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겟세마네'
삶의 무게가 유독 버거운 밤이면, 우리는 낮은 곳으로 침잠한다.
시선은 발끝에 머물고 어깨는 굽어지며, 마침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터져 나올 때 인간은 비로소 '울어(Cry)'라는 가장 원초적인 언어를 뱉어낸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넘버 '겟세마네'는 바로 그 처절한 바닥의 정서에서 시작된다.
박은태 MV - 겟세마네 Gethsemane(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무대 위, 고독하게 남겨진 지저스는 신의 아들이기 이전에 고통을 두려워하는 한 사람으로서 울부짖는다.
"왜 내가 죽어야 하나요?",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며 쏟아내는 그의 외침은 정제된 기도가 아니라 피 맺힌 절규다. 바닥을 구르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내뱉는 그 날것의 소리는, 우리가 예기치 못한 시련이나 상처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때 쏟아내는 눈물과 닮아 있다. 이 단계에서의 '울음'은 철저히 개인적이며 고통에 매몰된 상태다.
하지만 이 넘버의 진정한 마법은 그 울음이 바닥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처절하게 울며 자신의 모든 밑바닥을 쏟아낸 지저스는, 곡의 절정에서 서서히 고개를 든다.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하늘을 향해 시선을 던지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울어'라는 행위는 비로소 '우러러(Look up/Revere)'보는 숭고한 행위로 전이된다.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를 들어 허공이 아닌 '그 너머'를 바라보는 것.
그것은 나를 짓누르던 고통의 이유를 묻던 시선이, 나보다 더 큰 존재의 섭리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나의 뜻대로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고백은,
자신의 운명을 단순한 비극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자 소명으로 우러러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때로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실이나 실패 앞에서 짐승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시야가 잠시 맑아질 즈음, 우리는 깨닫는다.
고개를 숙이고 처절하게 울던 그 시간조차
사실은 더 깊은 이해와 수용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화의 과정이었음을.
펑펑 울며 내 안의 작은 고집과 두려움을 다 쏟아내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나를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삶의 신비를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우러러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흘린 눈물이 당신의 고개를 아래로만 향하게 할지라도 너무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깊은 울음의 끝에는 반드시 당신이 고개를 들어 우러러보아야 할 찬란한 하늘과, 그
하늘이 예비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