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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Aug 10. 2022

서현이의 29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나에게 사계절을 알려준 특별한 친구, 나의 서현이

다들 가장 연약하고 무방비한 상태였던 시기에 나보다 더 나를 지켜준 사람이 한 명씩 있지 않을까. 마치 보호자처럼 그 시기의 나를 가장 단단하게 곁에서 방어해준 사람. 덕분에 겁날 것도 외로울 일도 없었던. 오늘, 20대 초반 나에게 넉넉한 마음을 주었던 소중한 친구의 29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내가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인, 그 친구를 향한 내 마음을 글로 고백해 보고자 한다. 생일 축하해, 서현아!


서현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입학 전 형성된 커뮤니티에서였다. 한창 입학사정관제 붐이 막 일어나기 시작했던 터라, 나랑 서현이 모두 입학사정관제(유형은 조금 달랐으나)를 통해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에 같은 학번이자 나이로 입학했다. 지금은 사라진 전형이니 한 번 말해보아도 될까, 무려 우리 과에서 극소수로만 뽑는 '자기 추천 전형'에 합격한 서현이는 야무지고 똑부러진 그야말로 K-장녀의 대표였다. 나 역시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 K-장녀였지만 서현이는 나보다 일주일 더 빨리 태어났음에도 훨씬 언니 같고 의젓하고 당찬 친구였다. 


스무 살의 나는 여기저기 방황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나, 스물 한 살로 넘어감에 따라 서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며 우리는 더 깊어진 사이가 되었다. 뮤지컬과 연극 관람이라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기도 했고, 기숙사 생활을 통해 의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졸업 전까지도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었다. 거의 세트이기도 했다! 함께 장을 보러가고, 학교 호수 걷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가고, 시험기간에 함께 공부하고 맛있는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같이하는 시간들이 정말 많았다. 그때마다 서현이가 곁에서 나를 정말 많이 챙겨주고 아껴주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되게 열심히 살고 멀쩡한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 같아도, 나는 모자른 부분도 무!척! 많고 꽤 자주 덤벙거리며 생활력이 일부 떨어졌었는데 옆에서 서현이가 알뜰살뜰하게 꼼꼼하게 다 챙겨주며 함께해주었다. 거의 어미새와 다름없었달까. 대전에서 올라와 가족과 떨어져 있음에도 서현이가 있어 나는 평안한 나날들이 더 많았음을, 이제야 안다. 


우정이라고 함은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소중한 마음을 나눠야 함을, 그땐 잘 몰랐다. 나는 우정을 어떻게 쌓아가야 하는지도 모른채 하염없이 서현이에게 의존하고 기댔으나, 정작 서현이가 그런 부분이 필요할 때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잘 몰라 미숙한 모습으로 서현이에게 종종 상처를 줬던 것 같다. 수업에 같이 가기 위해 기숙사 1층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고작 2~3분 늦었다고 나는 서현이에게 짜증을 내고, 함께 해외여행이나 국내여행을 갈 때도 나보다도 더 꼼꼼하게 일정을 체크했던 사람은 서현이었다. 제주도에서 선크림을 바르라는 서현이의 조언을 귓등으로 듣고 다음날 살이 까져서 새벽부터 엉엉 울면서 약국에 갔던 사람은 나였다. 흠, 이렇게 자기 반성을 시작하면 오늘 밤을 새도 부족하니, 이만 여기서 마침표를 찍으며, 다만 확실한 건 서현이는 정말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사려 깊고 선한 마음을 가진 특별한 친구였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졸업 후 우리는 1년에 한 번 만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서현이는 서현이대로 새로운 길을 걷고, 나는 나대로 대전으로 내려와 직장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 극복에 한계가 있었고, 서로의 루틴이 겹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서현이에 대한 고마움을 오히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알게 되고 느끼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조금 더 성숙해져서일까. 둘 다 맞을 수 있겠지만 서현이가 그때 내게 베풀어주었던 마음들을 다른 사람들이 대신 해주는 것을 보며 나는 알았다. 그때 어린 서현이가 나를 위해 행했던 노력들은 쉬이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던 귀한 것임을, 너무 늦게도 안 것이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이 비극이 서현이에게 적용되어 미안할 뿐이다. 


최근에 만난 진실이가 갑자기 서현이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가 내 대학교 친구의 안부를 물어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알고보니 나는 서현이 얘기를 그 전부터 참 많이 하고 다녔다고 한다. '서현이는 원하는 게 있으면 꼭 이뤄내는, 실천해서 움직이는 멋진 친구야, 서현이는 뮤지컬을 좋아해서 뮤지컬 배우를 꿈꾸기도 했었어!' 등 서현이에 대한 내 아낌 없는 표현들을 서현이가 아닌 정작 다른 곳에 가서 외쳐대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도착해야 할 곳에 가닿지 못한 마음이라 걱정하기도 했으나, 서현이는 분명 내 마음을 알아줄 거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더 잘 표현하고 서현이가 내게 했던 배려만큼이나 나도 더 노력할 것이다. 


2016년쯤 학교 단과대에서 복면가왕 류의 대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서현이는 당시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뮤지컬 넘버인 뮤지컬 <모차르트>의 '황금별'을 열창했고 무려 2등을 했었다. 우승 후 받은 경품 금액으로 오뎅과 과일 맥주를 먹으러 가기도 했었다. 졸업 전 서현이와 함께 나눈 특별한 경험들 중하나이다. 그런 서현이에게 나는 내년 여름에 있을 내 결혼식의 축가를 부탁했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꼭 서현이가 노래를 불러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고, 서현이는 흔쾌히 해주겠다고 말했다. 나의 20대 초반을 든든히 책임져준 친구가 앞으로의 나날들에 대한 축복을 노래에 담아 내게 전해준다면, 나 정말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사람을 잘 챙기고 마음을 온전히 전하는 데에 능숙했던 귀중한 사람, 서현이에게 배운 것들을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주리라고 다짐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네이버 블로그를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데, 몇 년 전 오늘의 게시글을 올려줄 때마다 6~7년 전 포스팅에 서현이가 자주 등장한다. 그 글들을 보면 나는 지금도 서현이와 일상을 함께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그때 왜 난 더 풍요로운 마음을 갖지 못해 서현이에게 덜 잘해주었는지 그저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앞으로 함께할 나날들이 더 많을 서현이에게 최선을 다해 내 마음을 전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서현이를 생각하면 이렇게 고마움과 미안함 양측 감정 모두를 느끼게 된다. 이야기를 쓰다보니 서현이는 나에게 X, 애인 같은 면모가 많았음을 느끼고 흠칫 놀라게 된다. 그만큼 긴밀한 관계 속에서 함께한 시간들이 있었고 어쩌면 이를 자양분 삼아,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건지도 모른다. 좋은 영향력을 주고 꼼꼼한 관리를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서현이는 분명 좋은 교육자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현이에게 받은 가장 특별한 선물 하나를 이야기하면서 서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칠까 한다. 서현이는 내게 사계절을 오롯이 즐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마치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봄에는 개나리를 보러가야 하고, 여름에는 바다와 계곡에 가야 하며, 가을에는 맛있는 대하를 먹어야 하고, 겨울에는 달콤한 과일 청에 따뜻한 물을 타서 마시는 편안함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서현이였기에 배울 수 있었다. 개나리 축제에 가고, 맛있는 대하를 같이 까먹고, 청귤청을 나눠 먹으며 비로소 나는 사계절이 가진 저마다의 매력을 알았다. 서현이가 알려준 것들로 나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아마 서현이 곁에서 더 오래 함께했으면 나는 더 많은 걸 배웠으리라 확신할 정도로, 서현이는 좋은 친구이자 인생 선배 같다. 


멋진 친구 서현이, 이 세상에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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