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겠지만, 그때 몰랐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음을, 이제는 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 문장은 시인이자 명상가인 류시화가 엮은 잠언시집의 제목이자, 킴벌리 커버거(Kimberly Kirberger)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시는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너무 이르게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말고, 자기 삶을 더 믿고 사랑했어도 괜찮았다는 뒤늦은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나는 내 삶을 후회 없이, 늘 열정적으로 살아왔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어 왔다.
내가 지나온 길마다 얼마나 많은 최선이 있었는지, 그건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해줄 말은 없다고, 더 보태줄 조언 같은 건 없다고 의심 없이 생각해왔다.
그런데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내게도 가슴에 오래 남아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고,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 그래서 꽤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얻은 깨달음이 하나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인생에서 공식적으로 겪은 첫 번째 ‘손절’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로부터 관계를 끊김과 동시에, 지체 없이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사건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로 잘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겁도 없이, 말 그대로 아무 망설임 없이 나의 가장 친한 대학 친구 중 한 명과, 내가 아끼던 고등학교 선배 언니를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로 이어주었다. 둘은 잘 어울렸고, 서로 통하는 부분도 많아 보였다. 이어준 나로서는 꽤나 뿌듯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점점 두 가지 불편함이 생겨났던 것 같다. 하나는 그 언니에게 내가 ‘자기 남자친구의 친한 여사친’이라는 존재로 이전과 달리 나를 조금 불편하게 인식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언니가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는 남자친구에 대한 불만이, 내게는 고스란히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에 대한 험담처럼 들렸다는 점이다.
사실 전자의 경우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아도 될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후자는 내게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아끼고 또 아끼는 친구의 단점과 부족함을 그 언니가 내게 늘어놓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나에게는 그의 부정적인 모습과 연인으로서의 아쉬움을 끝없이 털어놓으면서도, SNS에서는 둘이 세상에서 가장 애틋하고 행복한 연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내게 꽤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그 언니는 나의 단점들 역시, 내 친구에게 아주 편하게 털어놓고 있었다. 그것 또한 나에게는 쉽게 넘길 수 없는 불편함으로 남았다.
그러다 아주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를 계기로, 우리는 영원히 멀어졌다. 그 사건 속에는 분명 나의 어리석은 잘못이 있었고, 동시에 그것을 단 한 치도 용서하지 않았던 선배의 냉혹함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결국 결혼을 했고, 지금은 예쁜 아기와 함께 좋은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둘을 잃은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한 명은 내 소중한 20대 초반을 진하게 함께 보낸 친구였고, 심지어 네 명이 함께한 모임까지 공유했던 사이였기에 그 단절의 충격은 컸다. 또한 다른 한 명인 그 선배 역시 오랫동안 꽤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던 사람이었기에, 두 사람이 동시에 내 인생에서 잘려나간 듯한 감각—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나를 끊어낸 것이지만—은 매우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싶다는 마음은 끝내 들지 않았다. 내 잘못이 분명히 크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나를 이렇게 밀어낸 그들이 원망스러웠고,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갈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 나눴던 사람들이 떠나간 허망함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주기적으로 내 꿈에 나타났다. 꿈속에서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웃으며 관계를 회복하기도 했고, 때로는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쏟아내며 시원하게 싸우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나 역시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과정과 정신없이 흘러가는 현실에 치여, 그들을 조금씩 내 일상에서 지워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그들과의 관계를 놓아버리기 직전에 마주했던 장면과 너무도 닮은 상황들을 데자뷔처럼 다시 목격하게 되었다.
나의 친한 동생들이, 각자의 연인에 대해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서야 문득, 아주 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다. 왜 그 언니가 그렇게 내게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했는지를. 그때의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굳이 애인의 단점을, 그것도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들은 아마도 내가 편했을 것이다. 나라면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았고, 판단하지 않을 거라 믿었을 것이다.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마음을, 그 신뢰를 그때는 알아보지 못했다. 나에게 향한 말이라는 사실보다, 내가 지켜주고 싶은 사람을 향한 말이라는 점이 더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언니의 마음보다, 내 불편함을 먼저 붙잡았고, 그 선택이 결국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서야 조금 아쉽다. 그때의 나는 왜 그녀의 마음을 한 번 더 헤아려보지 못했을까. 왜 그 말들 뒤에 숨어 있던 ‘편함’과 ‘믿음’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물론 이 역시 내 관점에서 서술된 글이기에, 일부 기억과 감정에는 각색이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 적는 이유는, 누구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이제는 안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누군가가 내게 연인의 이야기를 꺼낼 때, 그 말이 반드시 험담이나 경계의 신호는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가장 편한 사람에게,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건네는 마음일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천천히 듣는다. 판단하기보다 머무르고, 바로 선을 긋기보다 한 박자 늦춰 생각해본다.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하나쯤은 있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사람을 덜 오해하고, 관계를 조금 더 오래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의 말을 험담이 아니라, 믿음으로 먼저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을 놓아버리기 전에, 그 마음부터 한 번 더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의 내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몰랐기에, 나는 그만큼 아팠고, 그만큼 서툴렀다. 그 사건은 분명 나를 흔들었고, 오래 남았으며, 쉽게 지나갈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그래서 더 분명한 깨달음이 되었다. 차마 소중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뼈아픈 성장의 한 장면이자 의미 있는 사건으로 남았다.
이제는 안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나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 일을 붙잡고 반추하지 않으려 한다. 그 사건을 미화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 인지할 뿐이다.
대신 지금의 나는, 내 곁에 남아 있는, 그리고 내게 다가와준 소중하고 특별한 인연들을 더 조심스럽게 대하고 싶다. 말을 건네는 마음을 조금 더 믿고, 관계를 쉽게 재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때의 아픔은 이미 제 몫을 다한 셈일 것이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나는 이미 충분히 이해했고, 지금의 나를 긍정하며, 오늘의 관계들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리하여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때 몰랐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음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