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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Jul 07. 2022

뮤지컬 <김종욱 찾기>, 그리고 내 운명 찾기 (2)

자기 힘으로 닫지 못하는 문을 닫아줄 사람(이병률, 사람이 온다) 

* 해당 글은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 대한 어마어마한 스포를 갖고 있습니다. 

** 뮤지컬 <김종욱 찾기>, 그리고 내 운명 찾기 (1) (brunch.co.kr) 에 이어서 쓰는 글 



앞선 글을 통해 나는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 미쳐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동화책 <파랑새>에서 찾아 지금 여기의 행복,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함을 배웠기 때문이라 밝혔다. 그런데 정말 그게 전부였을까? 


요즘 나는 내 남자친구와의 새로운 내일을 천천히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연애와 결혼은 천지차이라던데, 나는 정말 이 연애의 종료를 누르고 새로운 영역의 세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자꾸 물어보게 된다. 이미 만 4년 간의 연애를 통해 내가 20대 때에 접한 뮤지컬 무대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은 꽤 다른 결임을 알았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은유적인 표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그 눈빛을 보는 행위 자체에 어려 있는 애정에 더 주목해야 함을 배워갔다. 그러다 문득 이 남자와의 시작이 어땠지,를 반추해 보며 오랜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소환하게 되었다. <김종욱 찾기>의 김종욱처럼 지금 내 남자친구가 내 첫사랑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는 <김종욱 찾기> 속 내가 좋아했던 서사인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와 비슷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 속 여자가 가장 행복했던 기억, 첫사랑과의 달콤한 순간을 더 지속시키지 않으며(중요한 건 않은,이다. 못한이 아니라. 그만큼 여자의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늘 겁내고 피해왔던 이유는, 결국 상처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김종욱'은 비단 첫사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버진로드를 걸었을 수도 있다. 다만 여자는 김종욱에 대한 떨림이나 사랑보다는 언젠간 상처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미래에 대해 자꾸만 겁먹고 도망치게 되는 본인의 성향이 김종욱과의 이별에 있어 더 큰 영향력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7년이 지나고 나서 다시 그 기억을 마주해야 했을 때, 여자는 혼자가 아니다. 공적인 목적이긴 하나, 함께 그 기억을 맞이해줄 수 있는 남자가 곁에 있다. 그 남자는 여자와 꽤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다름으로 인해 사사건건 부딪혀도, 자신이 갖지 못한 여자의 어떠한 면이 퍽 이질적이거나 별개의 것으로 느끼는 대신 오히려 호감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남자는 여자가 열지 못했던 과거의 시간을 열어 여자로 하여금 그때의 자신과 직접 마주하도록 이끈다. 꽤 좋은 전개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여자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음에 있어, 자꾸 부정적인 상황과 결말을 미리 예측해 겁 먹는 성향이 있어, 정말 누군가와 제대로 된 관계를 시작하고 싶다면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두려움을 감히 극복해야 한다. 내가 미처 닫지 못하는 어느 지점이 숙원 사업이라 할 때 이를 해결함에 있어 혼자라면 어렵겠지만, 함께라면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이를 해냈다. 


그래,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김종욱 찾기>를 좋아했다. 마치 구원 서사 같아서. 내가 평상시에도 많이 좋아하는 <미녀와 야수>와 같이 사람에겐 저마다의 상처와 여린 부분이 있는데, 이를 기꺼이 함께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과의 사랑을 꿈꿔왔던 것이다. 이때, 생각나는 시 하나. 그 전에 나는 <김종욱 찾기>에서 <파랑새>를 보았다면, 이번에는 <김종욱 찾기>에서 이병률 시인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에 수록된 '사람이 온다'는 시를 보게 된 것이다. 




바람이 커튼을 밀어서 커튼이 집 안쪽을 차지할 때나 

많은 비를 맞은 버드나무가 늘어져

길 한 가운데로 쏠리듯 들어와 잇을 때

사람이 잇다고 느끼면서 잠시 놀라는 건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중간 생략)


팔목에 실을 묶는 사람들은 

팔목에 중요한 운명의 길목이 

지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다


인생이라는 잎들을 매단 큰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보는 이 저녁

내 손에 굵은 실을 매어줄 사람 하나

저 나무 뒤에서 오고 있다


실이 끊어질 듯 손목이 끊어질 듯

단단히 실을 묶어줄 사람 위해

이 저녁을 퍼다가 밥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 닫지 못하는 문이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굉장히 좋아한다. 희망에 젖기도 하고, 기대에 부풀어지는 구절. 실제로 지금 남자친구와 소개팅 당시 시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들은 너와 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남자라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만나라고 했었다) 해당 구절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김종욱 찾기>의 여자가 남자로 인해 '자기 힘으로 닫지 못하는 문'을 마주하고 이내 과거를 극복하고 건강한 관계를 다시 써내려가듯, 내게도 어느 시절에 머물고 있는 내 어린 마음을 보듬안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길, 그리고 그 사람의 어떤 지점으로 인해 내가 용기 내 그 마음을 내가 먼저 봐줄 수 있길 꿈꿔왔다고, 이제야 솔직히 고백할 수 있겠다. 그럼, 나에게 남자친구는 그런 사람일까? 


기존에 남자친구에 대한 글은 몇 번 쓴 적이 있다. 


세상을 멈추고 시간을 느리게 가게 만드는 사람에게,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나를 알아주는 사람 (brunch.co.kr)

다른, 닮은 사람과의 연애를 지속하며 (brunch.co.kr)


이 글들을 요약해 보자면, 내 남자친구는 정신 없이 흐르던 내 세상의 호흡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내가 가진 콤플렉스에 대해 어떠한 프레임도 씌우지 않은 채로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 그리고 나랑 정말 많이 다르지만 그 다름에서 오는 간극을 함께 채울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드는 사람이다. 나를 변화시키는 남자친구로 인해 나는 매 순간마다 기꺼이 용기낼 수 있었다. 또 혼자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어 실패를 해도 오래 주저 앉아서 우는 사람이 되지 않았지. 남자친구의 좋은 모습들을 지켜보며 나는 남자친구의 가장 큰 매력을 '노력'에 있음을 느꼈다, 물론 우리 관계에 한해서. 


본래 타고나기를 똑똑하고 꼼꼼한 성향을 지닌 남자친구가 지금의 자기 자신을 만들기 위해 행해왔던 노력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 관계에서 그가 보여준 노력을 논하고 싶다. 나는 이미 이를 많이 목격한 사람. 어느 노래 가사에선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라고 하지만, 지난 경험들을 돌아보았을 때 사랑을 지키기 위해선 노력과 의지가 절대적임을 느꼈다. 적어도 내가 느낀 사랑은 붕 떠 있고 말랑한 추상의 감정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그리하여 끊임없이 노력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에 가닿으려고 하는 행위였다. 어차피 사람은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기에 본질적인 다름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방해물을 극복해야 하고, 이때 '노력으로 인한 변화'가 가진 남다른 가치를 확인해 왔다. 


나와 똑닮은 사람과 매일 밤낮으로 함께하고 싶어 나는 결혼을 하는 게 아니다. 많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애정으로 다름으로부터 오는 이질감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극복했던 우리. 그렇게 조금씩 서로에게 가닿는 과정에서 오는 기쁨과 그 성취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앞으로 함께할 나날들이 기대가 되어 결혼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지난 상처들과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또 무엇보다도 앞으로 받을 상처들에 있어서도 크게 겁먹지 않으리라 조금은 확신해본다. 그러니까, 함께할 때 비로소 내가 더 나에 닿을 수 있을 것 같고, 당신도 그럴 것 같아서. 혼자의 힘보다 함께의 힘으로 마주할 세상이 더 기대가 되기 시작했으니까. 



출렁이는 두려움을 한순간 잠들게 해주는 사람. 

내가 가진 좋은 것을 세상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해주고 

나로 하여금 기꺼이 용기내서 더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가게 해주는 사람. 

때로는 입과 귀가 되어주고 때로는 세상을 만나는 통로가 되고 문이 되어주는 사람.


- 정현주,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中 -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서 여자는 김종욱을 찾음으로서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달콤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 어쩌면 결혼이라고 불리는 것이 내 인생의 운명을 찾는 사전 과제로부터 시작된다면, 나는 제출을 완료했다. 물론 사전 과제의 검토 혹은 승인 따위는 없고, 앞으로 만들어 가는 나날들이 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니겠지. 여전히 서로의 다름 앞에,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좌절감 앞에, 내 마음 하나 몰라준다는 서운함 앞에 잠시 째려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맞잡은 손은 놓지 말고 오래오래 천천히 많은 풍경들을 감상하고 만끽하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쉼없이 늘어놓으며 걸어가고 싶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결혼이자, 내가 만들어갈 작품의 주요 서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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