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와 선택
2018.10. 29.에 작성한 글 (*일부 수정)
어제 H를 만났다.
1월 초에 보고 연말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즈음 만났으니 1년만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출장이라는 명목 하에 만났지만, 짧은 휴가와 같은 하루였다. 홀로 즐긴 가을 기차 여행도 좋았고 오랜만에 만난 얼굴도 반가웠다.
짧지만 알차고 좋았다는 흔한 표현을 뒤로 하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왔다.
막히는 퇴근길을 뚫고 피곤한 몸으로 대학원 수업을 들었다. 어제 수업 주제는 나의 지난 대학 시절 속 교지의 일부와 맞닿아 있었다.
모든 게 모든 것의 꼬리를 물어 덮어둔 시간을 꺼내게 만들었다.
졸업식을 가지 않은 건 신의 한수라고 생각했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지 않는다는 어느 뮤지컬 속 여주인공처럼 끝을 마주하면 정말로 끝일까봐,
나는 나의 대학교로부터 비겁하게 잘 도망쳤고, 글쎄 여전히 도망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보낸 시절이든 아니든 그 끝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진행형이 아닐까.
누군가가 보기에 나는 계속 앞을 향해 달리는 중이겠으나, 시야를 조금만 돌리면 같은 곳을 그대로 옆의 창문으로 두고 달리는 중일 것이다.
제자리 걸음과도 같은 것. 충분히 옆을 돌아볼 수 있음에도 나는 내게 주어진 건 오로지 전진이라 믿으며 달리고 있다.
누군가와 관련된 한 가지 키워드를 꺼내 보라면, 나는 "H는 선택이야"고 이야기할 것이다.
H를 보면 나는 나의 선택을 생각한다.
첫 번째 선택은 2016년이었다.
교생실습을 앞두고 있던 내게 H는 어떤 인턴 비슷한 자리를 제안했고, 당시 내가 느끼기엔 탄탄대로(교직)를 걷는 게 더 옳다고 생각했다.
교생실습은 단언컨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던 시기고, 그걸 위해 교직을 선택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추억이다.
그렇지만 H가 제안한 그 회사는 지금은 대부분에게 잘 알려진 카메라 어플 업체로 그 당시는 한창 크던 중이었다.
만약 교생을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했으니 조금만 미루고 그 때 그 회사를 추천 받아 갔으면 지금의 난 어떤 모습이었을까.
H를 보면 늘 그 때가 생각난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 아니 가보지 않은 그 길을 걸었더라면? 그러면 지금의 나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두 번째 선택은 올해 초의 선택.
당시 나는 인생에 다신 없어도 괜찮을 법한, 내겐 꽤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정말 홧김이었나, 두고두고 쌓아둔 시간들이 만든 선택이었나, 아직도 명확히 선택할 수 없는 이유들 속에서 나는 선택을 했다.
그 선택과 H가 연결되어 있어, 나는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가보지 않은 길 속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고 감정도 무뎌져서 그런 걸까. 나는 사실 그때의 선택을 바꾸고 싶진 않다.
그때의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믿으며 H의 다른 하루 속엔 그들이 있고 내가 없음을 너무 아쉽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세 번재 선택은 그 모든 것.
그 모든 순간들의 선택을 H와 비교하게 된다.
내가 못 한 것들은 H는 해냈기에, 그리고 이를 만끽하고 있기에 그런 걸까.
그렇게도 외롭고 작아졌던 서울이었는데, 내가 마주한 서울은 억새가 흔들리고 가을의 풍요로움을 힘껏 받아들이며 빛나는 서울이었다.
출퇴근길이 막히긴 하지만, 이 풍경 보는 맛이 있다며 운전을 하는 H.
나는 굳이 대전으로 도망 안 치고 당당히 서울에서 H처럼 취업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운전이 무섭다는 핑계 대신 뭐 차 끌다 보면 늘겠지하는 마음으로 H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운전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서울에서 취업도 성공하고 그 어느 시절처럼 뮤지컬과 연극 등을 자유롭게 보며 풍부한 감정선들 위에서 재밌게 뛰어놀 수 있었을까.
그런 선택들을 하기 위해선 어쩌면 작았던 스무 살의 시절부터 똑바로 마주하는 법을 선택해야 하는 걸 선택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나는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여기까지 잘 흘러온 거겠지.
지금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가보지 못 한, 선택하지 않은 선택지에 대한 무수한 아쉬움은 남아 있겠지만.
H에게서 선택을 본다.
H에게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