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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Oct 05. 2022

<용궁부연록>을 통해 바라본 내 모습 - 2편

공유에 대한 의지와 높은 자기 표현력, 그리고.

* 해당 글은 <용궁부연록>을 통해 바라본 내 모습 - 1편 (brunch.co.kr) 의 2편입니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듯 나의 좋은 경험들은 널리 알려야 한다고 믿어왔다. 이로 인해서 회사에서 내 별명은 '꿀템, 꿀팁 전문가'였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 좋은 물건들이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도움을 주는 방법들을 주변 사람들과 적극 공유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즐기는 편에 가까웠다. 내가 편리함을 느끼고 긍정적인 감정을 공유했던 것만큼 다른 누군가도 비슷한 결을 만날 수 있는 게 나의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때론 '손민수하는(*남을 따라하고 모방한다는 뜻의 신조어) 것'에 대한 불편함은 없는지 누군가 묻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내가 발견한 매력적인 향기의 헤어세럼을 누군가에게 추천해 주어 그 사람이 쓰게 되었을 때,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한 고유한 향을 다른 사람도 쓰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향을 나만이 알고 사용할 때, 그 향이 마치 나의 고유성을 증명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 제품은 이미 많은 소비자들에 의해 알려졌을 것이고, 오히려 나는 가까운 사람들과 좋은 제품을 공유할 때 오는 기쁨과 그 친구들이 주는 고맙다는 표현이 더 값진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용궁부연록>의 주인공 한생이었다면 내가 보고 만나고 온 것들을 사람들에게 더욱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을 거라 확신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한생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공유에 대한 의지와 높은 자기표현력일 것이다. 공유에 대한 의지는 위에서 이야기했으니 자기표현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나를 오랫동안 보아온 대학교 시절 룸메이트 동생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언니는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멋진 건 자기 표현력이라고 생각해."

관련된 에피소드들 중 어느 걸 말해볼까. 음, 나는 매해 11월마다 나는 <트렌드코리아>라는 책을 임원들 앞에서 발표해오고 있다. 즉 내년의 트렌드를 담은 책을 약 15분 정도로 압축해 발표한다. (올해 역시 2023 트렌드 코리아를 발표할 예정이다.) 작년 11월 어김없이 트렌드코리아 관련 발표를 했는데, 사장님께서 다른 임원에게 나에 대해 "자기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그걸 전달하는 데에 거리낌 없이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사실을 전해 들은 바 있다. 그 외에도 내가 가진 PR 능력을 종종 인정 받아 오며 나에 대해 차츰 알아갔다. 나는 내가 아는 지식을 전하고 나를 표현하는 데에 언제나 자신있게 임할 수 있는, 그 전에 그러한 과정을 매우 사랑하는 자기표현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변화는 자연의 이치이자, 고정되고 절대적인 것은 없기 마련이며 한 사람의 특징 역시 단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 나 역시 <용궁부연록>의 한생과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정민이를 절대적으로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나도 종종 나만 알고 싶은 좋은 것을 비밀스럽게 간직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연애하는 동안 만나게 되는, 나만 아는 그 사람의 귀여움과 의외의 사랑스러움. 혹은 여러 예술 문화 콘텐츠가 내 삶과 공명하는, 하지만 나만 알고 싶은 비밀스러운 지점. 그리고 너무 맛있는 것. 마지막은 좀 의외일 수 있다. 맛있는 것을 함께 나누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진심인 내가 맛있는 것에 대해 비밀스럽게 알고 싶다니. 너무 모순적인 게 아닐까? 하지만 그런 순간이 있다. 너무 맛있고 특별해서 이를 참치 못하고 발설하는 순간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될 것 같은 조심스러운 순간. 때론 내뱉지 말고 참아야 커지는 마음이 있음을 느낀 순간부터 나는 <용궁부연록>의 한생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얘기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주창하는 모든 바가 옳지 않음을, 나는 어느 단면만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이런 면과 저런 면 모두가 있지만 그 중 상대적으로 한 면이 조금 더 컸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대학교 3학년 때의 나는 내 세상을 넓혀가는 중이라 한생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약 8년 정도 지난 지금의 나는 한생을 충분히 이해하고 내 친구 정민이가 가진 면을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다. 그 이유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세월의 힘 덕분인지, 아니면 너무도 이질적이고 낯설었던 한생을 오랫동안 무의식에 염두하며 그를 이해하기 위한 어떤 여정이 가져다준 작은 기적인지 지금 바로 말하긴 어렵지만. 이제 나는 대학교 3학년 때의 내가 만난 한생과 같은 누군가를 또 찾고 싶다. 삼키지 못한 음식을 오래오래 씹다가 어느날 꿀꺽 먹게 되는, 그 신비한 재미를 또 몇 년에 걸쳐서 만나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내게 결코 없다고 판단했던 어느 지점을 결국 내게 발견하게 되는 열린 마음만은 변치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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