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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Feb 16. 2022

'앞바퀴까지만' 내 자동차와 초보운전

초보운전에 대한 단상 

2019. 1. 16.에 작성한 글(일부 수정) 


                                                                                                                                                                                                                                                       



7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각.

아직 아침을 맞지 않은 주차장 가운데 제 차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아요.

차 맨 뒤에 초보운전, 색이 바랜 초보운전 스티커가 붙여진 차, 그 차가 제 차입니다. 


해가 뜨기 전에 얼른 시동을 켜서 출근길에 오릅니다.

운전을 시작한 지는, 정직원이 되자마자이니까, 이제 1년 조금 더 되었어요. 

온전히 출퇴근용 차이기에 이제 겨우 10,000km를 살짝 넘었습니다. 


대학교 때는 장학금으로 어찌저찌 학자금 대출은 피했는데, 도저히 자차는 빚을 내지 않고선 살 수가 없겠더라구요. 

매달 나가는 대출 금액을 보는 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저번에 언니가 나한테 그랬죠, "앞바퀴까지만 네 차"라구요.

음, 이제는 뒷시트 정도는 제 차가 된 것 같습니다. 

아직은 내 것이 아닌 ㄱ은행의 것인 내 차를 타고 여전히 불안하고 낯선 운전으로 출근길에 오릅니다. 



뒤에 붙여진 초보운전이 꼭 회사에서의 제 위치와 똑 닮았습니다. 

뭘 해도 어설프죠.

속도를 내는 게 무서워 천천히 달리면 꼭 뒤에서 빵빵 울리는 소리가 함께 따라옵니다.

그러면 저는 기죽은 채로 가속 페달에 조금 더 힘을 줍니다.


차선을 변경하고 싶어도 초보운전, 이라는 안내서 때문인지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매너 있는 분들께서 속도를 늦추시면 얼른 들어갑니다.

물론 저도 어디선가 배운 적이 있는 비상 깜빡이 표시로 깜빡, 깜빡 감사하다는 표현을 잊지 않아요.



구강기 때 좀 문제가 있었나 봐요.

카페인 수혈은 둘째치고 입에 빨대가 있어야 마음이 안정되고 업무가 손에 잡히는 편입니다.

출근길에 카페라도 잠깐 들리려면 평행주차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전 요즘 주차 잘하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요, 2019 버킷리스트에 "주차 잘하기"를 추가했습니다. 



때론 궁금하기도 해요.

다들 어쩜 그렇게 능숙하게 운전하시는지. 

저처럼 초보운전을 달고 다니시던 때도 있었을까요? 

핸들링이 미숙한 저는 동기가 알려준 정석 방법은 11시 2시 방향으로 핸들을 꼭 잡으면서 생각해봅니다.


언니랑 같이 제 차 타고 퇴근할 때가 종종 있죠.

그러면 언니가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매고 깔깔거리며 저보고 꼭 도망치는 것처럼 나간다구 말하지요.

회사에서 조금이나마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저도 이제 직장인 다 되었다는 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에서 가장 긴장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굉장히 차선이 많은 도로로 우회전해서 들어가는 구간인데요, 

신호 없이도 가능한 우회전을 할 땐 왼쪽에서 오는 차들을 잘 보고 핸들을 돌려야 합니다.

타이밍도 중요하고 눈치싸움도 중요할뿐더러 일찍 어둑해진 밤의 공기 속에서 동태를 살피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울고 싶었어요.

맨 끝 차선에서 한 칸씩 이동해서 1번째 차선으로 가야 좌회전해서 우리집에 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차선을 못 바꾸면 쭉 직진해서 다른 도시로 넘어가니까, 집에 못 가면 어떡하지 오만가지 상상도 했습니다.



여전히 어려운 주차를 마치고 초보운전 스티커를 잠깐 바라봅니다. 

이제는 떼볼까 생각도 했지만, 미숙한 나 자신을 조금이나마 방어해줄 수 있는 방패 같아서 아직도 붙여놓았습니다. 


초보운전 빛이 바랜 만큼, 제 빚도 바래지고 있는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그만큼 내일은 더 익숙한 솜씨로 핸들을 돌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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