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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Jul 06. 2022

뮤지컬 <김종욱 찾기>, 그리고 내 운명 찾기 (1)

파랑새를 찾고 있나요? 

* 해당 글은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 대한 어마어마한 스포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 00(인생 영화, 인생 드라마 등)'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한 인생 00은 내 삶의 단면을 담아 내기도 하고, 내 삶을 관통하고 큰 여운을 남겨 그 작품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눠지는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주기도 한다. 혹은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지점이 무엇인지, 어느 부분을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지, 때론 당신이 무얼 기다리고 있는지 짚어준다. 그런 작품들을 다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겠지. 그렇다면 내 인생 00은 무엇인가. 아마 내가 답하기도 전에, 나의 지난 20대 초반을 함께한 이들이라면 먼저 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바로 뮤지컬 <김종욱 찾기>라고.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당시 혜화역 근처에 있는 소극장에서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열리곤 했던 뮤지컬로, 나는 스무 살 여름에만 총 13번 정도 해당 작품을 관람했다. 당시 이러한 소식이 해당 뮤지컬 홍보대행사에도 전해져, 포스터와 프로그램북을 무료로 받고 홍보 담당자와 별도의 시간도 함께했던 건 그 당시 내 열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다. 일명 덕업일치. 학부시절에 내가 쓰는 리포트의 주제는 대부분 <김종욱 찾기>에 관한 것이었고 관련 과목 성적들도 언제나 A+를 받았다. 이를 흥미롭게 여긴 홍보 대행사 측에서도 '뮤지컬 보고 A+ 받자'라는 대학생 할인을 만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중국 북경에서도 무대를 올린 <김종욱 찾기>의 중국 배우들의 사인이 담긴 프로그램북도 선물 받을 정도로 나는 그야말로 그 작품에 흠뻑 빠져있었다. 단순 암기에도 강한 나는 작품의 대사 정도쯤이야 쉽게 외웠고, 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래, 그러니까 넘버들도 줄줄이 꿰고 있었으며 귀에 딱지가 얹힐 때까지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이 뮤지컬에 그야말로 미쳐있다는 것은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교양에서 만나 친해진 강사이자 같은 학교 선배였던 교수님께선 이렇게 물어보셨다. 

우리 00(내 이름), 꽤 대단한 첫사랑을 했나봐. 아직도 잊지 못한 첫사랑이 있는 것 같은데, 맞니?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는 '첫사랑 주식회사'라는 첫사랑을 찾아주는 남자와 7년 전에 만난 첫사랑을 잊지 못해 매번 선에서 도망치는 여자가 여자의 첫사랑인 '김종욱'을 찾는 게 주된 서사이다. '김종욱'은 여자가 인도에서 만난 운명적인 사랑으로, 둘은 안타깝게도 다시 만나지 못해, 남자와 여자가 직접 김종욱을 찾으러 산 넘고 바다 넘어 함께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호감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지만, 둘은 '첫사랑 찾기'라는 목적에서 만난 사업적인 관계이며 7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첫사랑이 있다는 점에서 남자는 더이상 용기 내지 못하고 마음 아파할 뿐이다. 하지만 이때 굉장한 반전이 등장한다. 인도에서 헤어졌을 당시, 여자는 '김종욱'의 주민등록증을 김종욱으로부터 직접 받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었다. 오히려 7년 전 메일도 받지 않고 전화를 끊은 것은 김종욱이 아니라 바로 여자였던 것이다. 대체 여자는 왜 그랬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의 이유에 대해 다그치는 남자와 여자의 아버지. 그제서야 여자는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변하는 게 너무도 무서웠다고. 그저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김종욱을 좋아했고, 그 사람을 절대적인 운명이자 사랑으로 믿었는데 언젠간 마음이 식는 걸 지켜보는 것이 너무도 슬프다고. 다가올 그 순간에 다치기도, 상처받기도 싫었다고. 그렇게 뮤지컬 무대 위의 시간은 7년 전 인도에서 여자와 김종욱의 마지막 작별로 돌아간다. 여자가 김종욱과 헤어지고 기차에 탔을 때 부르는 노래는 '나라의 결심(당시 여자 역할이 오나라 배우님이었기에, 나라의 결심으로 알려져 있다)'이다. 


"꿈에 그리던 작별 멈추고 싶은 머물고 싶은 바로 이 순간 첫사랑. 마지막 당신 모습 너무나 아쉬워. 하지만 현실도 이와 같을까? 열정은 식고 욕심만 깊어지겠지. 익숙한 서로가 지겨워질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서로를 달래고, 스스로를 속이며 변해가는 세월을 탓하겠지."


결국, 그 끝은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자는 닳아빠진 자신과 그와의 관계만 원망하면서 상처만 남기고 돌아설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서 여자는 자신의 운명이자 사랑이라고 믿었던 김종욱으로부터 도망친다. 좋은 추억만 간직하길 바라면서. 실제로 뮤지컬 <김종욱 찾기>의 작가 장유정이 메가폰을 잡고 만든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끝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 성격으로 제시된다. 좋아하는 책의 마지막 장을 읽지 않거나, 마지막 남은 호두과자는 먹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뮤지컬은 과연 어떻게 끝났을까. 끝내 김종욱과 재회한 여자. 이를 기다리는 남자. 김종욱을 만나고 온 여자에게 남자는 어땠느냐고 조심스럽게 묻고, 여자는 이에 꽤 시큰둥하게 이야기한다. 그냥 뭐 그렇다고. 인생 뭐 있냐고.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절실한 단순함은요, 한 번에 한 군데씩만 아파하는 거예요. 난 아직 생기지도 않은 병을 만들어서 아파했어요, 그것도 아주 다양한 병을."


어떤 지점으로 인해 오랜 시간 첫사랑을 가슴에 묻어두었는지 솔직하게 고백하는 여자. 그때의 그 개운한 표정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여자의 풀어진 운동화끈을 묶어주는 남자의 모습과 그들이 부르는 사랑의 노래로 인해 해당 작품의 결말은 둘의 해피엔딩임을 암시하면서 끝난다. 그래, 끝나긴 하는데 다시 뮤지컬의 무대는 7년 전으로 돌아간다. 사실 이 둘은 '첫사랑 주식회사'로 처음 만난 게 아니다. 그 전에 남자가 헤어진 자신의 여자친구를 잡기 위해 택시를 탔을 때도 둘은 만났었고, 7년 전 오사카 공항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일본에서 있던 남자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누나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지만 비행기를 놓치고. 지금 출발하는 비행기로 갈아타고 싶다고, 꼭 해야 할 말이 있다고 스튜어디스에게 다급하게 이야기하지만, 스튜어디스로부터 그것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일이라고 거절당한다. 그런데 1분 후에 인도에서 도착하는 비행기가 있는데, 그때 승객 중 한 명이라도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좌석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그때 등장하는 여자. 그녀는 김종욱과의 만남에서 도망치기 위해 티켓을 바꾸고자 한다. 그녀의 티켓을 산 남자. 남자는 그녀에게 묻는다, 왜 바로 서울로 가지 않냐고. 이에 여자는 운명은 운명으로 남겨둘 것이라는 말만 남긴다. 그렇게 인연 아닌 인연으로 만난 두 남녀는 이게 각자의 길로 나누어져 걷는데, 둘은 잠시 뒤를 돌아보고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갈 길을 가고.


당시 나는 <김종욱 찾기>를 1908년에 창작된 <파랑새>와 비슷한 지점이 많다고 여겼었다. <파랑새>는 벨기에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1911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리스 메텔링크가 쓴 작품으로, 꽤 상징적인 수법을 구사하며 전 세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파랑새>는 파랑새를 잃어버린 줄 알았지만 언제나 파랑새는 쭉 곁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파랑새는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이때 파랑새는 흔히 행복으로 묘사되는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다. 그러니까 <김종욱 찾기>에서 운명인 '김종욱'을 찾기 위해 만났던 남자가 진정 자신의 운명이었던 것처럼 두 작품 모두 행복과 운명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바로 가까이 자신의 옆에 있음을 노래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찾고자 <김종욱 찾기>를 사랑했는데. 그런 줄 알았는데. 최근 새롭게 알게 된 점이 또 하나 있다. 






* 분량 조절 실패로 다음 글로 찾아옵니다. 사실 찐 이야기는 그 다음 편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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