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 새해 처음으로 서는 마음

이제 문을 여는 쪽을 선택해도 되는 계절이다.

by 옫아

새해 첫 번째 절기인 입춘(立春)은 말 그대로
봄이 선다는 뜻이다.


立, 서다.
무언가를 이루기 전의 자세,
몸을 세워 방향을 정하는 일.

春, 봄.
꽃이 아니라 기척으로 먼저 오는 계절,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생기가

은은하게 번져가기 시작하는 때.


그래서 입춘은 봄이 도착했다는 소식이라기보다
봄이 머물 자리를 조심스럽게 비워 두는 일로 읽힌다.
아직 아무것도 피지 않았지만, 무언가 서 있을 자리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특히 ‘立’이라는 글자가 그렇다. 이 글자는 결과를 재촉하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않은 채 어느 방향을 향해 설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그래서 입춘은 그 질문을 계절의 언어로 옮긴 날처럼 느껴진다.

아직은 패딩 없이 하루를 나기 어려울 만큼 춥고 겨울이 물러났다는 기척도 없는데,

달력 속 그 작은 한 단어가 풍경을 해석하는 방식을 바꿔 놓는다.

‘봄’이라는 음절이 들어온 뒤로 같은 바람도 조금은 다른 의미로 스친다.

이쯤에서 기대는 잠시 속도를 늦춰도 좋겠다.
앞당긴 결론은 계절의 리듬과 자주 어긋나니까.


대신 몸의 각도를 몇 도쯤 조정해 두는 선택을 떠올린다.
마음가짐을 조금, 태도를 조금 바꾸는 일.

그러면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도 다르게 흘러갈 수 있는 하루로 다시 불린다.

입춘의 ‘입’은 문을 활짝 여는 동작으로 보기엔 아직 이르다.
차라리 문 앞에 서 있는 상태로 남겨두고 싶다.
아직 손잡이를 잡지는 않았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는 와 있다는 사실.


태도는 늘 조용하다. 냉소는 물러나고 마음에는 여백이 생긴다.

포기라는 말 앞에서 문장은 한 줄 더 남고, 봄은 믿음이 아니라 준비의 얼굴로 다가온다.


그렇게 마음의 자세가 아주 조금 바뀌는 순간,
입춘이라는 말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는다.


이 날이 특별한 이유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으면서 변화를 가정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아직 보여줄 결과는 없는데 이미 다른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

어쩌면 계절은 희망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자세로 이 시간을 통과할 것인지를 조용히 묻는다.

얼마나 기대하느냐보다 어떻게 서 있느냐가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입춘은 시작을 흉내 내지 않는다.
다만 시작이 가능해지는 상태를 우리에게 남겨둔다.

봄은 문 앞까지 와 있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이제 문을 여는 쪽을 선택해도 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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