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로 나라고 외치는 용기

<위대한 쇼맨>의 'This Is Me'

by 옫아

뮤지컬 <위대한 쇼맨>의 심장을 울리는 넘버 'This Is Me'와 팝의 여제 레이디 가가의 아이코닉한 찬가 'Born This Way'. 이 두 곡은 모두 "나는 나다!"라는 자존감의 정점을 노래하지만, 가사 속 핵심 단어인 'This(이것/이 모습)'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흥미로운 온도 차가 존재합니다. 마치 거친 폭풍우를 뚫고 깃발을 꽂는 전사의 외침과, 화려한 조명 아래 런웨이를 걷는 슈퍼스타의 선언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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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전사의 숭고한 선언 : <위대한 쇼맨>의 'This'


먼저 <위대한 쇼맨>의 레티가 부르는 'This Is Me' 속의 'This'를 살펴보겠습니다.

위대한 쇼맨 (The Greatest Showman) OST - This Is Me 가사 번역 뮤직비디오

여기서의 'This'는 철저히 '상처와 극복'의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곡의 도입부에서 "어둠 속에 숨으라"는 차가운 명령에 고개 숙였던 이들이 마침내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오며 이 단어를 뱉어낼 때, 그 무게감은 상당합니다.

이때 그들이 가리키는 'This'는 남들이 손가락질하던 남다른 외모, 숨기고 싶던 흉터, 그리고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나의 모든 결핍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부끄러워하는 대신 "나는 날카로운 말들에 베였지만, 그 상처가 바로 나(This)를 만든 훈장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의 'This'는 투박하고 묵직한 투쟁의 기록입니다. 사회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깨지고 다듬어진 끝에 당당히 드러낸 '현재의 내 모습' 그 자체를 긍정하는 숭고한 승리인 셈입니다.





태초부터 완벽한 걸작의 당당함 : 레이디 가가의 'This'


반면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로 넘어오면 'This'의 성격은 180도 전환됩니다. Lady Gaga - Born This Way (Live from The GRAMMYs on CBS)가가의 철학 안에서 'This'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태초부터 완벽하게 설계된 '신의 걸작'을 의미합니다. "신은 실수하지 않아(God makes no mistakes)"라는 가사처럼, 그녀가 정의하는 'This'는 후천적인 노력이 필요 없는,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절대적이고 고유한 DNA입니다.


가가는 우리에게 네가 누구든, 어떤 정체성을 가졌든 그 모습 그대로(This way) 태어난 것이니 의심할 여지 없이 당당해지라고 주문합니다. <위대한 쇼맨>이 어두운 골목을 지나 광장으로 나아가는 비장한 '행진'이라면, 'Born This Way'는 "우리는 모두 슈퍼스타로 태어났다"는 전제 아래 벌어지는 자유롭고 힙한 '해방의 파티'에 가깝습니다. 여기서의 'This'는 어떤 외부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유쾌하고도 파괴적인 자존감의 원천입니다.





변주되는 'This'의 미학 : 상처의 훈장인가, 신의 선물인가


결국 두 곡은 '나'라는 실체를 증명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경로를 보여줍니다.

<위대한 쇼맨>이 세상의 난도질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남은 '생존자로서의 나'를 대변한다면, 레이디 가가는 세상이 틀렸을 뿐 나는 처음부터 옳았다는 '선구자로서의 나'를 찬양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곡 모두 '나(This)'를 온전히 긍정하는 순간,

나를 괴롭히던 주변의 소음들이 더 이상 소음이 아닌 보잘것없는 배경음악으로 전락한다는 것입니다. 레티가 발을 구르며 무대를 압도할 때나, 가가가 비트 위에서 당당히 윙크를 날릴 때, 그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This'는 더 이상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가장 견고하고도 화려한 성벽이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이 두 가지 'This'는 늘 공존하며 번갈아 나타납니다.

어떤 날은 세상의 차가운 편견과 맞서 싸워 얻어낸 나의 상처 가득한 모습이 눈물겹게 대견해 'This Is Me'를 목놓아 부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 온 마디마디가 비로소 진정한 나라고 느끼는 순간이죠. 반면, 또 어떤 날은 남들과 조금 다른 나의 독특함이 고칠 점이 아니라 신이 내게 준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져, 'Born This Way'의 비트에 몸을 맡긴 채 세상의 시선을 비웃으며 춤추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어떤 곡을 선택하든, 그리고 당신이 마주한 오늘의 '나'가 투쟁 중인 전사이든 즐기는 스타이든 상관없습니다. 그 모든 순간의 중심에 있는 'This'가 당신이라는 광활한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으니까요.


때로는 깨지고 금이 간 모습 그대로, 때로는 처음부터 완벽했던 존재로서,

당신만의 'This'를 세상 앞에 당당히 꺼내 놓으세요.

노래가 끝날 때쯤 당신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를 증명할 가장 완벽한 단어는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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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래도 역시 한국인의 'This'는 이 곡이죠?

혹시 'This'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국민 넘버가 있지 않나요? 맞습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입니다!

앞서 본 두 곡이 '나의 존재(Who I am)'에 대한 'This'를 노래했다면, 지킬 박사는 '시간과 선택'에 대한 'This'를 선언합니다. 그에게 이 순간(This moment)은 과거의 망설임을 끝내고 운명을 향해 투신하는 단 하나의 찰나를 의미하죠.

레티처럼 상처를 딛고 일어서든, 가가처럼 본능을 긍정하며 춤추든,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킬처럼 "바로 지금(This is it!)"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용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러니 오늘 당신의 'This'가 무엇이든, 주저 말고 외쳐보세요.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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