 기자와 연결되었다.
기자와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는 고독한 작업이다. 기사에는 기사만의 논리가 있고, 현장에는 그들만의 맥락이 있다.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후의 통화는 유독 녹록지 않았다. 명확한 오해의 소지를 설명해도 상대는 비유나 개인적인 해석으로 응수했다. (쓰바...) 울컥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금 필요한 건 논쟁의 승리가 아니라, 사실의 정확한 전달이다..... 나는 지금 대문자 T다... 감정을 덜어내고 차분하게, 업계에서 이 표현이 갖는 무게와 실제 공정의 단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에너지가 고갈될 무렵, 마지막 정리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하기보다 사실관계를 더 정교하게 반영해달라는 정중한 제언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안도감과 피로가 동시에 밀려왔다.
다음 날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기사를 확인했다. 업데이트된 기사 하단에는 전날 보이지 않던 문장들이 채워져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몇 줄의 변화일지 모르나, 그 작은 수정으로 기사 전체의 맥락이 바로 잡혔다. 주체가 누구인지, 무엇이 확인된 사실이고 무엇이 추측인지가 선명해졌다. 산업의 세계에서 이 작은 차이는 오해와 진실을 가르는 거대한 강이 된다. 그리고 그 강은 또 바다가 될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다시금 배운다.
리스크 대응이란 거창한 구호나 화려한 언변이 아니다.
아주 작은 표현 하나를 붙들고 사실을 확인하며,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묵묵히 전화를 돌리는 성실함의 총합임을.
전화 몇 통과 메시지 몇 줄로 점철된 하루였지만, 그 속에 담긴 긴장과 집중의 밀도는 가히 어마어마했다고 본다.
언젠가 다시 마주할 비슷한 폭풍 속에서 오늘의 이 피로감이 나를 지켜줄 단단한 예방주사가 되길 바라며,
이렇게 사건 기록 일지를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