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기쁨을 지속하는 일상에 대하여
브런치 첫 번째 게시글로 무얼 쓸까,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가장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에 대해 적어내려가면 되니까.
최근 꽃다발을 애인과 직장 동료들로부터 선물 받았다.
애인에게 받은 꽃다발은 '올해 첫 꽃다발'이라는 이름으로,
직장 동료들에게 받은 꽃다발은 '석사 학위 졸업 논문 제출 축하'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겠지.
사실 꽃다발을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소소한 특별함이 되고 존재 자체만으로 아름다우니 좋은 선물이라는 점에서, 꽃다발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애인에게 받는 꽃다발은 로맨틱하고, 친구에게 받는 꽃다발은 고맙다.
나 역시도 주변 지인들에게 꽃다발을 종종 선물하는 편인데,
꽃다발을 선물하기 위해서 여러 꽃가게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꽃다발을 싫어하는 반대론자들의 주된 주장은 꽃다발은 일회성이라는 점이다.
값어치를 논하기에 조금 애매한 영역에 속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생각될 수 있으니까.
어쩌면 그 순간의 찰나성으로 영원이 되는 법이니, 진정한 '일회성'이라 봐도 무방하다.
어떤 일회성은 어떤 일상의 되기도 한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이번 꽃다발은 엄마의 손에 넘기지 않았다.
엄마는 식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보살핌으로 내가 받아온 꽃다발에 마침표를 천천히 찍는 데에 소질이 있으신 편이다.
그러나 새로운 해가 주는 일종의 다짐 같은 걸까.
꽃다발을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애인에게 받은 꽃다발이다.
리시안셔스와 퐁퐁이 류의 연보라 색감의 꽃다발이었다.
사실 나는 꽃이름을 잘 알지 못하고, 꽃다발 주문 시에도 색감으로 표현하여 관련 설명이 부족하다.
그 와중에 리시안셔스가 갖는 꽃말이 특별하기에 애인에게는 관련한 꽃으로 받고 싶다 이야기했었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도 꽃값은 여전히 금값이다.
혹은 관련한 변동으로 여전히 힘든 상황이라고 알고 있다.
"꽃을 비싸게 팔아야 하니 마음 아파요"···1월 꽃값 2~3배 폭등 '아우성' - 경향신문 (khan.co.kr)
폭등했던 꽃값 소비 위축에 폭락…‘널뛰는 가격’에 화훼농가 울상 (kbs.co.kr)
꽃다발을 준비하시는 사장님 입장에서도 풍성하게 준비하기 어려우셨으리라 예상된다.
평소에 해당 가격이면 더 풍성했을 것 같은 꽃다발이 다소 미니미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건 연초록 위에 살포시 앉은 연보라 색감.
은방울꽃 같기도 한데, 정확한 명칭은 캄파눌라.
꽃봉오리 여러 개가 매력적인 꽃다발이었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내 꽃다발 전용 꽃병에 시원한 물과 함께 설탕을 넣고 꽃을 넣어 두었다.
1. 물을 매일 교체해 준다.
2. 설탕물이나 사이다를 넣어준다.
3. 얼음도 꽃을 싱싱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꽃봉오리들이 꽃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망울만 맺혔던 꽃들이 하나씩 피어난 것이다.
위의 꽃다발과 비교해 본다면, 매우 다른 모습이라 감히 확신할 수 있다.
내가 한 거라고는 고작 물 갈아주고 설탕을 휘휘 넣어서 주고 얼음을 퐁당퐁당 아래로 던진 것뿐인데,
새로운 식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신기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회성의 꽃다발이 내 일상에서 매우 흥미로운 지점으로 왔다는 점에서 기뻤다.
선물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순간의 기쁨을 지속할 수 있다니.
별거 아닌 내 작은 루틴과 꽃다발이 만난 신선한 조합이라 칭할 수 있겠다.
졸업논문을 회사 점심시간을 통해 제출하고 온 다음 날.
같이 일하는 팀의 동료 언니들이 수줍게 무언갈 내밀었다.
졸업논문 제출을 축하한다며, 스타벅스 리유저블 컵과 꽃다발을 선물해 주었다.
축하의 또다른 별명은 바로 꽃다발이겠지.
감동과 감사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물병을 찾으러 다녔다.
이미 꽃다발을 근사하게 살린 경험이 있으니, 이번 친구도 오래 간직해 주리라는 다소 비장한 마음.
출근해서 물을 갈아주고, 부장님들이 커피에 타 먹는 설탕 스틱을 꽃다발에게 줄 때의 평온한 경쾌함이란!
햇빛의 각도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색감들.
또 한번 기대를 걸고야 마는 꽃봉오리의 귀여움.
선물의 기쁨을 느낀 찰나의 순간을 내 일상으로 끌어당기는 방법은 꽤 쉬웠다.
아주 작은 정성으로 보살피는 것.
그리고 이를 계속하는 것. 그거면 꽃다발은 지속가능한 기쁨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꽃다발이 언젠간 안녕을 고할 것이다.
이제 그만 놓아주라며, 시들해진 꽃잎으로 작별을 이야기할 때가 찾아 오겠지.
그 시점이 다가온다면 나는 꽃다발로 인해 행복했던 만남의 순간, 지속의 나날들을 기억하며 기꺼이 보내줄 준비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꽃다발로 인해 내가 보살핌을 받았던 일상"으로 충분히 오래 남아있으리라 믿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