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옫아 Apr 08. 2022

이해가 안 되면 암기를 하자

한 존재를 내 안에 오롯이 각인하려는 노력은 멈추지 말아야지.

이해가 안 돼? 이해하려고 하지 마. 그냥 암기를 해. 



대학시절부터 선배들에게 줄곧 들었던 말이다. 

이와 관련한 맥락은 놀랍게도 특정 공식이나 학습에 관련된 게 아니다.

바로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이야기였다. 


국어국문학과를 학부 때 전공했던 나는 인문학의 정수에서 청춘을 보내왔다.

사람을 만나고, 이해하고, 더 깊게 들어가야 하는 과목들 중 하나인 문학.

그러니까 공부를 하기 위해선 사람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게 철칙이었다. 

이로 인해, 아무래도 관심사가 사람에 대한 이해로 좁혀졌던 것 같다.


바야흐로 약 10년 전인, 2013년은 또 얼마나 시간이 많이 남아 돌았던지. 

틈만 나면 동기들, 선배들과 함께 술집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우리의 극명한 차이의 간극을 좁히고자 이해하고 노력하고 서로 알아가려고 했던 치열한 시간들이 분명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도 분명 충돌은 있었고. 


다름의 고통은 꽤 크다.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기반으로 형성된 나의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이에 반하는 그 사람의 정체성. 

그 차이를 좁히고자 하는 시간들이 갖는 의미는 있겠으나, 그 사이에 놓인 현실은 이상과 달리 답답할 따름이다. 


그때, 선배들이 해줬던 이야기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냥 암기를 하라는 것.

저 사람을 이해하려고 했던 노력들은 이제 그만 멈추고, 아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구나, 라고 암기하는 것. 

마치, 어렸을 때 도저히 납득되지 않고 이해불가였던 수학 공식을 비롯한 여러 공식들을 그저 암기하고 내재화시키듯 사람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다. 

그래도 그렇지, 단순 암기는 결국 공부에 해롭듯 사람에 대한 막무가내식 암기는 오히려 애정이 안 담긴 게 아닐까요? 라고 질문했던 20살의 나. 


아니, 그게 아니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결국 암기를 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을 뿐이다. 

그러니 암기 전에 선행되었던 이해의 시간들을 인정하는 행위가 바로 암기인 것이다. 

나 역시 선배들의 진리가 담긴 명언 역시 '이해'하기 보다는 '암기'를 하며 살아왔다.

친한 친구들과의 갈등, 직장 동료들에 대한 어려움, 남자친구 성향에 대한 답답함 등 20살로부터 29살까지 살아오면서 만나온 여러 난관 때마다 나는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해하지 말자. 암기하자. 



물론 말처럼 쉬운 건 아니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애정이 기반이 되었기에 이해를 하려고 했던 거고. 

그 이해의 과정이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그 답답함과 치열한 투쟁이기에 지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관계를 여기서 단절시키는 게 아니라, 그 연속성을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암기가 최선의 선택지가 되는 거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는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암기는 꽤 괜찮은 스킬이었다.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고, 너무도 가까이 있지만 맞닿을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은 꽤 자주 찾아온다.

연인 사이에도, 친구 사이에도, 그리고 가족 사이에도.


최근 가족과의 작은 분쟁이 있었다.

나름 내가 배워오고 만들어 온, 어쩌면 사회가 통상적으로 바라는 신념. 그리고 내 기준에서 여기로부터 조금 어긋난 부모님의 가치관. 

아니, 나는 내가 정말 너무도 맞다고 생각되는데, 아니 이건 너무 뻔한 건데 도저히 납득하시지 않는 부모님을 보며 너무도 답답했다. 

나보다 더 많이 배우시고 경험한 분들이 정말 이걸 몰라? 실망감이 커져만 갔다. 

부모님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그런 기대는 너무도 쉽게 깨진 것이다. 

나름의 고집이 있는 나와 부모님 사이의 갈등은 조금 더 심화되어 갔다.

나는 나름대로 내가 가진 신념을 강요했고, 부모님은 물론 그건 알고 있음을 밝히시며, 본인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내게 어필하셨다. 


하지만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애초에 시작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 안건이었다. 

이러한 답답함을 가장 가까운 관계인 애인에게 토로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현명하고 진실되며, 내 입장과 부모님 입장 모두를 고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때 애인이 내게 해줬던 말.





그렇지, 가족이라 해도 모든 걸 다 이해하긴 힘들다. 

나의 상황에서 내게 중요한 가치들과 아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바들은 분명 다르고.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충돌한 것이니까. 

그러면 나는 아빠의 입장을 진정 암기했는가?

그러니까, 이해의 과정을 거쳐 암기를 결심했는가? 아니면 그 단계조차 걸어보지 않은 걸까?

이해에 대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암기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아빠를 외면한 건 아닐까?


맞다. 

적어도 그동안의 나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 끝에서 암기를 만나곤 했는데.

이번의 아빠와의 다툼 속에선 이해를 애초에 배제시킨 것이다. 그러니 암기까지 갈 수 없었던 거고.

이렇게 나는 애인의 가지 조언들 중, 해당 카카오톡 내용을 통해 나는 아빠에 대해 정말 이해를 해보려고 애를 맞는 건지 돌아보았다. 

아니었다. 이해와 암기 둘 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아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 이해의 과정 속에서 일부는 아빠를 이해하려는 마음, 일부는 아빠를 암기하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음을 마주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정말 애인 말대로, 가족이라고 해도 뭐든 걸 이해하긴 어렵다.

그렇기에 예전에 대학교 선배들이 해준 띵언인 이해가 안 되면 암기!를 외치게 되는 거고. 

잘 알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았을 오는 실망감과 좌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거.

  

그렇지만 그 실망감과 좌절감보단 애정 어린 마음으로 암기해 보려고.

한 존재를 내 안에 오롯이 각인하려는 노력은 멈추지 말아야지. 그래야지. 



-fin-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닮은 사람과의 연애를 지속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