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미제라블>의 I Dreamed a Dream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판틴이 부르는 'I Dreamed a Dream'을 들으며 우리는 흔히 무너진 삶과 가혹한 운명을 동정한다. 하지만 이 노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판틴이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대상은 떠나간 연인도, 부서진 희망도 아니다.
Les Misérables | I Dreamed a Dream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세상이 선의에 응답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던 과거의 자기 자신이다.
이 노래에는 기이할 정도로 타인을 향한 직접적인 원망이나 분노가 없다. 대신 그녀는 담담하게, 그러나 처절하게 증언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사랑은 결코 죽지 않으리라 믿었고, 신은 자비로울 것이라 꿈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고.
이 고백은 변명도, 자기연민도 아니다. 그저 모든 문장을 '과거형'으로밖에 말할 수 없게 된 한 인간의 뼈아픈 기록이다. 그래서 "나는 꿈꿨었다(I dreamed a dream)"라는 첫 문장은 슬픔의 시작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확정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결코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서글픈 선언인 셈이다.
판틴은 단 한 번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세상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가졌던 믿음의 목록을 하나씩 읊어본다. 사랑은 영원할 줄 알았고, 밤이 오면 당연히 별이 뜰 줄 알았으며, 내가 성실하면 세상도 나를 해치지 않을 줄 알았다고.
여기서 우리를 아프게 하는 지점은 '믿음이 배신당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순수한 영혼의 내가 이미 지나가 버렸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녀에게 그 시절의 믿음은 다시 도달할 수 없는 타인의 기억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이 노래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은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아니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헛된 희망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결코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저 받아들이는 체념에 가깝다.
결국 'I Dreamed a Dream'은 무너진 꿈에 대한 노래인 동시에, 꿈을 꾸던 시절의 자신을 마지막으로 한 번 정확하게 불러보는 작별 인사다.
그래서일까. 이 노래의 끝에는 늘 긴 여운이 남는다. 우리 역시 살아가며 언젠가는 사랑보다 먼저, 세상보다 먼저, '무구했던 자기 자신'을 분실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 상실을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판틴의 이 노래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꿈은 깨지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을 꾸던 내가 사라짐으로써 완성되는 비극이라는 것을.
사실 우리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덧 거울 속에서 낯선 얼굴을 마주할 때, 혹은 세상의 풍파에 깎여 나간 자신의 모서리를 발견할 때, 우리 역시 판틴처럼 속절없이 주저앉아 나직이 읊조리게 된다. 한때는 나도 사소한 호의에 온 마음을 다해 감동했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거라 의심 없이 믿었노라고. 그 시절의 나는 이제 '과거형'이라는 서랍 속에 가지런히 격리되었지만, 이 노래는 그 상실의 시간을 가만히 쓰다듬어 준다. 비록 그때의 나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지라도, 한때 그런 빛나는 믿음을 가졌던 내가 존재했음을 증명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 비장한 넘버는 우리에게 기묘한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