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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Jul 03. 2022

최은영의 <밝은 밤>, 나의 밝은 밤들을 기억하며

그 밝은 밤을 함께 만들어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어 


1. 이제야 알 것 같다. 일명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내 삶의 화두를 얼마만큼 정확하게 표현하고 담아내는지, 그 여부와 강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 거라고. 그리하여 내 취향의 작가님이야!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님들이 몇 분 계시다. 나를 같은 학교 같은 전공으로 이끈 <달의 바다>의 저자이자 최근 <친밀한 이방인>으로 재주목을 받고 계셔서 기쁜 정한아 작가님. <옥상에서 만나요>로 입덕을 시작해 <피프티피플>로 완전히 내 취향 저격 작가님으로 자리매김하신 정세랑 작가님. 2022년 최고의 발견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방금 떠나온 세계>를 집필하신 김초엽 작가님을 만나게 된 건 아닐까? 이렇게 소개한 작가님들도 정말 좋지만 내 마음, 나의 가장 여린 부분을 제일 적확하게 짚어내는 한 작가님이 계시다. 바로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저릿한 마음을 느끼게 해준 최은영 작가님. 


2. <쇼코의 미소>를 처음 읽었을 땐 이렇게 표현을 잘하는 작가는 처음이야!라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이어서 읽은 <내게 무해한 사람>은 그야말로 아리고 시린 마음을 제일 잘 알아주는 작가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최은영 작가님만의 작품 세계는 개인적으로 내게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여운을 남겨, 자꾸 어딘가에 매몰되고 그리하여 어느 한 시절에 멈추게 되는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 있다. 때문에 한동안 찾지 않고 마음의 여유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은 세계, 그 정도로 남겨두다가 최근 <애쓰지 않아도>로 다시 입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장바구니에만 넣어두었던 <밝은 밤>을 읽었다. 


3. <밝은 밤>과 <시선으로부터>는 꽤 비슷한 시기에 나왔고, 둘 다 모계서사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공유하고 있다. 때문에 <시선으로부터>를 먼저 읽은 나는 굳이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찾아보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넘겼지만 둘은 비슷한 듯 전혀 다른 결을 소지하고 있었다. <밝은 밤>을 압축해서 설명하면, 증조할머니부터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져 오는 세대의 연결 서사를 갖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물론, 세대가 이어서 올 수 있었던 누군가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진하게 담아내는 책이 또 있을까. 


4. 최은영 작가님의 지난 작품들을 읽으며, 내가 왜 이 작가님의 세계관에 푹 빠지고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온전히 이해를 받는 건지 확실하게 깨달은 바 있다. 나의 예민한 감수성을 모나지 않게 이해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사람이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한 시절을 함께 넘겨주는 것임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한 작품을 읽고 그 작품에 자신의 일생을 투영하는 건 그리 놀랍거나 신기한 일이 아니다. 다만, 내가 <밝은 밤> 속 네 세대에 걸친 서사에 겨우 10년도 안 되는 나의 20대를 투영했다는 점은 꽤 놀라웠다. 


5. 이 전 글을 쓰며(외로웠던 시절에 그 곁에 머물러준 마음을 곱씹어 보며 (brunch.co.kr)) '힘든 시기를 애써 잘 지나올 수 있었던 데엔 누군가의 따뜻함이 곁에 있어왔기 때문'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래서 결코 힘들었던 시기가 부정적인 감정 하나로 정의되지 않았고, 그 순간들을 기꺼이 손을 잡고 함께 넘겼다고. <밝은 밤>의 가장 주된 서사는 바로 삼천과 새비의 깊은 우정이다. 서로에게 기대었고, 그래서 때론 미안하고 고마웠던.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함께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적 관계. 이 둘의 관계성은 비단 둘 사이에서만 자리하지 않고, 그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를 거쳐 가며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선한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아닐까? 


6. 삼천과 새비, 서로가 서로에게 머물러주었던 그 시기를 곱씹으면 자꾸만 눈물이 난다. 나는 그 마음이 감히 무엇인지 알겠으니까. 너무도 많은 삼천과 새비를 만나며 20대의 끝으로 왔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으며, 내 귓가에는 계속 웅얼거렸던 한 교수님의 말씀이 있다. 

"너무 방 안에만 있지 말고, 나와서 사람들을 만나. 거기서부터 네 이야기는 시작될 거야."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걸 지향하고 좋아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기숙사 방과 학교만 오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건 그냥 대학교 2학년 말부터 3학년, 4학년을 거쳐가며 그 흔한 휴학 없이 달렸던 매너리즘 때문에 그럴 거라 생각했다. 지쳤으니까. 힘드니까. 수업 듣고 공부하고 기숙사로 돌아와선 책 읽고 드라마 보고 종종 뮤지컬 보러 가며 지냈다. 그런 근황을 설명드렸을 때, 내가 많이 따랐던 한 교수님께서는 '원천강본풀이(오늘이 이야기)' 서사를 들려 주시면서 사람들을 만나, 거기서부터 모든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지쳐있다는 사람에게 다시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은 잔인한 충고라 생각했다. 네, 교수님 그럴게요.라고 말했으나 정작 나는 여전히 기숙사 방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결국 그 기숙사 방을 나오게 하는 것도 사람이었음을, 외로웠던 시절에 새로운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건 내가 맺는 관계임을 차차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밝은 밤>을 읽는 동안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 보게 되어 그 시간 속으로 회귀하게 된다. 나에게 와주었던 감사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을 만드는 건 결국 내 곁에 머물러주는 사람들과 그 관계 속에서 주고 받은 우리의 마음이었음을 생각하며, 오히려 나는 지금이 아닌 그 곳에 머물고 싶어진다. 오래 전 떠나온 고향 같은 느낌. 그런 향수마저 일으키게 하는 나의 밝은 밤'들'. 


7. 비단 <밝은 밤>뿐만 아니라 최은영 작가님의 모든 작품 세계는 사람에 대한 진실된 마음, 관계에 대한 깊은 애정, 감히 용기낼 수 없었던 지난 시간들 그 전부를 포괄하는 서정적이고 가장 인간다운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공간 속을 걸어가면, 우리들은 모두 살아 가면서 이내 한 번쯤은 만나보았던 기억과 감정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때, 유독 그 파동이 크게 울리는 나는 최은영 작가님의 작품에 속절없이 무너져, 나의 지난 시간들을, 아닌 지난 사람들을 자꾸만 불러내고 그들의 곁에 앉게 된다. 미안, 늦었지, 나 이제 왔어. 라고 그 시간들에게 겸연쩍은 웃음을 보이며 조심스럽게 옆자리에 앉아본다. 아, 20대 마지막 절반 정도에 와서야 <밝은 밤>을 읽게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 것 같다. 약 6개월도 남지 않은 나의 20대 종착역에서 나는 나의 20대를 함께 만들어주었던 이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쓸 것이다. 나의 밝은 밤'들'을 만들어 주었던. 그리하여 결코 외롭지 않은 시간들을 건너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손과 마음에 힘을 주어 쓰고 살며시 물어보기도 할 거다, 혹 당신의 밝은 밤에도 혹시 내가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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