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호랑이 눈썹에 대한, 작은 반기를 들며.
<호랑이눈썹>
옛날에 어떤 남자가 결혼해서 사는데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고 괴롭기 그지없었다. 남자는 차라리 호랑이한테 잡아 먹히겠다고 결심하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호랑이가 남자한테 눈썹을 하나 뽑아 주면서 그걸 대고 사람들을 살펴보면 전생의 모습이 보일 거라고 했다. 남자가 눈썹을 대고 살펴보니 많은 이들이 사람이 아닌 동물로 보였다. 자기 부부를 보니 자신은 본래 사람이고 아내는 암탉이어서 일이 그렇게 안 풀린 것이었다. 마침 집에 어느 부부가 손님으로 들었는데 눈썹을 대고 살펴보니 남자는 수탉이고 여자는 사람이었다. 그 부부 또한 되는 일이 없었던 터라, 두 부부는 상의 끝에 서로 짝을 바꾸어서 살기로 하였다. 짝을 바꾼 뒤로 남자는 하는 일마다 잘되어 큰 부자가 되었다. 나중에 보니 전 아내의 부부도 부자가 되어 잘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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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때,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했다.
당시 내가 교육을 받던 학교는 '문학치료'로 유명한 서울 광진구 소재의 K대학교여서,
많은 교수님들과 선생님들의 좋은 가르침을 받으며 건강한 서사를 배우고 탐구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원천강본풀이(오늘이 설화)를 비롯한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었음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큰 행운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사춘기 때보다 더 내가 누군지 어딜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를 늘 화두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 덕분에 한때에 매몰되지 않고 조금씩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옛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는, 바로 '호랑이'이다.
올해 2022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로, 많은 마케팅과 스토리텔리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호랑이'를 살려 많은 콘텐츠가 양산되고 있기도 하다.
나는 호랑이를 다룬 옛이야기, 구비 문학을 실제로 정말 좋아하고 이를 색다른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음에 큰 매력을 느끼곤 했는데 막상 내가 학부시절을 넘어 조금 더 어른이 되었을 때, 보다 더 자세하게 털어놓자면 진정한 연애다운 연애, 사랑다운 사랑을 할 때, '호랑이눈썹'이 생각난다.
특히 나랑 너무도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그래서 힘들어할 때 나는 마치 '호랑이눈썹'을 손에 쥐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차마 그 사람 앞에서 흔들지는 못하는.
사실 이야기 <호랑이눈썹> 속 호랑이는 그리 중요하거나 핵심적인 소재는 아니다.
호랑이의 눈썹을 통해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 그 상대방이 나와 같은지 아닌지를 보는 것. 그것이 조금 더 중요한 핵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부부라는 관계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걸어간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부부는 나의 상당한 부분을 상대방과의 교집합으로 내어주는 관계이거나 나와 닮은 얼굴을 마주한 이들을 지칭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 닮은 사람만이 부부로서 행복할 수 있나요.
서로 다른 사람은 부부로서 행복할 수 없나,. 상당한 다름이 있으면 이야기 속 부부처럼 작별하는 걸까.
다른 닮음을 공유한 사람도 아예 다른 동물로 취급해 주는 건가요.
많은 이들에게 명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이터널선샤인> 속 커플은 헤어진 후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
그러나 기억은 지워졌어도 끌리는 그 마음은 영원한 걸까.
영화 말미에 둘은 서로 마주보며, 어쩌면 같은 지점에서 다시 주저 앉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함께하길 갈구한다.
<호랑이눈썹>대로라면, 영화 속 둘은 헤어진 후 안녕을 고하고 각자를 닮은 사람을 찾아야 떠나야 한다.
하지만 나를 닮은 사람을 사랑해야만 하는 건 아니고, 나를 닮은 사람과의 관계만이 진정 행복한 건 아니다. 우리는 때론 다름에서 닮음을 발견하고, 다름을 통해 더 넓은 세계로 그 사람과 함께 나아가기도 하니까. 똑같은 지점에서 넘어져도 괜찮다. 손 잡아주고 같이 걸어가는 선택지도 분명 있을 테니.
내게는 곧 함께한 지 만 4년이 되어가는 애인, L이 있다.
우리를 보며 주선자 F가 한 이야기가 있다, 둘은 마치 스님과 개 같다고.
아쉽게도 내가 개고, L이 스님이다. 두 단어만큼 우리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는 없다.
말 그대로 평온하고 안정적인 L과 활발하고 역동적인 나는 많은 부분에서 닮은 면보다 다른 면이 더 많다.
특히 애정 표현에서 상당히 극과 극으로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애정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상대방에게 확인받고 싶어하는 '창'과 같은 나와
말로 하지 않아도 일상 곳곳에서 배려하고 존중하고 아껴주는 '방패'와 같은 L.
서로를 향한 마음은 분명 같은데, 표현하는 표현되는 방식이 너무 다르고 그걸 해독하는 데에도 서로 난관을 겪고 오해가 쌓일 때가 종종 있어 왔다. 그럴 때마다 우리 둘은 마치 평행선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원히 만나지 못할 각자만의 선을 걸어가고 있어 우리는 평행선 같다고. 그러면 '호랑이 눈썹'을 들고 흔들 때 지금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정말 '호랑이 눈썹'을 들고 상대방을 마주한다면 나와는 너무도 다른 결을 가진 사람일까봐.
그래서 나는 이 사람과 계속해서 행복하고 싶은데, 헤어지는 것이 맞다는 확인을 받을까봐.
그렇게 확인 받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한, 내가 원치 않은 정답을 들을까 두려웠다.
그렇지만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미 그 앞에서 몇 번이고 호랑이 눈썹을 흔들어 보았기 때문이다.
나랑 다른 사람.
그래서 내가 더 좋아할 수밖에 없고 배울 점도 정말 많으며 깊은 애정을 충분히 주고 받고 있는 단 사람.
또 함께라면 더 멀리라도 기꺼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내가 알지 못했던 감정을 마주하며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그런 사람.
그리고 때론 다름 속에서 어떠한 닮음을 만나고 있는 어쩌면 나를 닮은 사람.
나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 물론 '호랑이눈썹'에서 말하는 '같은 사람'이 똑닮은 100% 동일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같은 사람과 함께한다면 많은 것이 평안하고, 긴 말 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로서 얻는 만족감이 높을 것이다. 싸울 일도 적을 것이고, 내가 말하는 언어들을 모두 다 제대로 이해하고 나를 완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늘 자리하겠지. 그러면 나는 너고, 너는 나가 되는 경이로운 순간도 흔하게 만나겠지.
물론 그렇겠지.만,
나랑 닮지 않아도 괜찮다. 네가 내가 아니기에, 그러니까 네가 너라서 그 이유로 나는 너랑 함께하고 싶으니까.
그럼에도 우리의 관계 속 다툼이 있을 때마다 속이 좁은 나는 몇 번이고 호랑이 눈썹을 흔들어 볼 때가 있겠지. 내 마음이 온전히 너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역으로 네 마음이 오롯이 내게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랑이 눈썹을 신나게 흔들 때마다, 얼마나 우리 다른 사람인지 새삼 깨닫겠지.
그러면서도 그깟 호랑이 눈썹이 뭐라고. 하며 호랑이 눈썹을 멀리 집어 던질 것이다.
우리는 호랑이 눈썹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겠지. 다른 듯 닮은 그래서 더 사랑하게 되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산 호랑이 눈썹도 그리울 게 없다.' 던데,
*산 호랑이 눈썹도 그리울 게 없다 : 매우 귀한 산 호랑이의 눈썹까지도 그리울 게 없을 정도라는 뜻으로,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어 무엇 하나 아쉬운 것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미 우린 서로의 다름을 통해 각자가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들이 채워가고 있으니까.
같지 않은 다른 조각들을 다채롭게 모아가고 있으니, 그 언젠간 우리 모든 것을 다 채우겠지.
때론 언어가 달라 토라지고 미워하고 끝내 이별을 잠시 생각하는 한이 있더라도.
언어를 해석하기 위한, 언어를 조금 더 가까이 전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과 행동들을 거듭하며 차츰 거리를 좁혀 가닿겠지.
그때 거기서 만날 때까지, 함께하자. 나랑 다른, 닮은 사람아.
덧) 자석도 서로 반대 극이 끌리는 거고, 같은 거면 멀어지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