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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보의 즉흥성에 관하여

계획을 무너뜨리는 나에게

by 옫아

무려 결혼 준비를 15개월 전부터 하는 내가,

사실은 MBTI에서 J가 아니라 P인 건 아닌지 최근 고민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공들여 쌓은 계획을 순식간에 무너트리는 사람이 나라는 점에서 그렇게 느끼기 시작했다.


막연히 생각하던 '아기와 아쿠아리움 나들이'를 갑자기 당일에 가겠노라고 정하는 사람이,

두 달 전부터 이유식 준비를 촘촘하게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2주나 앞당겨서 시작하는 사람이,

닭 안심 제거를 이틀 내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했지만 기어코 수령하자마자 냅다 해버리는 사람이,

나라는 점에서 나는 내가 너무도 즉흥적인 사람이 된 건 아닌지 고민되었다.


어쩌면 나는 공들여 쌓은 탑을 기어코 무너트렸을 때를 짜릿하게 느끼는 걸까.

내가 만든 엄격한 무언가를 스스로 파괴할 때 느껴지는 쾌감이라도 있는 걸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속담 중에 '쇠뿔도 단김에 빼라'가 있다.

무엇이든 가장 효과적인 시기(적기)를 놓치지 말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의미인데

나는 조금 다른 뜻으로 쓰고 있다.


계획을 좋아하라 하는 나이지만,

사실상 오래 고민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길 때 강렬히 느껴지는 내면의 직감과 순간의 생기를 더 원하는 듯 하다.


사실 J형의 사람들이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예상 가능한 변수들을 미리 예측하여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최소화하려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반영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계획은 단순한 일정 관리가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작용될지도.

그러한 점에서 나는 굉장한 쫄보이기에 더더욱 계획을 촘촘히 세우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계획을 기어코 무너뜨리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만 오히려 좋다.

심리적 불안을 결국 견디고도 해낸 사람이 되니까, 두려워하지 않고 직면했다는 증거가 되니까.


그러면 비로소 나는 나를 또 한 번 이겨냈다, 스스로 격려할 수도 있고 걱정하던 나로부터 나아갔다고 안도할 수 있으니까.


계획은 어쩌면 수단일 뿐,

진짜 중요한 건 그 계획을 지키느냐 무너뜨리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나를 얼마나 솔직하게 마주했느냐일지도 모른다.

계획을 따랐든, 벗어났든, 결국 내가 나를 움직였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하니까.


그게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동력이고, 그 순간의 선택이 결국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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