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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Jun 14. 2022

외로웠던 시절에 그 곁에 머물러준 마음을 곱씹어 보며

사람을 일으키게 하는 누군가의 선한 힘

사람을 일으키게 하는 누군가의 선한 힘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경우를 돌아보면, 힘든 시기를 애써 잘 지나올 수 있었던 데엔 누군가의 따뜻함이 곁에 있어왔다. 2015년 서울 살이에 슬슬 지쳐가던 때엔 함께 생활하며 마음을 주고 받고 정을 붙였던 소중한 룸메이트 동생의 존재감이 있었다. 같은 해에 다소 어이 없는 이유로 장학금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땐, 편집장 언니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장학금 수여가 가능했던 든든한 이벤트도 있었고. 2016년 교생실습을 마치고 찾아온 울적한 시기에는 케이크 한 판을 손에 쥐고 기숙사 앞을 찾아온 친한 동생의 다정함이 있었다. 이렇게 혼자의 힘으로 미처 일어서지 못하고 잠시 주저 앉아 있을 땐, 그 곁을 빈틈 없이 메꾸어준 누군가들이 상시 함께해왔었다. 그래서 나는 어려운 시절을 기억할 때 마냥 외롭거나 울적하지 않았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준 존재들을 함께 떠올릴 수 있었고, 그 기억들에 대해 조금 더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곤 했으니까. 


회사 입사 후 한동안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많이 외로웠었다. 남초회사에 9명의 입사 동기들 역시 모두 남자였고, 여자 직원이 적응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던 업계였다. 어디에도 쉬이 어울리지 못하고 방황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럴 때, 군대에 가있던 친한 친구들과 편지로 연락을 이어 가며 잠시 소속감을 느끼곤 했다. 어렵게 그 한 시기를 넘어갔음에도 여전히 정직원 발령 전과 후에 마음의 가난함이 있곤 했다. 


대학 시절 때 나는 스스로 아싸를 자초한 적은 있어도, 적어도 누군가의 인정과 칭찬 속에서 배불렀던 사람이었다. 자랑 같긴 해도 스스로에게도 큰 자부심이 되었던 복수전공과 교직이수,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던 대학 성적, 끊임 없이 활동했던 대외 활동과 동아리 활동 등. 많은 인정을 주식(主食)으로 삼아 왔기에, 나를 향한 관심들은 언제나 당연한 감사함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회 생활은 대학 생활과 천지차이였다. 직장생활에 있어 칭찬은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었고, 비판은 공기와도 같이 익숙한 것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23~24살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나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은 사람들이 미웠다. 1년만 버티는 게 왜 그리 어려웠는지, 조금 더 공부해서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었나, 선택하지 않은 길을 자꾸 돌아보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던 그때. 방황하던 나를 안착시켜주신 분이 계시다. 당시 연구소에서 함께 근무했던 다른 팀의 팀장이시자 임원 분이셨는데, 편의상 L이사님이라 칭하겠다. L이사님은 내가 하는 업무인 홍보 관련에 능숙하신 분이셨고, 실제로 언론사들도 직접 컨트롤하시기도 할 만큼, 당시 팀장님에게선 배울 수 없었던 업무 능력을 곁에서 배우기에 충분한 분이셨다. 그런 L이사님께선 직접 업무를 알려주시기도 하고, 함께하며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시곤 했다. 


이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L이사님은 정말 선한 영향력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많이 작아져 있던 나를 다른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00씨는 우리 회사 보물이야.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라고 직접 말씀도 해주시고, 따로 선물을 챙겨주시면서 '00씨 부모님께는 00씨가 잘해서 회사에서 줬다고 해. 00씨가 잘해내서 받은 거라고 해.'라고 하셨다. 나의 존재감 따위는 회사에서 알 바가 아니었던 때였음에도, L이사님께서는 지속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잘하고 있다고.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던가? 적어도 한 사람의 뿌리를 내리게 해주셨다. 


마음 못 붙이던 회사에 슬슬 적응을 해갔고, L이사님께서는 젊은 직원들의 네트워크와 공부를 중시해 사내 동아리를 하나 개설해 주시면서 지속적인 응원과 지지를 보내셨다. 사내 동아리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하며, 조금씩 회사 다니는 데에 재미를 붙여갔다. 그 외에도 이사님께서 베풀어주신 마음의 양상들은 다양하다. 몇날며칠 감기를 달고 다니는 날이면, 점심시간에 한우 고기를 사주시고, 석사 졸업 전 대학원에 가라고 권유해 주신 것도 그 분이셨다. 이사님은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곁에서 다독여 주시고 언제나 응원해 주셨다. 


그 분의 기본적인 회사의 평판과는 다르게 나는 L이사님께서 구원해주셨던 그때를 종종 생각한다. 지금이야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일찍이 대리가 되어 활발하게 소통하고 활동하는 게 당연해 졌지만, 주눅 들고 작아져 진심을 담아 '회사 가기 싫어'라고 외치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한 사람이 누군가의 어둠을 거두게 했던 순간. 순수한 호의로 외로운 시절을 점차 밝게 해줬던 기적. 그 모든 건 사람이 사람을 향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했다. 


L이사님이 다른 사업을 준비하시게 되어 퇴직하던 날, 퇴임식을 잊지 못한다. 몇 몇 직원들은 눈물을 보였고, 나 역시 L이사님께서 처음으로 보도자료를 뜯어 고쳐 주시던 순간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디로 가시든지, 이사님께서 지켜주셨던 그때를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라고 말씀드렸다. 이사님의 가시는 길은 완벽했다. 사내동아리 2곳의 고문을 맡고 계셔서, 그 마음을 잘 아는 직원들은 성대하게 작별 인사를 준비했고 모두의 아쉬움 속에서 새로운 길을 향해 가셨다. 


얼마 전, L이사님의 모친상을 들었다. 일요일이 발인이셨고 나에게 토요일엔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고로 갈 수 있는 날은 금요일뿐이었다. 금요일에 대전에서 수원까지 가야 하는 건, 그것도 갑작스럽게 가야 하며 다음 날 일정을 고려하는 것은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이사님이니까 이사님의 모친상이기에,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친한 팀원과 다른 회사 분들과 금요일 오후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에서 이사님은 우릴 보고 매우 반가워하셨고, 다른 분들께서도 말씀하시길 나와 다른 팀원에게 눈을 못 떼고 너무 좋아하는 게 보였다고 하셨다. 내가 이사님을 향한 반가움만큼 이사님도 우리를 무척 반가워하셨다는 게, 서로의 마음이 통했다는 게 유독 신기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장례식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피곤한 일정에도 나는 이사님이 베풀어주셨던 따스한 영향력을 곱씹으며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사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결심하게 된다. 그만큼을 다 해낼 순 없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리는 데에 있어서 주저말고 그 곁에서 힘껏 도움을 주어야지.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사람을 일으키게 하는 누군가의 선한 힘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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